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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Sep 05. 2024

수천억 자산가와의 하루


“왜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아?”


아내가 말했다. 단둘이서 오크벨리의 한적한 스타벅스를 방문한 날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커피를 마시러 나가자고 했을 때, 나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의아했다. 눈빛만 봐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아내지만, 나는 가끔 그녀 속을 모를 때가 많다.


1994년 스물셋의 나이로 스물하나였던 아내와 만났다. 혜화동 대학로에서의 첫 만남 이후 연애를 시작했고, 그러던 중 IMF 사태가 터졌다. 당장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검찰수사관이 되었다. 수사관 시험에 합격하던 해 나는 아내와 결혼했다. 그전까지 8년을 사귀었다. 결혼을 한 후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당시 그녀는 수사관 초봉의 세 배 넘는 월급을 받고 있었는데, 아기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30년을 함께 했다.


"모르겠는데? “


커피잔이 올라간 테이블이 우리 가운데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렇게 답했다. 바로 전까지 내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길래, 서운한 점이라도 털어놓으려나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대신 아내는 나를 왜 좋아하는지 조곤조곤 말해주었다.


"자기는 내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잘 들어줘. 낮에 아이들이랑 있던 일을 말하면 가만히 들어주는 게 좋아. 그리고 회사에서 있던 일 이야기해 주는 것도 좋아. "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재운 후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소한 행동이 지금까지도 아내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던 것.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아내의 진심 어린 말 덕분에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우려했던 갈굼은 없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나와 시원하게 펼쳐진 오크벨리의 필드 옆 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우리 팀이 구속했던 수조 원 자산가가 생각났다. 그는 막대한 부를 이룬 자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당시 우리 팀은 골프장 필드를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이리저리 누볐다. 피의자는 수도권에 아주 많은 골프장을 소유한 갑부였고, 건설업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속된 그가 교도소로 들어가기 전까지 겪은 일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영장실질심사 후 피의자와 나는 사무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원래는 교도소로 이동해 영장 발부를 기다려야 했지만, 피의자는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서를 제출해 교도소 밖 검찰청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피의자는 내 나이와 결혼 여부, 아이는 몇 명 있는지 시시콜콜한 것을 물었다. 그는 거의 천억 원 가까이 횡령한 자였다. 연봉, 배당수익 등을 포함해 매년 수십억 원을 벌고 있는데도 회삿돈을 빼돌려 본처도 아닌 내연녀 집을 얻어주었고, 고급 차와 명품 가방을 사줬다. 그러기 위해 직원 성과 상여금을 거짓으로 지급해 돌려받았고, 허위 세금계산서 전문 발행처와 거래했으며 계열사에 원자재를 원가보다 비싸게 사고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았다. 그야말로 비자금 종합 선물 세트. 파렴치한 그에게 정이 붙을 리 없었다. 나는 두루뭉술 대답하며 구속 여부가 나오길 기다렸다.


"회장님 식사하셔야 하는데요."


그러던 중 갑자기 변호인이 들어와 내게 말했다. 마치 내가 밥을 못 먹게 하고 있다는 것처럼 굴었다.


"예 드세요."


나는 벽에 붙어있는 테이블을 피의자 앞으로 옮겨주었다. 문득 피의자의 식사 메뉴가 궁금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재벌들의 으리으리한 반상이 나올까 싶었던 것. 하지만 변호인은 보온 도시락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왔다. 변호인은 그 허름한 도시락을 정성 가득한 손길로 열었다. 수십억의 수임료를 받았으니 저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식사하셔야 하는데요."


변호인은 이번엔 소리를 질렀다. 피의자가 조용히 식사하시길 원하니 나가 있으라는 뜻이었다.


"저는 신병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자리를 비울 수 없어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결국 피의자는 내가 보는 앞에서 도시락을 열었다. 그 안을 들여다본 나는 혀를 차고 말았다. 김치 조금, 죽 조금, 된장국이 전부였다.


"이거 드시고 되겠어요? 영장 발부되면 교도소에서 생활하셔야 하는데. 건강하셔야죠."

"매일 혼자 이렇게 먹습니다."

"혼자요?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드시는 거예요?"

"뭐 함께 먹을 사람도 없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피의자에게 물었고, 그는 묵묵히 대답했다. 수사관은 피의자의 모든 걸을 안다. 계좌 추적과 압수수색을 통해서 피의자 가족 현황에 대해서도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피의자는 아내와 남남처럼 지내는 중이었다. 아무리 내연녀에게 수억을 받쳐도, 결혼을 약속한 아내에게 버림받아 홀로 초라한 도시락을 먹는 그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수조 원을 가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수사관님. 구속영장 발부되었습니다."


피의자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10시가 되자 법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피의자와 변호인은 전화를 끊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발부되었데요. 이제 교도소 가셔야 하니 변호인은 하시고 싶은 말씀 하시고 나가주시고요."


나는 호송팀을 꾸린 후 차량을 대기시켰다. 정문 앞에 기자들은 없었다. 구치소로 가는 내내 피의자는 한숨만 내리 쉬었다. 교도소 외문을 지나 내문 앞에 도착했을 땐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했다. 수감되는 피의자 대부분이 마지막 담배를 하나 피우고 싶어 했기에, 나는 항상 담배와 라이터를 가지고 다녔다. 내가 건넨 담배를 모두 피운 피의자는 교도소로 들어갔다. 마침내 1년 6개월의 수사가 마무리되었다.


오크밸리 필드 옆 도로를 빠져나오며, 나는 수조 원 자산가와 함께한 하루를 떠올렸다. 삶이라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그렇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어떻게 죽어야 할지도 고민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많은 돈을 버는 게 성공한 삶이라면 공무원인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해준 말이 그 증거다. 30년간 그녀를 위하고 서로 배려하며 산 것, 그녀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것, 자기 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런 일이 내 인생을 더 좋게 만든다. 파렴치한 방법으로 돈을 불린 자의 초라한 도시락과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분명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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