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막상 다른 말을 하려니, 나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괜히 어색하게 웃어 보이거나,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게 먼저였다.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기 전, 늘 스스로 한 번 걸러냈다. 무언가 내 안에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변화의 실체를 잡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내가 문제라고 인식했을 땐 나 자신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타고난 기질을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가만히 멈춰 타인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덤이었다. 내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임을 알고 있었기에 꽤 오랜 시간 홀로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이어가며 생겨난 침묵의 이유가 무엇인지.
언젠가부터 안부를 묻는 말에는 늘 괜찮다거나 잘 지낸다는 말로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 짓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조금 엄살을 부리는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뒤를 따라야 할 수많은 말들이 싫었다.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내가 힘든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내 상태를 이해받기 위해 애써야 하는 구조처럼 느껴져서 싫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반대로 속내를 털어놓아도 무방할 정도로 가까운 이들에게는 그 이유가 조금 달랐다. 버티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힘든 내색을 하기가 어려웠다. 요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지 않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그런 사회에서 나만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괜한 엄살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나는 그런 유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해낸 많은 것들이 아등바등 힘겹게 이뤄낸 것으로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 늘 많은 것을 해결하고, 알아서 잘하던 아이였기에 혹시라도 나로 인해 타인이 걱정하는 게 싫었다. 한 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이후로는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또 괜찮다는 말로 속내를 감춰야만 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나는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쪽을 선택해 왔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설득하며 살아온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서로에게 괜찮다는 말만 남기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