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다.

by Oroxiweol

본격적인 수업 전 진행된 서킷 트레이닝으로 이미 온몸은 땀으로 범벅.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당연히 나는 아직 집에 갈 수 없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관장님의 목소리를 따라 글러브를 착용했다.

원래는 한 주 끝인 금요일의 운동량이 가장 빡셌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주 초반에도 운동이 힘들어지고 있다. 샌드백에서 2인 1조로 기본 동작과 발차기를 20개씩 3가지 동작을 진행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운동이 가장 많이 될 수 있도록 힘들게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김없이 있는 힘을 다해 잽을 날리고 발차기를 했다.

하, 역시 힘들다. 운동한 기간이 이만큼이면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전혀 아니다.

매일이 새롭다. 매일 목에서 피맛이 난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등 뒤로, 배꼽으로 흐르는 땀방울 마저 기분이 좋다.

즐거우면서도 지옥 같았던 폭풍의 50분 수업이 끝나고, 다시 들리는 관장님의 목소리.


"자, 스파링 하실 분들 11시 10분까지 장비 착용하세용~"


항상 '~용'으로 끝나는 관장님의 말투, 그리고 그렇지 못한 수업. 킹받지만 너무 즐겁다. 하하하

오늘은 스파링을 좀 쉴까 싶었지만... 그런 생각은 몰래 속으로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여느 날과 같이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격렬한 수업으로 인해 흐트러진 스트랩을 다시 감고 있었다.

나와 늘 스파링 하는 언니가 관장님께 새로 샀다는 마우스피스를 자랑하는 순간. 올 것이 왔다.

마우스피스 성형을 하기 위해 뜨거운 물을 끓여야 하는데 끓이는 김에 그냥 나도 오늘 착용하고 스파링을 하자는 관장님.

오우. 마우스피스를 물어볼 날이 내 인생에 오다니.

이건 영화에서나 보던, 내 인생에서는 만져볼 일도, 볼일도 없는 물건이었는데 말이다.


헤드기어까지는 써볼 만했었다. 그냥 헬맷처럼 머리에 쓰면 되는 거니깐. 한편으로는 저 작은 크기의 물체가 얼마나 위협적인 일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치아 모양을 그대로 본뜬 '그것'을 입에 무는 순간 정말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치, 보호 장비 없이 오토바이에 오르는 기분이랄까. 뭐, 헤드기어를 써도 맞는 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마우스피스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본격적인 복서의 느낌. 밤낮으로 줄넘기를 돌리고, 샌드백과 섀도우 복싱으로 단련이 된 고독한 복서에게 주어지는, 치고 맞고가 익숙한 이의 전투복 같은 것.

뜨거운 물에 담가서 살짝 녹은 고무를 얼른 입에 물고 내 치아 모양대로 만들어야 하는 마우스피스.

뜨거운 물이기 때문에 입천장이 까질 수도 있다고 겁을 주는 코치님.

더 무섭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매 맞을게요....

정신을 차렸을 때 포트에 물은 끓고 있었고, 관장님의 나무젓가락은 곧 나의 입으로 들어갈 마우스피스의 몸뚱이를 녹이고 있었다. '지금 물어!'와 동시에 받아 든 투명한 마우스피스. 거울로 냅다 달려가 어색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을 입에 물었다. 고무와 나의 잇몸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쓰읍 쓰읍- 빨면서 윗니, 아랫니를 앙다물었다. 빨아들일 때마다 삐질삐질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느껴보지 못했던 질감과 감각. 근데 또 대단히 이질감이 들지는 않았다. 온도도 나쁘지 않았다. 못 견딜 정도의 고통 역시 아니었다. 과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뱉지 않고 나름대로 잘 물고 있다가 찬물로 굳혔다. 겁을 줬던 것만큼 입천장이 까지지도, 못 견뎌 다리를 동동 구를 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대신 입천장이 아닌 윗니 양쪽 볼에 작고 동그란 피물집이 뿅-! 하고 생겼다.


마우스피스를 착용하고 입을 벌렸을 때 떨어지지 않으면 잘 된 거라고 했다. 입을 벌렸다. 아주 본래 나의 치아인 것 마냥 얌전히 잘 붙어있는 그것. 잘 됐으니 다행이다.

코치님이 케이스에 적어준 내 이름의 마우스피스, 그렇게 생애 첫 마우스피스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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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엄마 미안, 근데 나 너무 재밌어. 신나.




덧붙이기 :)


관장님이 알려주시는 "왜 마우스피스가 더 안전하고 필요한가요?!"

스파링을 하다 보면 입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힘이 들어서 벌어지는 경우도 있고, 경기 도중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으로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혀를 씹어서 크게 다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윗니 아랫니를 다 끼는 것이 아니고 윗니만 끼는 것이다. 경기 중 딱딱하지 않은 고무가 윗니를 감싸 혀를 다치는 일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우스피스를 착용하기 전에는 끼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 것 같다는 나의 바보 같은 생각을 한방에 정리해 주셨다.

그러니, 마우스피스를 잘 착용하고 안전하게 스파링 하자!!!!!!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