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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Aug 29. 2024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


태백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창원검찰청에서 수배한 피의자가 태백경찰서 관할 안에서 검거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수사권 조정이 있기 전에는 태백경찰서 호송팀이 검거된 피의자를 창원검찰청까지 호송했지만 이제는 검찰청 소속의 검찰수사관이 직접 호송한다.


나는 우선 검거된 피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덩치가 큰지 작은지, 주취 상태인지, 검거될 때 저항은 있었는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등이었다. 피의자가 여성인 경우 당일 당직인 여 수사관을 호송팀에 배치를 해야 한다. 다양한 질문을 통해 도주의 우려가 없는 것으로 판단을 한 후, 2명으로 호송팀을 꾸렸다는 보고를 마쳤다. 나는 서둘러 차를 몰아 태백경찰서로 갔다. 태백 경찰서를 들러 창원에 다녀오려면 새벽녘이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었기에 서둘렀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신병 인수 등 필요한 절차를 마쳤다. 수갑을 채운 피의자를 호송 차량에 태우기 위해 경찰서를 나오는 순간 신분증을 돌려받지 않은 사실을 깨달았다. 호송차량을 50미터 앞에 둔 상태였다. 수갑이 채워진 피의자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넘어질 듯 뼈에 가죽만 남은 상태였다. 나는 함께 호송을 하는 수사관(나보다 3년 빨리 입사했지만 직급은 낮은)에게 피의자를 잘 감시하라는 당부를 하고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님 이분 팔짱을 좀 끼고 계세요 도망가면 큰일 납니다 주의 깊게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얼른 다녀오세요"


경찰서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선배가 피의자를 붙잡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피의자는 수갑을 찬 채로 주차장 한가운데 혼자 서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황량한 벌판에 수갑을 차고 혼자 서있는 딱 그 장면이었다. 우~~~ 우~~~ 우~~~ 우~~~ 우 하는 배경음악이 적당한 그런......


나는 서둘러 피의자의 팔짱을 끼고 사방을 둘러 선배를 찾았다. 한데 선배는 100미터가량 떨어진 주차장 끝트머리(태백경찰서의 주차장은 진짜 넓다) 담벼락 아래에서, 담벼락을 보고, 등을 돌린 채,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피의자가 도망을 갔어도 한참을 갔을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선배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축구를 취미로 가지고 있어 달리기는 매우 빨랐다.


"아니 사람을 지키라고 했더니 거기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면 어떡해요?"

"안도망 간다더라고"

"그걸 믿으세요 안도망 가는 사람이 몇 년을 도망 다니다가 검거가 되었겠어요. 옆을 지키셨어야지요"

"앞으로 잘할게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당일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피의자를 창원까지 호송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그 선배를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아니.... 팀장으로서 팀원의 업무능력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의 악행(?)과 기행(?)에 대한 다양한 소문이 내 귀에 들여왔다. 소문은 소문일 뿐.... 나는 내 눈으로 본 것만 기억을 하기에 소문은 무시를 했다. 예의 주시하며 선배를 살펴보며 점점 그에게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관찰을 하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특히 선배가 검거된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호송 업무 중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노숙자, 환자 등,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호송차에 혼자 타지도 못할 정도로 걷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심한 경우에는 온몸에 오물이 묻어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수사관들은 그런 피호송인 곁으로 가까이 가는 걸 피했다.   


하지만, 선배는 그렇지 않았다. 선배는 호송차에 발을 올리기도 힘든 사람들의 손을 잡아 호송차에 쉽게 탈 수 있도록 도왔다. 차에서 내릴 때에도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손을 잡아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오물이 묻어있는 손조차 거부하지 않고 손을 잡아 주었다. 손을 잡고 교도소 입구의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피호송인의 손을 잡게 되었다.


선배 역시 거칠고 어눌한 손길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선배가 따뜻한 마음으로 피호송인들을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송 중에도 늘 피고인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며 조심하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장거리 호송을 갈 때에는 항상 먹을 것을 챙겨서 더 먹으라는 당부를 했다 교도소에 가면 배가 고플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경악했던 풍경도 그가 피의자를 어딘가에 잡아두어야 할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여기 가만히 서 있어 달라고 부탁하면 응당 들어줄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선배는 몸소 보여주었다. 검거된 사람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의사 판단이 힘든 상황인 사람도 있었다.


선배가 9급 서기보로 남아 있는 동안, 그의 동기들은 4급 서기관이 되었다. 일반적인 직업적 성공은 승진이나 성과로 측정될 것이다. 그는 때에 맞춰 승진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가 특정한 방면에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중심에는 그가 피고인들을 대하는 방식이 있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한 1년 반의 시간을 수사관 생활 통틀어 가장 의미 있고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법은 냉정하지만, 그 안에 사람의 온기도 존재할 수 있는 사실을 나는 선배를 통해 배웠다. 지금은 다른 검찰청으로 옮겨가 일을 하고 있다. 가끔 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배가 보여준 인간적 배려와 따스함은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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