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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Nov 17. 2022

헬창이 크로스핏을 하면 생기는 일

헬스와 크로스핏의 차이점

 남편은 오랫동안 헬스를 했다. 중간에 잠깐 그만둔 적도 있지만 그래도 제법 오랫동안 운동을 했기에 체력도 근력도 크로스핏 초보치고는 좋은 편이었다. 내가 덤벨에 휘청거리고 AB 매트 위에서 싯업*을 가장한 몸 개그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은 전직 헬창다운 근력을 뽐냈다. 그렇게 금방 박스의 중수 자리를 꿰찰 수 있을 듯 보였다.

*AB 매트 싯업(AB Mat Sit Up): AB 매트를 허리 밑에 깔고 하는 윗몸일으키기. 양발의 발바닥을 마주 보게 하고 일어났을 때 어깨가 골반을 지나야 한다.


 그러나 남편은 못하고 나는 잘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반동! 크로스핏의 꽃인 반동! 헬스에 고립이 있고, 필라테스에 호흡이 있다면 크로스핏은 기승전 반동이다. 덤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릴 때 헬스가 팔 근육의 힘만을 이용한다면 크로스핏은 반동을 통해 온몸의 힘, 즉 협응력을 이용한다. 팔 근육은 거들뿐인 것이다. 반동은 골반과 무릎, 발목을 살짝 굽혔다가 몸을 펴면서 하체와 몸통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반동을 이용하면 부분적인 근육만으로는 들 수 없는 훨씬 무거운 무게도 들어 올릴 수가 있다. 또 특정 근육에 자극이 적어지니 동작을 더 빨리 혹은 더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반동이라는 것이 헬창들이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근육을 고립시키고 자극을 잘 먹여야지, 반동을 쓰면서 고립을 풀고 자극을 분산시키다니. 근비대를 목표로 하는 헬스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몸짓이다. 남편도 역시 반동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에 비해 아직 근력이 부족한 나에게 반동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게임에서 치트키를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부족한 팔근육을 몸통과 다리의 근육이 보완해 줄 수 있다니. 반동은 내게 신세계였다. 덕분에 나는 반동은 금방 익혔다. 코치의 칭찬을 들은 날이면 우쭐해졌다. 드디어 남편보다 잘하는 것을 찾은 것이다.


"여보 그게 아니지! 반동은 이렇게 쓰는 거야. 팡! 팡!"


 나의 도발이 남편의 헬창 본능을 건드렸던 것일까. 남편은 헬창 본능을 이용해 밤낮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헬창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근비대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지루한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남편은 연습하는 동작도 다양했다. 토투바*에서 핸드 스탠드 푸시 업*, 클린*까지. 덩달아 나도 남편을 따라 산스장에서 클린을 연습해야 했다. 나는 산스장 헬창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았다. 고립은커녕 반동을 팡팡 써가며 바벨로 역도를 하는 부부라니. 다치기 전에 저들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토투바(Toes to Bar): 반동을 이용해 발끝을 철봉에 터치시키는 동작.

*핸드 스탠드 푸시업(Hand Stand Push Up): 벽에 다리를 기대고 물구나무를 서서 하는 팔굽혀펴기.

*클린(Clean): 역도의 용상. 바벨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는 동작.

핸드 스탠드 푸쉬업


 산스장 헬창들의 우려와는 달리 남편은 크로스핏터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토투바 하나를 하더니 어느덧 연속 토투바를 하기 시작했다. 또 고수들만 한다는 핸드스탠드푸시업으로 와드를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헬스로 길러온 근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헬창 티를 다 벗은 게 아니기에 간혹 어깨와 팔에 과하게 힘이 들어갈 때가 있다. 그리고 협응력의 꽃이라는 역도 동작은 아직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크로스핏터가 되려는 헬창의 의지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보았다. 옷을 입다 말고 옷걸이 집게 봉을 들고 클린을 연습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반동을 찾는 헬창의 여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역도의 용상인 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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