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의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 사회복무요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말길을 못 알아듣고 자기 말만 하는 노인들을 연거푸 상대하다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위로를 건네볼까 하다가 다 부질없는 것을 알기에, 좀 쉬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사회가 점점 고령화되고 지하철을 무임으로 이용하는 노인 승객의 비율도 함께 늘어나면서 고질적인 만성 적자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조용히 지하철을 이용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호출이 많은 고객층이다. 역은 점점 자동화되고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어려운 기계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은 노인 혐오에 걸려서 제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노인들은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가장 응대하기 힘든 고객들인 것이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선로가 얼어붙어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이 멈춘 날이었다. 역에는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역무원은 더 이상 게이트를 통과하는 손님이 없도록 막으면서, 이미 게이트를 통과한 손님들에게는 환불을 해야 한다. 그 바쁜 와중에 할아버지 두 분이 역무실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신다. 무임승차 대상이어서 환불받을 돈이 없는 분들이지만 굳이 역무실까지 찾아와 역정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열차가 멈춘 지금,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마냥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두 분은 환불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와 역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으시더니 커피를 내오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머리를 조아리며 따뜻한 다방커피를 타 드렸다. 흡족하게 커피를 받아 든 두 분은 한참을 더 호통을 쳤지만 모두들 바빠서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두 분은 결국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며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역무실을 나갔다. 이 외에도 어차피 공짠데 카드를 뭐 하러 찍냐며 무턱대고 게이트를 밀고 들어가 버리는 노인들, 계집애가 어디서 나서냐며 여직원을 무시하는 할아버지, 아무리 찾아도 무임승차권 발급기는 없다며 역 직원 말을 믿지 못하는 할머니까지, 진상 고객 사례는 끝이 없다.
가끔 중증 치매에 걸린 분들이 역무실에 오시는 일도 있다. 보통은 답답한 마음에 보다 못한 다른 승객이 역무실에 모시고 온다.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댁이 어디세요?" 할머니는 더듬더듬 딸 네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가, 갑자기 말을 바꿔 언니가 불러서 가는 길이라고 하신다. 우리의 갑갑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의 마음은 꽃다운 18살이었다가, 80이 넘었다가, 나풀나풀 널뛰기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과 연락이 닿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수밖에 없다. 역무원은 승객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 이름도, 주소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할머니가 출동한 경찰과 함께 역무실을 떠나도 직원들에게는 안도감이 아닌 불편함이 찾아온다. 저마다의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이 아픈 것이다. 그런 날은 퇴근 후에도 불편한 마음이 계속 쫓아온다. 할머니는 집에 무사히 돌아가셨을까?
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했던 분은 매일 역무실에 찾아오시던 할머니였다. 구부정한 허리에 손수레를 지팡이 삼아 끌고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역무실 문을 빼꼼히 여시고는 신분증을 잃어버렸으니 무임승차권을 그냥 달라고 부탁하셨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무임승차권을 드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누가 봐도 65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의 조심스럽지만 완고한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음번에는 꼭 신분증 가져오셔야 해요!" 하지만 할머니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신분증 없이 승차권을 받으러 오셨다. 할머니는 새로 신분증을 만드는 대신 역무원들과 안면을 익히기로 작심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신분증 얼른 만드세요." 하고 잔소리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저 멀리서 할머니의 손수레가 보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무임승차권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 근무 때마다 오시던 할머니가 어느 겨울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바쁘신가? 어디 가셨나? 한 달, 두 달, 해가 바뀌도록 할머니는 역에 오지 않았다.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그 승차권이 뭐라고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드릴 걸, 오시면 좀 더 반갑게 맞아드릴걸. 원칙만 앞세웠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할머니는 손수레를 앞세우고 여전히 빈손으로 무임승차권을 받으러 오셨다. '어디 좋은 데서 쉬시다 오셨어요?' 반가움에 아는 체하고 싶은 마음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승차권만 건네드렸다. 그리고 한동안 또 빈손으로 승차권을 받아 가셨다. 얼마 안 있어 나는 다른 역으로 발령이 났다. 할머니는 여전히 직원들과 안면을 익히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