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의 성숙 ― 변화의 시간 속에서 자라나다

by 남상석

혼은 우리의 생각(지성), 감정, 의지가 작용하는 자리다. 따라서 혼의 변화란 삶의 중심이 진리와 원리로 옮겨지는 것을 뜻한다. 지성은 새롭게 밝아지고, 자기중심적인 감정은 사랑과 평안으로 다스려지며, 욕심을 따르던 의지는 선하고 조화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혼의 변화는 단순히 성격이 온화해지는 것을 넘어, 인격 전체가 더 진실하고 선하며 조화로운 삶으로 빚어지는 과정이다.

혼의 성숙은 언제 가능한가

혼의 성숙은 본질적으로 이 땅에서, 사람이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만 가능하다. 그것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이유이자,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 기준으로 초라해 보이거나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겨질지라도, 혼의 눈으로 보면 살아 있는 동안 변화의 기회가 주어져 있는 한 그 생명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단단해지고 새로워지며, 갈등과 싸움을 이겨 내면서 내적 성숙의 길을 걸어간다.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훈련의 과정"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변화와 성숙은 오직 이 땅에서만 허락된 귀한 기회다.

필립 얀시는 책 "보이지 않는 신에게 다가가기"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날 수 없다면, 달리십시오. 달릴 수 없다면 걸으십시오. 걸을 수 없다면 기어가십시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계속 나아가십시오.”

혼의 변화 또한 이러한 끈질긴 여정을 필요로 한다. 더 진실하고 선한 삶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혼은 서서히 성숙해 간다.

혼의 성숙과 완성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는 혼의 성숙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곳에서는 성숙이라기보다 혼의 완성이 있다. 죄와 불완전함의 영향이 사라지므로 더 이상 성장의 과정은 필요하지 않다. 혼은 정결해져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된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안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 어떤 형벌이 가해지느냐고 물었는가? 그들은 지금 그대들의 모습으로 변치 않고 남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기 이전의 말이지만, 그의 통찰은 깊은 울림을 준다.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이 땅에서 혼의 성숙을 이루는 일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완성과 직결된 과제다.

혼의 성숙과 완성을 향한 길은 결코 짧거나 쉬운 여정이 아니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성공과 실패, 기쁨과 시련이 교차한다. 필립 얀시는 말한다.

"신과 함께하는 삶은 여느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오해와 오랜 침묵, 성공과 실패, 시련과 승리가 공존하며 불안정하게 유지된다. 이 여정 중에 완전함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경기를 마칠 때까지, 그리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 인내는 그 자체로 비범한 용기의 행동이다."

성숙과 균형으로

성서에서 혼은 때로 사람 전체를, 때로 육체와 구별된 내적 차원을 가리킨다. 혼은 영과 육을 이어 주는 중심이자 삶을 움직이는 주체다. 심리학에서 혼은 지성·감성·의지를 아우르는 내적 중심으로, 생각과 감정, 선택과 책임이 만나는 자리다. 혼을 성찰할 때 우리는 존재의 깊이를 이해하고, 삶의 성숙과 균형에 가까워진다.

결국 혼은 나를 나답게 만들고 성장시키는 내적 중심이다. 그것을 아는 지혜가 곧 나를 아는 지혜이며, 삶을 숙성하게 하고 존재를 온전하게 세워 가는 힘이 된다. 이 지혜 속에서 이 땅의 삶과 그 너머의 삶은 단절되지 않고, 조화롭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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