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 가드으--!!!!

by Oroxiweol

요즘에는 매 수업 후 10분~20분 정도 스파링을 하고 있다.

어김없이 스파링을 위해 링 위에 두 다리를 올려놓았다. 사면이 탄성 있는 줄로 둘러싸인 사각링.

정말 TV에서나 보던, 어색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 서 있다니. 배위에는 배 보호대를, 양쪽 정강이에는 신가드를 착용해 주었다. 입에는 마우스피스를 밀어 넣었다.(초반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침이 줄줄 흐른 건 안 비밀이다.) 그리고 링 밖에는 관장님이 계셨다.

물론 이건 시합이 아니다. 숙련된 코치님이 망아지 한 마리를 구원해 주기 위한 놀이일 뿐.

제대로 된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고, 우선 주먹이 나가는 대로 휘둘렀다. 정말 '휘둘렀다.'라는 표현이 아주 딱! 들어맞는 나의 행위예술. 왼손을 허공에 뻗으며 잽-! 오른손으로 투-!(내가 상상한 나의 모습은 흡사 tvN 프로그램인 무쇠소녀단 2의 멤버들이었으나... 쩝) 상대가 잽을 날리면 더킹으로 날렵하게 오른쪽으로 샤삭- 피하며 오른쪽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면서 투-!로 반격을 해주려 했지만 그런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숙련된 코치님과 스파링을 해서 아주 안전하게 할 수 있었다. 그. 러. 나 연타로 이어지는 코치님 공격에 중심도 잃고 영혼도 잃고 아주 그냥 탈탈 털리는 중이었다. 헤드기어도 덩달아 맞는 위치에 따라 이리 휙, 저리 휙 움직였다. 심지어 나와 코치님의 키 차이는 대략 10cm. 아무리 팔을 뻗어봐도 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내 팔이 상대 얼굴에 닿기는커녕 배에조차 닿지를 않고 피해 다녀야 했다.


'하... 어떻게 하면 가까이 가서 타격을 할 수 있는 거지?'


'아.. 근데 진짜 얼굴을 정통으로는 못 때리겠는데.....'


맞는 와중에도 혼자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링 밖에서 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드-! 가드 올려야지!! 지금 오른쪽이 비어있잖아!"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지 못한 이 중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지런히 도망 다니는 일뿐. 그러는 동안 예상치 못한 체력소모가 컸고,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동안 자세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가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계속 맞은 것도 있었다. 가드만 잘 올리고 있으면 연타로 얼굴을 맞는다해도 타격이 줄어들고, 헤드기어가 계속 돌아갈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 말인즉슨 가드만 똑바로 올리고 있어도, 덜 맞고 상황을 지켜보다가 상대를 타격할 수 있다. 결국 가드 역시 가장 기본인 셈. 그래도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면 열심히 피해 다니기에 좋을 만큼 빨랐다. 그리고 체력이 가능했다.

실컷 맞다 보니 1분 30초가 다되었다는 종료음이 들렸다.(원래 시합은 3분으로 하나, 나는 그냥 체육관에서 세미 스파링으로 했기에 관장님께서 반으로 줄여서 경험해보게 했다.)



20250825_110131 (1).heic Photo by Oroxiweol.



관장님의 나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가드가 계속 내려감. 계~~속.

*상대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팔을 뻗는 족족 무효타. 상대의 머리는커녕 배에도 닿지 않음.

*의미 없는 상대와의 글러브 터치가 잦음.

*킥복싱인데, '킥'이 별로 없음. 끝까지 뻗었다가 빠르게 회수하고 다음 동작으로 연결하는 게 중요.

여기서 동작이 느리면 내 발만 뻗었다가 상대의 공격에 중심을 잃을 수 있음.


관장님의 원포인트 레슨을 듣고 집에 돌아오며 나의 문제점들에 대해 곱씹어 봤다.

바로 '기본기'가 문제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복싱을 배운 지 1년 하고도 약간의 기간의 지나 경험해 본 스파링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결국 모든 것들은 기본으로 통한다. 내일부터 다시 샌드백을 코앞에 두고 잽을 날리고 더킹과 위빙으로 하체를 단련하고, 섀도우 복싱으로 동작을 익숙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동작을 해내면서 한 손에는 가드 장착을 잊지 않는 것이다.



덧붙이기 :)


우리네 인생에서 필요한 기술 중 하나 역시 '가드 올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타인의 뱉은 무례한 말과 언행 앞에서 바로 맞받아칠 말들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멍청하게 헤헤거렸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그때!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제야 이불킥을 해대며 분노한다. 그 순간 나에게 잘 장착한 '가드'가 있었다면 썩은 말을 뱉는 상대를 방어할 수 있었을 텐데.

킥복싱의 기본자세 중 하나인 '가드'를 인생의 기본기로 가져와 스스로를 잘 지키고 나아갈 수 있는 가드를 올려야겠다. 때론 튼튼한 가드는 방어와 동시에 공격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가드 올려-! 가드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