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8. '성장하는 무대'

by Oroxiweol

그동안 취미로 열심히 킥과 잽을 날렸던 시간들을 헤아려 보았다.

1년 하고도 5개월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시간 동안 킥복싱은 내게 당연한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즐거움이자 단조로운 일상 속 탈출구의 장이었다. 재미를 붙이니 당연히 더 잘하고 싶고, 잘하고 싶어 지니 목표가 생겼다.

몇 개월 전부터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 ISTK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 먼저, 챗gpt의 설명을 빌려 ISTK가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면,



킥복싱 ISTK 시합은 한국에서 운영되는 아마추어 킥복싱 경기 규정 중 하나로,

ISTK(International Sports Tournament of Kickboxing)라는 협회 또는 경기 규칙 체계를 따르는 경기 방식을 말한다. 보통 이런 시합은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고, 프로 경기처럼 강한 KO 위주의 룰보다는 안정성과 기술 위주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주용 특징으로는,


*보호 장비 착용: 헤드기어, 신가드, 글러브 등 안전장비를 착용.

*라운드: 보통 2~3라운드, 2분 경기(대회마다 다름)

*룰: 펀치와 킥 모두 허용되지만, 무릎, 팔꿈치나 과도한 힘은 제한될 수 있음.

*심판 채점제: KO보다 기술 점수 위주.

*목적: 선수들의 경험 쌓기, 안전한 경기 경험 제공.


프로 경기처럼 강력한 승부보다는 기술을 겨루고 성장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전부 회원들과 관장님, 코치님과 대화를 나누다 장난스럽게 '시합에 나가야 한다.'는 말이 오갔다. 웃으며 넘겼고,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와 다르게 몸과 심장은 요동쳤던 것 같다.

시합이 다른 곳에서 열리면 원정을 가야 하는데,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 열린다는 건 지금 나가야 한다는 계시가 아닐까? 남아서 더 할 정도로 재밌어하고 좋아하는 나인데, 수업 외에 무언가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고민만 약 한 달 남짓. 드디어 결심이 섰다. 더 강해지고 더 튼튼해지고 싶었다.

수업시간과 그 외에 하는 스파링도 너무 재밌지만 처음 본 이들과 시합이라는 이름 아래에 새로운 나를 만나보고 싶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또다시 재등록 날이 다가왔을 때, 3개월을 등록하며 관장님께 말씀드렸다.


"관장님. 저 11월 1일 시합 신청하려고요-!"


관장님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신청 접수를 받아주셨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

내가 하는 킥복싱에는 장점 한 개와 단점 한 개가 있었다. 관장님 왈, 나의 피지컬과 스피드 그리고 힘은 참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킥복싱은 힘 겨루기가 아닌 상대의 공격을 예측해 가며 나의 다음 공격을 펼치는 스포츠라고 했다. 전에 들었던 섀도우 복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기술을 키워야 했다. 순간 정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상대가 너한테 잽을 날렸으면 지금 상대에게 빈 공간이 어디야? 너에게 잽을 날린 왼쪽 공간이 비어있겠지. 그럼 너는 그 잽을 더킹으로 피했다가 바로 빠르게 일어나면서 상대의 비어있는 왼쪽으로 훅을 날리는 거야. 그리고 네가 원투 잽을 날리는 걸 피하느라고 상대가 양손 가드를 올리고 있을 때 비어있는 양쪽 바디 훅을 노리는 거지."


말로 듣는 설명은 아주 이해가 쏙쏙 됐다. 나의 다음 동작까지 예상이 가능한 관장님의 설명들. 기술을 키우자. 기술을. 분명 재미가 있었는데 시합을 준비하며 각 잡고 기술을 생각하는 스파링을 하다 보니 점점 어려워지는 느낌. 정말 운동과 인생은 맞닿아있다. 처음에는 흥미를 가지고 실력을 키워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어느 시점, 약간의 번아웃 혹은 내가 못하는 모습들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멈춰 서서 주저한다. 잘한다고, 나의 잘하는 지점을 봐주고 응원해 주던 이전의 나는 없다. 킥복싱도 단계가 한층 올라가니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몸통 움직임이 너무 뻣뻣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위빙이나 더킹, 잽과 투를 날릴 때도 몸통을 움직여주며 타격을 해야 하는데, 각목 그 자체였다. 영상에 찍힌 내 모습은 주어진 잽만 날리는 로봇이 따로 없었다. 속상했다. 이러다 흥미를 잃을까 살짝 두려워지기도 했지만, 지금 이걸 넘어야 킥복싱 실력이 한층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어느 날 코치님이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잘하니깐 더 디테일한 것들을 알려주는 거예요. 못하면 그 이상 설명도 안 해요.

더 잘하라고 알려주는 거죠."


심화된 설명과 동작들, 세분화된 몸 움직임에 버퍼링이 걸리고 버거워하고 있을 때 코치님이 해주셨던 말.

나의 킥복싱 실력도, 앞으로의 인생도 지금 보다 더 나은 단계로 가기 위함의 일시적 의기소침.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후퇴한 것 같아 보여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게 맞고, 너무 어두운 것 같아 보여도 조금 더 가면 머지 않아 밝은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250913_100105.heic Photo by Oroxiweol.


ISTK. '강력한 승부보다는 기술을 겨루고 성장하는 무대'

나는 지금 성장하는 중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