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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Nov 24. 2022

크로스핏 세달, 나의 작고 소중한 근육들

크로스핏 세 달 후기

 성장. 더 이상 키가 클리도 없고, 이직을 하며 커리어를 쌓기도 애매한 직업을 가진 내게 성장은 유년기와 함께 점점 더 멀어지는 단어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새로운 성장이 다가왔다. 바로 근성장. 처음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아침에 거울을 보면 전날보다 뭔가 부기가 빠져 보이고 탄탄해 보이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근육이라고는 없었던 상체에 변화가 보이자 나는 신이 나서 거울 앞에서 내 몸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인바디의 근육량은 고작 1kg이 증가했지만 인바디는 어디까지나 전류의 장난질이 아닌가. 역시 인바디보다는 눈바디가 중요하다며 크지도 않은 몸의 변화를 열심히 관찰했다. 그러다가 새롭게 성장한 근육이라도 발견되면 나는 신이 나서 남편을 찾았다.


"여보 여보, 내 팔 봐. 좀 큰 거 같아!"


하지만 남편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보, 그것도 없으면 사람 죽어."


 물론 나에게도 긴가민가한 변화였으니 남편 눈에는 안 보였던 게 당연하다. 남들의 눈에는 '손톱이 자라고 있는 게 보여요'와 같은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만 보인다고 해도 작은 변화가 생긴 근육이 보이면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마치 흙 속에 묻어둔 씨앗이 싹을 틔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렇게 싹을 틔운 근육은 더욱 애착이 갔다. 그래서 나는 더욱 열심히 근육에 채찍질을 했다. 미안하다 나의 근육아. 네가 새싹이었다면 양지바른 곳에서 물과 비료를 받아먹으며 안락하게 컸겠지만, 너는 찢어지며 성장하는 근육이잖니. 여기 어제보다 5파운드 무거워진 덤벨이 있단다. 들어보자꾸나. 끝나면 당근 대신 프로틴을 주마. 그렇게 성장하는 근육에 채찍질 하기를 세 달째, 어느새 남편의 눈에도 보이는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여보 여보, 내 어깨 봐. 진짜 좀 큰 거 같아!"

"오호! 진짜네. 좀 생겼다!"


근성장. 이보다 더 달콤한 성취가 있을까. 크로스핏을 하면서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것은 하체였다. 곧이어 팔의 이두근을 시작으로 상체에도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몽글몽글 부드럽기만 했던 팔뚝이 단단해지더니 팔뚝에 지우개가 하나씩 자리 잡았다. 또 굴곡 없이 동글동글 말랑말랑하던 어깨에 여기 근육이 있습니다 하고 덩어리가 만져지기 시작했다. 기립근도 나날이 단단해지고 등 근육이라고 할만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굽어있던 어깨와 등이 펴지고 자세가 꼿꼿해졌다. 자세는 교정을 해야만 되는 것인 줄 알고 그동안 포기하고 살았는데 그냥 근력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게다가 몸무게는 크로스핏 시작 전보다 2kg가량 증가했는데 눈바디는 오히려 날씬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을 뽐내며 찢어지는 말 근육은 아니지만 나의 작고 소중한 근육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도 무척이나 달았다. 와드가 끝나면 가출해서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체력이 언제부턴가는 남아 있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 시간 수업은 개운하고, 두 시간 연강을 들어야 아이고 소리가 나온다. 다루는 무게가 달라졌을 때의 쾌감도 무시하지 못한다. 10파운드 덤벨도 무거웠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15파운드도 가볍다며 25파운드에 도전해보라고 권유를 받는 나로 변해있었다. 단 한 개밖에 못하지만 토투바*에도 성공했다. 체력이 좋아지면서 수업 후에 나머지 운동을 한 덕분이다. 가장 큰 변화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힘든 운동도 견뎌내는데 뭔들 못하겠냐는 자신감이 생겼다.

*토투바(Toes to Bar): 반동을 이용해 발끝을 철봉에 터치시키는 동작


토투바( Toes To Bar)


 크로스핏을 시작할 때의 나의 목표는 고작 일주일에 3회 이상 박스에 가는 것이었다. 워낙 고강도의 운동이기에 적응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 달 동안 내가 목표했던 것 이상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하는 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크로스핏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남편과 나는 요즘 하루 종일 크로스핏 얘기만 한다. 내일의 와드는 뭔지, 어떤 동작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파도 파도 끝이 없다. 다음 세 달 동안은 25파운드 덤벨 다루기, 그리고 키핑풀업*과 연속 토투바를 성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근육통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비장한 표정으로 박스에 간다.


"코치님, 여기 3개월 연장이요!"


*키핑풀업(kipping pull up): 반동을 이용한 턱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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