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벌어둬야 할까?
고민 상담하는 어느 글에서였다. 현재 집을 소유하고 있는 아이가 없는 싱글이란다. 현금 10억이 있단다. 현재 나이가 60이 넘어가는데 연금은 150만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남은 노년을 이대로 잘 살 수 있을지 불안해하면서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아침부터 이 글을 읽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현금 10억이 그렇게 작은 돈일까? 10억이라는 돈으론 부족할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에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 글의 내용이었는데.. 그렇다면 내 경우 나이 60 정도에 퇴직을 하게 된다면 돈은 과연 얼마나 벌어둬야 하는 것일까? 통장에 얼마의 현금이 있어야 할까? 덕분에 나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재테크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1940년대 50년대 생으로 참으로 어려운 역사적 상황에 태어나신 두 분이시다. 6.25 전쟁과 제주의 4.3의 피해자로서 학교를 제대로 잘 다니지 못하셨다. 하지만 기술을 배워서 20대 후반에는 건물주가 되신 두 분이시다. 동네 분들이 지금도 말씀하신다. "너희들 부모님들이 젊은 시절에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셨는지 몰라." 아빠가 그러셨다. "아껴 써라. 아빠는 슬리퍼 하나로 1년을 버텼었어. 그러니 빨리 건물주가 되긴 한 거지.." 엄마도 그렇다. 아낌의 미학을 가계부로 승화시키는 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깨알같이 가계부를 써오신지 50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지금도 신용 카드를 안 쓰신다. '빚'이란 '악'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시다. 돈이 없으면 안 쓰시지 꿔 오시는 건 하나도 없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나중에 돈 드릴게요.' '나중에 갖다드릴게요.' 하는 법이 없다. 없으면 그냥 안 사신다.
한 10년 전쯤에 엄마가 목걸이 반지 등을 담아 들고 다니던 가방이 집 대문 앞에 툭하고 떨어진 적이 있었다. 밤늦게 식구들과 나들이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차에서 내리다가 가방이 몸에 걸려 그냥 툭하고 떨어졌는데, 순간 가방 생각을 못하고 들어왔던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에야 생각이 나서 밖에 부랴부랴 나갔는데 차 CCTV블랙박스에 가방이 떨어져 있는 장면이 찍혀 있고 한 시간이 안 되어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 가방을 들고 가버리는 것이 찍혔다. 문제는 그 당시 블랙박스 영상 화질이 어두운 밤이었고 그다지 좋지가 않아 사람 모습이 잘 판별이 되지 않았다는 것... 물론 어디론가 더 전문적인 곳에 보내면 알아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찾는 것을 포기하셨다. 부모님이 할머니에게서부터 받은 결혼 반지와 목걸이 등 당시 최소 1천만원 가량의 금과 보석이라고 했다. 혹시나 하고 종이를 붙여 찾아서 갖다 주면 사례금을 주겠다고도 했다. 어쩌면 돌아올 수도 있지 않겠나 싶어서..
아무런 소식은 없고, 그러던 중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그 주택 2층에 임대를 줬던 한 여성 분이 엄마와 마주쳤는데 잠시 얼음이 된 표정이라 이상해서 봤더니, 그 잃어버린 빨간 지갑을 손에 들고 있더란다. 흔한 지갑은 아니었어서 엄마도 보고 놀랐다고 하는데 잠시 서로 흠짓 했다고...
"엄마, 그 지갑 잠깐 보자고.. 말이라도 해야 했던 거 아니에요." 엄마는 단호하게 그 여자분이 가져갔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함부로 의심하기도 그렇고 그냥 불쌍한 사람 도와줬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묻기로 했다고... 그 여자분은 이상하게도 그 해 설에 처음으로 조그만 선물 상자를 하나 가지고 왔다고 했다. 난 돈을 떠나서 엄마의 추억이 담긴 목걸이와 반지였기에 내가 다 속상했다.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적 갑작스러운 역사적 상황으로 너무 어려운 시절을 겪어내야만 했던지라, 모두 그 시기에 아버지(할아버지)를 잃었고 엄마와 오롯이 가난을 이겨내야 했기에 다시 또 그런 가난이 올까 봐 무서웠다고 한다. 지금도 그 시절이 다시 올까 봐 무서워 열심히 일한다고도 말할 정도다.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혼자 꿋꿋하게 자녀들 뒷바라지하시고 훗날 편안히 돌아가셨다.
"가난을 겪어보다." 가난을 겪어봤던 우리 부모님은 우리에게는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는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키우신 것 같다. 자신들에게는 인색했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좋은 물건, 좋은 음식, 좋은 것만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엄마는 오일장에서 1만원짜리 신발을 사 신으시면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브랜드 신발을 보고 예쁘다니까 그곳에 데리고 가서 몇 십만원짜리를 매장에 가서 직접 사주셨다. 옷도 책도 신발도 사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사주셨다.
고등학교 때 '엠시스퀘어'인가 친구가 쓰길래 나도 사고 싶다고 했는데, 딱 한 번 그 때 아빠가 반대해서 내가 한 3개월을 심통 부렸던 적이 있다. 뭘 사고 싶다고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 때는 진짜 이유를 모르고 반항심이 처음으로 강하게 표출되었던 때였다. 후에 물어보니까 아빠는 그 기계가 음파로 '뇌파'를 움직여서 혹시나 머리가 이상해질까 봐 많이 걱정을 했다고 했다. 가격도 그 당시 몇십만원이었는데 난 단순히 비싸다고 안 사주는 줄만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 때 장학금을 1백만원 받았던 때였다. 그 장학금으로 사고 싶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해서 엉엉 울면서 속상해 했었다. 그 물건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학교에서 자습시간 소란스러웠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긴 했는데 내 경우는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너무 안 되었다. 그래서 뚜뚜뚜... 이런 소리가 나는 그 기계를 반 친구가 쓰는 것을 보고 딱 이거다 싶어 완전 내 머릿속에 그것만 꽂혀 얼른 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3개월 심통 부리다가 5개월 후쯤 사긴 샀다.(가족 간의 진실된 대화가 중요하다. 아빠의 그런 마음을 진작 알았다면 난 심통을 부리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너무 사고 싶어 아빠의 마음을 내가 진작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
이렇게 한 고비 빼고는 대학 시절까지 순탄하게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고액 과외 이런 것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내가 사고 싶은 책만큼은 부모님께서 가능한 모두 웬만하면 사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부모님께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잘 갚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가난을 겪어보다." 결혼 초에 무료 예식장에서 결혼 반지 하나 없이 제대로운 신혼여행도 없이 결혼하면서도 가난을 느끼지 못했다. 갈 곳 한 곳 없는데 부모님이 세주시던 집 한 곳에 부탁해서 2~3년 무료로 지냈다. 그 때 내 몸이 계속해서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은 멀쩡하지만 그 때는 이상하게도 별별 병이 하나씩 늘어갔다. 겉은 멀쩡하게 웃으려 했고 가난을 느끼지 않는다 했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고 알아갔던 것 같다. 내 환경의 변화를... 친정 부모님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삶을 보내고.. 좋은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고.. 그 후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내 삶에 끼어드는 심각한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다. 연륜이란 게 생기면 지혜가 생겨나는 것일까.. 삶의 지혜는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야 알아차렸다. 여러 일이 있었다. 바보 같이 그냥 쉽게 넘겼던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그 여러 일들을 통해서 결국 안목이 생겨났고 가난의 원인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나서 나도 최근 5년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통장에 10만원만 있는 채로 아이와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어느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고.. 내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지했던 것과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에 대한 반성, 큰 돈을 내고 치른 수업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때는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한 순간들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났는지.. 그리고 최근 5년은 정신적으로 부모님이 곁에서 격려해주어서 아이와 그 힘들었던 시기를 건강하게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의 소중함을 가족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다. 경제적인 도움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위안과 도움이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이제는 더이상 다시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
연금과 현금 10억이 있는데 노후를 걱정하는 그 고민 글은 순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월급쟁이로서 10억을 모은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1천만원씩 10년을 모아야 1억, 3천만원씩 10년을 모아야 3억인데... 예전에는 돈이 뭐가 중요해서, '적당히 쓸 돈만 있음 되지..' 그런데 그 적당한 돈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닌 것 같다. 어제 장을 보고 나오는데 10만원은 훌쩍 거기에 고기나 생선을 조금 더 사니까 20만원 가까이 나온다. 하루 10만원씩만 써도 한 달이면 3백만원이다. 기본으로 나가는 핸드폰비 공과금, 보험료 등등은 또 있는데..
과연 돈을 얼마나 벌어둬야 할까.. 2월에는 차근차근 미래 계획도 세워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요즘도 말씀하신다. "잘 모아 두라. 나이 들면 돈 있어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안 쓰면 되긴 하지만, 내가 꼭 사고 싶은 걸 사고 싶다면 내 욕구를 어느 정도는 충족하고 싶다면 어떻게 재테크를 하고 돈을 모아갈지 조금은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모두가 마음속에 적어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겠지.. 어떤 일을 어떻게 언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 '연금과 현금 10억' 고민 글에 댓글이 하나도 안 달리더니, 잠시 후 '부럽네요.'라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가난이 죄가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그 가난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떤 꿈과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할지는 중요한 질문이 될 것 같다.
"엄마, 엄마도 10억 이상 충분히 벌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도 내게 큰 희망을 주는 아이가 있기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열심히 일한다. 이미 우리 아이는 나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