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성취와 효율을 앞세우지만, 그만큼 내면의 혼란과 공허감은 깊어지고 있다. 감정은 흔들리고, 지성은 단편화되며, 공동체의 유대는 점점 약해진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여도, 마음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 우리가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물음은 곧 정체성과 영성으로 이어진다. 정체성은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일이고, 영성은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삶을 깊고 풍성하게 하는 힘이다.
사람은 몸과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지성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감정으로 그 이해에 온기를 더하며, 의지를 통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힘은 종종 따로 흩어져,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곤 한다. 이때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조화시키는 것이 바로 영성이다.
영성은 신비를 좇는 일이 아니라, 마음과 삶을 하나로 잇는 조용한 힘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덕(德)은 바로 그 힘이 품성으로 드러난 형태였다. 덕스러움이란 곧 영성이 사람의 삶 속에 뿌리내린 모습이다. 영성은 사람의 중심을 바로 세우고,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게 하며, 삶에 깊이를 더한다.
신체는 성장과 노화를 거치며 한계에 이른다. 그러나 내적 차원은 다르다. 지성, 감성, 의지로 이루어지는 인격은 생애 전반에 걸쳐 성숙과 확장을 지속할 수 있다. 이때 영성이 그 세 힘을 묶어 주며 방향을 제시한다. 결국 인간의 인격이나 정체성은 단순한 생물학적 성숙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을 통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확립된다. 겉사람의 세속적 성공보다, 속사람의 든든한 성숙이 더 깊은 행복을 가져온다. 영성이 바로 설 때,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얻게 된다.
영성은 감정과 지성의 균형 속에서 자란다. 감정은 삶에 온기를 불어넣고, 지성은 그 온기에 방향을 준다. 영성이 없는 지성은 분석에 머물고, 지성이 없는 영성은 충동적이다.
음악가 요요 마(Yo-Yo Ma)는 연주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고 공동체를 잇는 경험으로 이해했다. 그의 음악은 영성과 감정, 지성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 준다. 마음이 조화를 이룰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품격을 띤다. 그것이 바로 덕이며, 영성이 인격 속에 머무는 형태다.
영성은 결코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은 본래 관계적 존재이며, 영성은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존중과 감사는 그 관계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한 사회가 건강한지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감사할 줄 아는가로 가늠된다.
가수 션의 “기부 러닝”은 존중과 감사가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생명을 이어가는지를 보여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의료진이 존중과 감사를 통해 다시 힘을 얻었던 경험도 마찬가지다. 물질적 보상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엇, 그것이 바로 영성의 에너지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보람과 성취, 인정과 존중 같은 영성의 양식이 더해질 때, 삶은 풍성해지고 공동체는 건강해진다.
정체성은 영성의 숨결에서 시작해, 마음을 통합하고 몸을 통해 세상 속에 드러난다. 영성은 삶의 각 조각을 하나로 묶어, 우리가 단순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게 살아가는 존재”로 서게 만든다.
영성은 덕의 근원이며, 마음의 깊이를 일으키는 힘이다. 그 힘이 사람의 삶을 고요히 이끌 때, 삶은 깊어지고, 사람은 성숙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