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멈춰도 세상은 망하지 않았다

by 심주영



지금껏 그래왔듯이 며칠 쉬면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짧게 휴가를 냈다. 최근 몇 년간은 퇴근 후, 혹은 주말에도 일 생각을 전혀 안 하고 넘어가는 날이 드물었다. 회사를 벗어나도 회사 안에 계속 있는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하다못해 다들 편하게 마음 놓고 쉬는 명절 연휴까지도 그러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게 내 심신에 여러모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휴가에는 절대 업무, 회사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함께였다.


하지만 공과 사의 경계가 이미 허물어진 탓에 내 생각만큼 회복은 쉽지 않았다. 몇 년에 걸쳐 천천히 무너져 내린 내 건강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고작 며칠 쉬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몇 번 병원에 다니며 약을 타 먹는 것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입원 후 정밀 검사와 집중 치료를 권유하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짧게 고민했다. 망설인 이유는 역시나 회사였다. 일의 특성상 자리를 길게 비웠다 돌아오면 실적을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돌아온 뒤를 생각하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혼자 며칠을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지금 이 젊은 나이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데도 회사를 더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허탈하고, 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몸이 끝내 아니라고 말했으니, 이제는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막상 결심하고 나자 실행에 옮기는 건 빨랐다. 회사에 병가를 내고 나서는 입원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 늘 바삐 돌아가던 회사를 벗어나 혼자 병실에 남겨진 후에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정신없이 일을 해내며 하루를 보내는 게 당연했던 일상을 벗어났다.


내가 잠시 멈춘 그 순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당연하게도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나를 재촉하는 사람도, 제 시간 내에 일을 끝마쳐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을 뿐이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달려온 나날이 마치 거짓말 같았다. 오롯이 나 하나만 걱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루를 꾸려나갔다.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에 보상이라도 하듯 온종일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푹 쉬기만 했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못 가 사라졌다.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내가 만들어낸 압박의 대부분이 생각보다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는 미세한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토록 걱정하고 마음 졸였던 것들을 다 등져버렸음에도,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갔다. 내가 버텨야만 돌아간다고 믿었던 세계는, 사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스스로 몰아붙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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