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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Oct 28. 2022

크로스핏 두 달, 하비는 예쁜 하비가 되었다

크로스핏 두 달 후기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 날씬한 허벅지. 내가 평생 가져보지 못한 그것.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한다고 했던가.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은 안타깝게도 하체만 유독 발달한 하체비만이다. 하체비만한테 하체비만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니까 어감이라도 귀여운 '하비'라고 하자. 나는 30년 이상을 하비로 살았다. 청바지를 입을 때마다 하비의 서러움이 몰려오지만 가장 큰 슬픔은 오히려 다이어트를 할 때 왔다. 아무리 열심히 살을 빼도 허벅지살만은 끝끝내 살아남았을 때 오는 그 좌절감. 상체는 충분히 말라 어디 가서 구걸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언제나 허벅지살만은 굳건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란. 게다가 생체주기에 따라 빠진 것 같다가도 어느새 다시 찌기 시작한다. 그러니 나같은 하비들에게 허벅지가 두꺼워지는 것은 악몽 같은 일이다. 아주 조금일지라도 말이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처음 한 달은 그 악몽의 시기였다. 나의 모태 튼실 허벅지는 펌핑 된 듯 부풀어 올라 더욱 튼실해졌다. 바지를 입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러다 '짜잔! 당신은 허벅지 근수저였습니다! 보디빌더의 길로 전향하세요!'라고 말하는 우락부락한 허벅지를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성분들이 크로스핏을 포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면 그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크로스핏을 그만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크로스핏을 시작한 이유는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근육을 만들어 꼿꼿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 아닌가. 그러니 허벅지 근육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다른 근육은 다 포기하더라도 신체에서 가장 큰 근육인 허벅지를 포기해서는 꼿꼿한 할머니가 될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초반의 붓기는 일시적이라는 근력운동 유경험자들의 말이었다. 운동을 시작한 초기에 근육이 자극을 받아 펌핑 됐다가 어느 정도 근육이 생기고 나면 지방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슬림 해진다고 한다.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인지 의심스럽긴 했지만 실오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당분간 입지 못할 청바지들을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리고 서러운 마음을 다독이며 와이드 팬츠를 꺼냈다.


 그렇게 나의 허벅지는 하루하루 튼실해져 갔다. 하비 탈출을 위해 헤맸던 30년의 세월이 무색했다. 하지만 근육 할머니가 되기로 한 목표를 생각하며 나의 튼튼한 허벅지에 죄책감을 갖지 않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근육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런지도 하고 스쾃도 했다. 내 눈에 흘러내리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코치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하루하루 더 무거운 덤벨을 쥐여줬다. 허벅지에는 항상 근육통이 가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달이 되었을 때쯤 드디어 허벅지의 부기가 빠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한층 단단해진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아직 지방이 빠진 것은 아니라 예전보다 더 슬림 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크로스핏을 시작하기 전의 부피로 돌아온 수준이었다. 하지만 라인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특히 생각지도 못한 변화는 엉덩이에 있었다. 엉덩이가 쑥 올라간 것이다. 나의 식빵 같던 네모반듯하던 엉덩이가 모닝빵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엉덩이와 함께 허벅지의 가장 두꺼운 부분이 상승하면서 다리가 조금 더 길어 보이는 효과가 났다. 같은 바지를 입어도 축 처진 엉덩이가 없으니 조금은 더 맵시가 나는 듯했다. 골반 라인에도 볼륨감이 생겨서 예전에는 여유 있었던 H 라인 원피스가 골반에서 딱 맞았다. 물론 완벽한 애플힙과 꿀벅지가 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비에서 조금 더 예쁜 하비가 됐다고나 할까.


 크로스핏 세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허벅지가 더 이상 커지지는 않았다. 걱정했던 우락부락한 근육은 가지고 싶어도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더 단단해졌고 착한 사람 눈에는 갈라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친애하는 하비 동지들이여! 하체 근력운동을 두려워하지 말자! 슬림라인 바지는 던져버리고 덤벨을 들자! 어차피 탈출할 수 없는 하비라면 더 건강하고 예쁜 하비가 되어보자!


 라고 말은 하지만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허벅지 사이즈를 체크하고 있다. 근육량이 어느 정도 늘고 나면 식단을 관리를 시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때는 정말 평생을 따라다닌 허벅지 지방과 이별할 수 있지 않을까? 30년 차 하비는 아직도 하비 탈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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