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샌드백 앞으로.

by Oroxiweol

기본기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어찌해야 좋을지 관장님께 물었다.


"잽, 원-투, 그리고 섀도우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좋아. 샌드백도 많이 쳐보고. 보통 수업 시간에 상대방과 미트를 칠 때는 상대가 다가오지만, 샌드백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잖아? 그럼 샌드백을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내가 가야 하잖아. 그렇게 샌드백을 쳐보면서 거리 조절도 하고 그러는 거야."


코치님과 스파링을 할 때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거리 조절이었다. 키가 크지 않은 나는 당연히 암리치도 짧다. 그 짧은 팔, 다리로 상대에게 잽을 날리려면 많이 다가가야 하는데 늘 주저주저 그러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결심했다. 수업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가서 샌드백을 치기로.

수업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 나는 9시 15분 즈음에 체육관에 도착해서 불을 켰다. 부상은 항상 조심해야 하니 온몸을 늘리며 열심히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스트랩을 감고 샌드백 앞에 섰다. 순간 막막했다.

수업시간에 관장님이 정해주는 동작이 아닌 혼자 연습용으로 치려니 도대체 어떤 동작부터 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한번 현타가 몰려왔다.(현타는 왜이리 자주 밀려오는지 스스로도 의문임)

아직도 첫 샌드백을 마주했을 때의 민망함과 뻘쭘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있는데도 내외하는 지독한 내향인이라니!!!


'에라 모르겠다. 우선 거리 조절에 신경 쓰자.'


툭 툭. 전봇대처럼 내 앞을 지키고 있는 샌드백에게 자세를 낮추고, 턱을 당기고 잽을 날렸다.

샌드백이 흔들렸다. 다시 한번 '툭' 배운 대로 발도 움직이며 또 잽을 날렸다. 그리고는 투.


'잽-잽- 원투!' / '원투 훅-투'


몸이 조금씩 풀리고 샌드백과 글러브를 낀 내 양손에 집중하니 민망함은 사라지고 조용한 체육관에 나와 샌드백만 존재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동안 스파링을 하며 상대에게 들었던 조언, 관장님과 코치님의 가르침을 복기하며 샌드백에 적용해 보려 노력했다. 팔을 뻗을 때 단순히 팔 힘이 아닌 어깨를 뺴고 허리 돌리는 힘을 이용했다. 몸통도 가만히 두지 않고 팔을 뻗는 방향으로 함께 힘을 주며 좌우로 움직였다. 잘 모르고 무작정 팔 힘으로만 샌드백을 칠 때는 손목부터 팔까지 아팠는데, 내용들을 복기하며 다시 해보니 타격감은 더 세지고 무엇보다 팔목이 아프지 않았다. '역시 이래서 복습이 중요해!!' 한 15분 정도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관장님과 회원들이 하나 둘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본 수업 시작도 전에 나의 몰골은 이미 땀으로 만신창이.

그래도 좋았다. 그리고 시작된 본 수업도 신나게 해냈다. 홀로 또는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가끔, 조용히 바랐다.


20250829_122505.heic Photo by Oroxiweol.


대단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 복싱을 생각하는 나는 복싱을 꽤 좋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주먹을 날릴 때 휘청거리지 않게 하체 힘을 더 기르고자 스쿼트를 하고, 팔에 힘을 더 싣기 위해 팔 굽혀 펴기와 아령을 든다. 왜 이렇게 복싱에 진심인 걸까. 다가오지 않는 이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짝사랑 같기도 하고, 그와 더 친밀해지기 위한 노력이 낯설기도 하다. 좋아하면 한 번 더 보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고, 말 걸고 싶어지는 마음은 사람에게나 형체 없는 대상에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음에 들어왔기에 더 잘해주고, 잘하고 싶은 마음. 실수하고 싶지 않은 욕심. 그런 마음과는 다르게 방법이 서툴러 삐긋삐긋하게 되는 것. 그럼에도 가끔씩 올라오는 조급함은 내려놓고, 지금의 이 즐거운 마음을 더 많이 누리기로 했다. 조건 없이 무엇을 사랑하는 마음도 흔치 않은 소중함 경험과 감정임을 아니깐.


오늘도 다시, 샌드백 앞으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