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다고 말했고, 몸은 아니라고 답했다

by 심주영



나는 알량하게도, 괜찮다는 말 하나로 나 자신을 설득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몸은 조금 다른 대답을 준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상 증상은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에는 그저 낮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으로 넘겼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고 즐기는 터라 종종 밤잠을 설치는 날이 더러 있었다. 그런 날 중 하나일 것으로 여기고 넘기기를 며칠, 불면의 밤이 보름을 꼬박 넘기고서야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드는 것도 어려웠고, 자는 도중 중간에 깨어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출근은 해야 하니 부족한 수면량을 낮에 채울 방법도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피로가 쌓여갔다. 업무 중 실수하는 일만큼은 없게 하려고 점점 나를 갈아 넣어야 했다. 출근해야만 하는 주중에 쌓인 피로를 주말에라도 풀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주말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해결되지 못한 피로는 내 안에 계속 남아있었다. 이러한 이상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 눈에 띄는 피해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평화는 잠깐이었다. 건강 검진에서 슬슬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던 것들이 내 몸에 차곡차곡 쌓여 뻥 터져버린 걸까. 추가 검사가 필요한 항목들이 생겼고, 병원에서는 입원까지 권유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많이 놀라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현실감이 없었고, 그저 일이 조금 번거로워지겠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의사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의사가 열심히 늘어놓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이미 내 몸에서 벌어진 일이며, 까딱하다간 앞으로 일어날 일은 더 어마어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더 요란스러웠다. 젊은 나이 하나만 믿고 몸을 혹사하면 어떡하냐는 걱정 섞인 타박도 들었다. 말 그대로였다. 나는 내가 그리 무리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고 내 몸을 혹사했다. ‘괜찮다’, ‘잘 지낸다’라는 대답으로 순간의 질문을 모면하고 진실을 숨겨온 게 패착이었다. 남들 앞에서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 거듭될수록 나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 버렸다. 나는 정말 잘 지내고 있고 누구보다도 괜찮다고. 남들도 다 이렇게 살고 있으며, 그래도 아무 문제 없다고.


내가 조용히 참고 넘겼던 숱한 말들과 생각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게 아니었다. 그저 차곡차곡 내 몸 안에 쌓여 결국 내 몸을, 나 자체를 갉아먹고 있었을 뿐. 몸은 내가 삼킨 말들을 대신 토해냈다. 내가 끝까지 외면하려 했던 진실을 결국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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