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유실물이 하루에도 몇 개씩 들어온다. 교통카드부터 노트북까지, 어제 잃어버린 것부터 일주일 된 것까지. 분실 신고도 습득신고도 많다.
가까이에 백화점이 있는 역에서 일할 때였다. 처음 그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흔히 있는 평범한 유실물 전화인 줄 알았다. 수화기 건너편의 여성분은 당황한 목소리로 가방이 들어있는 흰색 쇼핑백을 화장실에 놓고 온 것 같으니 찾아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바로 화장실로 갔지만 화장실의 모든 칸이 사용 중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모든 칸을 확인했지만 화장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빈 손으로 역무실에 돌아왔을 때, 가방을 잃어버린 여성분도 역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백화점 유실물 센터도 이미 확인을 마친 뒤였다. 화장실에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그분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CCTV요, CCTV 좀 보여주세요!"
많은 고객들이 분실물을 꼭 찾고 싶을 때 CCTV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CCTV를 통해 누군가 분실물을 가져가는 순간을 확인하다고 해도 더 이상 역무원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는 수사권이 없는 단순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역무원은 범인을 뒤쫓을 수도, 범죄를 추궁할 수도 없다. 또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CCTV를 함부로 봐서도 보여줘서도 안된다. 결국 중요한 분실물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설명을 들은 여성분은 풀 죽은 모습으로 역무실을 나갔다. 그렇게 유실물 찾기는 내 손을 떠난 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 뒤 그 여성분은 가까운 지구대의 순경들과 다시 역무실을 찾았다. 이렇게 빨리 경찰들이 온다고? 보통은 며칠 뒤 경찰서 형사들이 오는데 이번에는 지구대에서 바로 나온 것이다. "이 분이 ○○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하시는데, CCTV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아니 전 세계 누구라도 다 알만한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었다. CCTV 영상을 검색하는 손이 급해졌다. 다행히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화장실을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확인했다. 화장실 주변에서 쭈뼛거리는 내 모습도 보였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유모차를 끌고 화장실을 이용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유모차 안을 볼 새도 없이 유모차는 우리가 관리하는 CCTV 구역을 벗어나 버렸다. 사건을 경찰서로 이첩하기로 하고 모두 돌아간 후, 역무실은 마침내 조용해졌다.
그 가방은 내게 신고 된 분실물 중에 아마도 가장 비싼 물건일 것이다. 내가 이용객이 나오기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신속하게 화장실을 수색했다면 가방을 찾을 수 있었을까?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그 가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유모차가 의심스럽다, 가방이 500만 원은 훌쩍 넘을 것이다, 저마다 아쉬운 마음에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번쩍 들었다.
"혹시 엘리베이터 CCTV에는 유모차 속이 찍히지 않았을까요?"
옆을 비추는 일반 CCTV와 다르게 좁은 공간에 설치돼있는 엘리베이터 CCTV는 사람들의 정수리까지 훤히 보이도록 위에서 아래를 비춘다. 우리는 유모차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방향에 있는 엘리베이터의 CCTV 영상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있다! 게다가 속이 훤이 보인다!
유모차는 유모차가 아니었다. 안에는 세상 정직한 표정을 한 강아지가 타고 있었다. 하지만 정직한 강아지는 한 순간 불룩 솟아오른 이불을 숨기지 못했다.
이 맛이지! 이 맛에 CCTV를 뒤진다. 명탐정 코난이라도 된듯 우쭐한 기분이었다. 가방을 찾지 못해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성분에게 범인을 찾았다고 당장이라도 전화하고 싶었다. '범인을 찾았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가방을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걱정 마시고 오늘 밤 푹 주무세요!'
하지만 아직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설레발을 쳤다가 가방을 찾지 못했을 때의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업무 중 받은 개인 정보를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지구대에 전화해 개모차 내부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형사들이 와서 CCTV를 확인할 것을 대비해 개모차의 동선이 찍힌 영상과 시간을 인수인계부에 자세히 기록했다.
며칠 뒤 역에 형사들이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개모차가 비슷한 시간에 우리 역에 자주 오니까 보이면 신고해달라는 부탁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무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걸 아는지, 개모차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고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가방은 주인에게 돌아갔을까? 내가 무고한 개모차를 모함한 것은 아닐까? 사라진 명품가방을 쫓던 코난은 시무룩해졌다. 이런 사건에서 역무원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말이다.
어느 역무원이 당신에게 안된다, 못한다는 답변을 하더라도 그것이 하기 싫어서가 아님을, 코난의 마음으로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