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버스의 창밖 풍경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날이 종종 있었다. 하늘이 우중충하게 물들어 기분을 좀먹어가거나, 유독 도로가 정체되어 버스가 느리게 굴러가는 날이면 창밖 풍경을 보는 대신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문득,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피곤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 그런 얼굴. 작은 휴대폰 화면을 무아지경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 혹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몰입해 시선은 그저 멍하니 툭 던져놓은 사람들까지. 그들은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려는 얼굴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면면을 보며 일종의 동질감과 위로를 느꼈던 것 같다. 그때 문득,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자주 건네는 말이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 흔히 위로처럼 쓰이곤 한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괜찮아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뜻이 함께 들어 있는 게 아닐까?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에게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얼마나 힘든지, 어째서 힘든지,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견딜만한 건지. 내가 에너지를 쏟아 설명해야 할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야 만다. 그걸 알아챈 순간부터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괜찮다는 말은 내게 하루를, 혹은 순간의 난처함을 넘기려는 대처법에 가까웠다. 나는 잘 지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회사 카페에서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느낀 적이 있다. 요즘 힘들지 않으냐는 직장동료의 질문에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있나요, 뭐. 다들 이렇게 살잖아요.” 너스레를 떠는 듯한 대답에 질문을 던진 사람은 허허 웃었다. 하지만 다들 내색하지 않을 뿐, 힘들게 지내고 있고 나만 유난인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내게는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들렸다. 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수월한 길임을 깨달은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그 말이 목에 걸린 듯 불편하다고 느끼면서도.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말이 나 혼자만의 방어가 아니라 이 시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임시방편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지만, 예전처럼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괜찮다는 말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긴 했지만, 언젠가는 다른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