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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Sep 12. 2024

20년간 검찰청을 찾은 1인 시위자


최근 tvn에서 방영하는 [엄마친구아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최승효(정해인 님)는 잘 나가는 미국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여자 주인공 배석류(정소민 님)에게 학창 시절 꿈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에 대해 배석류는 당황한 표정을 짓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도 간혹 흔히 듣는 아주 쉬운 질문인데도 여주인공이나 되는 배석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20년 동안 검찰청을 찾아와 1인시위를 하던 민원인이 떠올랐다. 둘을 연결하는 단어는 '꿈'이다.  


2000년 초 서초동에 있는 검찰청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서초역 7번 출구로 나오면 서울중앙지검, 6번 출구로 나오면 대검찰청으로 갈 수 있다. 출근 초기에는 두 개가 헷갈려 여러 번 대검찰청 쪽으로 나가는 실수를 했다. 7번 출구에서 계단을 걸어 지상으로 올라오면 반포대로다. 대로변에는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줄을 지어 서있다. 봄에는 초록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여름에는 초록을 넘어 짙푸른 색을 띠었다. 가을에는 어린아이 머리보다 큰 낙엽을 떨구어 가을을 흠뻑 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40대 초반의 남자가 직접 제작한 피켓을 들고 매일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1인 시위를 하는 일반 사람들처럼 가슴 앞쪽에 양손으로 한 장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등 쪽에도 현수막 한 장이 걸려 있었다.  


피켓은 몸에 착용하게 끔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평상시에는 가슴 앞쪽에 피켓을 들고 있다가 검찰청 고위간부가 들어올 때에는 피켓을 가슴 앞쪽으로 내밀며 들어 올렸다. 그렇게 피켓을 들어 올리면 머리 뒤쪽에 있던 현수막이 자동으로 정수리 위쪽으로 올라가 머리 위에서 펄럭였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현수막에 적힌 내용은 '검사 000'을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런 시위가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온 가족의 삶을 망가트리는 것을 수없이 보아온 터라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여러 해 동안 가장이 생업을 포기하면 가정이 돌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은 온전히 아내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가정의 경제가 망가지는 것이다.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어느 시대와 공간에도 그런 '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좋은데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 살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가해자에게 폭행죄가 적용이 되지 않았다고 거의 5년 동안 검찰청에 찾아와 폭행이 처벌되지 않았으니 가해자를 폭행으로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폭행은 살인죄에 포함되어 폭행은 별도로 처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설명을 했지만 이해를 하려 들지 않았다. 물론 검사가 직접 설명도 했다.


출근길에 그를 보면서 몇 해가 지났다. 검찰수사관은 한 청에서 5년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규정과 승진하면 다른 청으로 옮겨야 하는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나는 승진을 해서 강원도에 있는 검찰청으로 옮겼다. 더 이상 그를 관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끔 서울로 출장을 오는 경우 멀리서 그를 보기는 했다. 여전한 모습으로 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를 처음 본지 거의 십 년이 지난 후 다시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내가 근무하게 될 부서가 어디인지 궁금한 것보다 그가 그 자리에 계속 서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전출 후 출근을 하면서 그를 보았다. 역시 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현수막은 낡아 있었다. 현수막에 적힌 글씨도 색이 바랬는데 지워진 글씨 위에 덧칠을 한 것이 현수막을 더 낡아 보이게 했다. 머리 뒤쪽에서 펄럭이던 현수막은 없어졌다. 간부가 탄 차량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그는 손을 들어 올리지 않았다. 그가 펼쳐 들고 있는 현수막(피켓을 현수막으로 바꾸었다)에는 힘이 없었다. 낙엽처럼 나부끼는 느낌......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그가 처음 정문 앞에 나타났을 때의 결기와 다짐이 연해졌음을 느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여러 날을 일부러 그에게 다가가 스치듯 지나갔다.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그의 모습은 더 많이 초췌했다. 몇 년을 도망 다니다가 내게 잡혔던 도망자의 행색이 느껴졌다. 이빨은 여러 개가 빠져있었고 얼굴은 너무나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평평했던 이마는 골이 깊게 파여 있었고 눈 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했다. 눈동자는 좌우로 흔들렸다. 걸치고 있는 옷은 예전 그대로인데 색이 바랬다. 너무 많이 빨아 입어 옷감조차 얇아져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화무쌍한 우리나라 사계절을 맨몸으로 버티고 있었으니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마음 역시 동요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예쁘고 새롭게 지은 전원주택조차도 몇 해 만에 폐가로 만들어 버리는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낀 적이 있다. 십 년 넘게 버틴 사람이야 오죽했을까..... 그렇게 변해가는 그를 지켜보면서 3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다시 지방으로 전출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던 중에 대검찰청에서 근무하던 선배가 내가 근무하던 검찰청으로 전입을 왔다. 서울중앙지검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있어서 가끔 식사자리를 했다.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는 서초동에서만 오랫동안 근무를 한 탓에 서초동 주변에 떠돌고 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다. 선배는 내가 서초동을 떠나 있을 때 서초동에서 일어났던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배는 현수막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그 사람의 안부를 묻는 나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초동에 떠도는 그에 대한 소문을 정리하면 이렇다. 소문은 소문일 뿐....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참작하기 바란다.


현수막의 사내는 2000 초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 분양신청을 하여 로열층에 당첨이 되었는데 실제 배정을 받은 곳은 1층이었다. 가족들과 로열층에서 사는 꿈에 부풀어 있던 그에게 1층이 배정되자 그는 격분했다. 그는 건설사 대표를 고소했다. 당연히 처벌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했던 건설사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다시 무혐의 처분을 한 검사를 고소했다. 고소를 당한 검사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되자 현수막을 들고 검찰청 앞에 나타났다. 청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위를 살펴야 하는 검찰 관계자가 그에 대하여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밥도 먹지 않고 몇 날 며칠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런 그가 곧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구속을 해서 교도소에서라도 밥을 먹게 해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검찰은 명예훼손으로 그를 구속했다. 몇 달의 형기를 마친 그는 다시 현수막을 들고 검찰청사 앞에 나타났다. 방송사에서도 그를 취재했다. 무혐의 처분을 한 검사는 이미 검찰을 떠나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주변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컵라면을 먹었다. 그가 안쓰러웠던 주변 식당에서는 그에게 매일 점심을 주었다. 그가 강남역을 돌며 담배꽁초를 주워 피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검찰관계자는 명절에는 집에 얼른 들어가 쉬라며 사비를 들여 돈봉투를 쥐어주기도 했다.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은 지나다가 건강은 괜찮은지 물었다. 거의 한자리를 20년 지켰으니 주변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소했던 검사도 검찰청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현재 법으로는 그들을 처벌할 수 없으니 이제 현수막을 그만 들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가족이 모두 떠났다고 했다. 가족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일이 아니면 할 일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소문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그가 1인 시위가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또, 이 일이 아니면 할 일이 없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결국 그는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이 일이 아니면 할 일이 없어서 매일 습관적으로 검찰청으로 온다것이다.


우리는 꿈을 향해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그가 현수막을 들고 '꿈'꾸었던 것은 가족이 행복하게 머무를 로열층 아파트를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가족이 떠났다. 꿈이 사라졌다. 현수막을 들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꿈이 사라졌는데도 현수막을 계속 들다 보니 이제는 현수막을 드는 것이 오로지 목적이 되어 버렸다.


설명이 잘 되지 않는 그의 대답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의 의지대로 꾸려온 인생이기에 그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현수막을 드는 것이 그를 세상에 있게 하는, 버티게 하는 힘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글을 쓰는 내내 답을 찾기 어려웠다.


나에게 꿈은 무엇이었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보았다. 다행히 아직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수사관과 피의자 관계로 만났던 사람이 내가 수사한 내용과 결과로 인하여 고통을 받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남은 삶을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이 내꿈이다.


그가 다른 꿈을 찾아 남은 생을 잘 꾸려나가기 기원한다. 다시 서초동에 있는 검찰청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그를 만난다면 국밥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다.  그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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