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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Sep 19. 2022

1,500원의 사나이

역무원이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신뢰

 1,500원의 사나이는 순찰을 돌던 부역장님과 함께 역무실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게이트 앞에서 처음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내리는 게이트에서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그는 부역장님이 다가가자 다급하게 선수를 쳤다.


"교통카드를 잃어버렸어요!"


 그의 속 보이는 거짓말을 부역장님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만약 그가 부역장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미 게이트를 통과한 다음이었다면 부정승차자로 단속되어 30배의 부가운임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신고를 해버렸으니 카드나 티켓을 분실했거나 부득이한 사유로 무단 입장한 경우에 발매하는 출장권을 끊어야 했다. 1,500원짜리 출장권이라도 끊어서 지하철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교통카드는 잃어버렸고, 다른 카드도 없고, 심지어 한도가 초과돼 계좌이체도 안된다고 했다. 산꼭대기에서도 계좌이체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시대에 이 무슨 괴변인가. 요금을 낼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지불 방법은 없는지 스스로 찾기도 하고,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역무실을 빠져나가는데 급급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재방문하라는 요청에 남자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물었다.


"이제 가도 되죠?"


 심혈을 기울여 못 알아보도록 쓴 마지막 글자를 보고 있자니 '그 정도 했으면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면 지하철이 만만해진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나의 닦달에 마지못해 이름과 전화번호의 마지막 글자를 고쳐 쓰고 그는 또 다급하게 물었다.


"이제 가도 되죠?"


 내일 꼭 방문하라는 당부를 다시 한번 듣고 그는 역무실을 떠났다. 부역장님도 그가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교통카드를 잃어버렸다는 말도, 요금을 지불할 방법이 없다는 말도, 내일 방문할 거라는 말도 어느 하나 믿지 않았다. 요금을 지불할 방법이 없다기보다는 누가 봐도 지불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받은 돈이 없으니 출장권을 발행할 수도 없고, 그렇게 모든 것이 그의 거짓말처럼 없었던 일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부역장님이 지갑에서 1,500원을 꺼내 출장권을 발행했다.


"이번 한 번만 사람을 믿어볼까?"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않던 1,500원의 사나이를 믿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덧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과연 그는 1,500원을 들고 다시 방문할 것인가? 세상은 아직도 이렇게나 살만하다는 것을, 우리가 그동안 너무 사람을 의심하고 살았다는 것을 그가 깨우쳐 주길 바라는 마음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올 것 같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 다른 조에 1,500원에 대한 인수인계를 했다.


"만약에 오면······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자신 없는 나의 인수인계에 다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부역장님은 1,500원으로 그동안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찾을 수 있을까?


 1,500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참 보잘것없는 돈이다. 편의점에서 조그마한 과자 한 봉지나 겨우 살 수 있을까. 그런 과자 하나의 가격으로 탈 수 있는 지하철 요금을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돈조차 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라면 지하철 요금을 내지 않고 탄다는 것은 65세 이상이 되기 전까지는 떠올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부정승차자들은 이 보통의 범주를 이미 넘어선 사람들이다. 그렇다 보니 그들에게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30배의 부가운임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역무원들이 인사고과를 포기하면서까지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리는 이유다.


 명품 지갑을 들고 다니면서 지하철 요금 낼 돈은 없다는 사람, 왜 사람을 도둑 취급하냐며 지폐를 던지고 가버리는 사람, 부정승차자로 단속됐을지언정 내 자식 기죽이지 말라며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을 대하며 평온하기란 쉽지가 않다. 또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성낼 뿐만 아니라 민원까지 거는 사람들에게 잘못 걸리면 정말이지 출구가 없다. 한 번만 봐달라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우리는 그들을 도둑으로 취급을 한 파렴치한이 되고, 그들을 달래려고 했던 말은 협박으로 둔갑되어 수십 장짜리의 민원으로 접수된다. 그들의 잘못은 실수고, 우리의 응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회사에서 그들의 편들어주지 않고 뜨뜻미지근한 답변을 하면 다시 부메랑이 되어 상위 기관을 등에 업고 돌아온다. 결국 상급자를 통해 죄송하다, 직원 교육을 시키겠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 사과는 항상 우리 몫이다. 그 뻔뻔함과 싸워본 역무원들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많은 전적들을 뒤로하고, 1,500원의 사나이는 다시 역에 찾아왔을까? 과연 1500원은 부역장님의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찾아 줬을까?


 안타깝게도 반전은 없었다. 결국 그는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부역장님의 1500원은 그렇게 허공에 뿌려졌다. 과자 한 봉지 살 수 있는 돈으로 인간의 신뢰를 사려고 했던 것은 너무 무모한 시도였을까? 하지만 부역장님이 믿고 싶었던 것은 다시 방문하겠다는 그의 약속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 인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저버리지 못한 부역장님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듯, 1,500원으로 더 이상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기를 기원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에 우리는 1,500의 사나이를 놓쳤지만 그가 영원히 단속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지하철 곳곳에는 배테랑 형사 못지않게 부정승차 단속에 노련한 역무원들이 많다. 그분들이라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이나 경찰서에 가는 것도 불사하고 오늘도 단속에 힘쓰고 계신다. 게이트 앞에 아무도 없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CCTV만 보고도 다 잡는 수가 있다. 그러니 계속 부정승차를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이런 분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한번 시작한 지뢰 찾기는 지뢰의 위치가 바뀌지 않지만 부정승차자 단속계의 전설적인 역무원들은 주기적으로 역을 이동한다. 그러니 1,500원의 사나이도 언젠가는 출장권이 아닌 30배의 부가운임을 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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