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의 사내는 2000 초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 분양신청을 하여 로열층에 당첨이 되었는데 실제 배정을 받은 곳은 1층이었다. 가족들과 로열층에서 사는 꿈에 부풀어 있던 그에게 1층이 배정되자 그는 격분했다. 그는 건설사 대표를 고소했다. 당연히 처벌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했던 건설사 대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다시 무혐의 처분을 한 검사를 고소했다. 고소를 당한 검사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되자 현수막을 들고 검찰청 앞에 나타났다. 청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시위를 살펴야 하는 검찰 관계자가 그에 대하여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밥도 먹지 않고 몇 날 며칠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런 그가 곧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결국, 구속을 해서 교도소에서라도 밥을 먹게 해 죽음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검찰은 명예훼손으로 그를 구속했다. 몇 달의 형기를 마친 그는 다시 현수막을 들고 검찰청사 앞에 나타났다. 방송사에서도 그를 취재했다. 무혐의 처분을 한 검사는 이미 검찰을 떠나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주변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컵라면을 먹었다. 그가 안쓰러웠던 주변 식당에서는 그에게 매일 점심을 주었다. 그가 강남역을 돌며 담배꽁초를 주워 피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검찰관계자는 명절에는 집에 얼른 들어가 쉬라며 사비를 들여 돈봉투를 쥐어주기도 했다. 일면식이 있는 사람들은 지나다가 건강은 괜찮은지 물었다. 거의 한자리를 20년 지켰으니 주변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누군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소했던 검사도 검찰청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현재 법으로는 그들을 처벌할 수 없으니 이제 현수막을 그만 들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가족이 모두 떠났다고 했다. 가족이 어디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일이 아니면 할 일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