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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Nov 30. 2022

지킬 수 없는 계획, 이룰 수 없는 목표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

내가 매일 세우는 것들이다. 나한테 과다하게 높은 허들을 세우고, 뛰어넘으라고 강요한다, 등 떠밀고, 그러지 못했을 때 자책한다.

내가 이러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목표를 100으로 세워야 70이라도 하지!라는 마음. 그리고 2. 이 습관이 내 인생을 이만큼이라도 끌어왔다는 생각.

왠지 낮은 목표를 세우면 내가 ‘그 정도 밖에’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하루에 나는 10시간 넘게 집중할 체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에 13시간 공부하기’ 같은 목표를 잡아 놓으면, 왠지 내가 그럴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러면 ‘고승덕은 이렇게 공부했다는데 나는 이러니까 이렇게 살지’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 내가 공부하기 시작한 원동력은, ‘남들에게 무시받기 싫다’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 사람을 줄 세우기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무시하지 않던 사람은 예쁜 친구, 돈 많은 친구, 그리고 공부 잘하는 친구. 딱 이 세 가지였다. 그 친구에게 무시받은 나는 너무 분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무시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첫 두 가지는 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나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좋은 성적을 받아서 내가 대학에 와서 느낀 것은… 그런 원동력으로 살면, 끝없이 그렇게 살게 된다. 나는 끝없이 나를 갉아먹고 자책하면서 살고, 그렇게 줄 세우는 사람은 끝없이 줄을 세운다. 좋은 대학에 왔더니, 이 대학 안에서 성적으로 또 줄을 세우고, 또 외모로 줄을 세우고… 줄을 세우는 사람들은 평생 줄을 세우면서 산다. 그리고 그 줄 안에 들어가던지 안 들어가던지는 내 선택이다.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가. ‘가치가 매겨지는 대상’으로 나를 바라볼 건지, 그 이상인 사람으로 살아갈 건지는, 내 내면이 내리는 선택이다.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놓지 못했던 이유는 내 인생을 바꾼 큰 성취 중에 하나가 그런 원동력에서 시작됐기에, 이 궤도를 벗어나는 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나를 온전히 믿기에는 너무 두렵다. 아직 다른 방법은 잘 모른다. ‘한번 해보자’라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게 느껴진다. 나를 채찍질하지 않는다면 남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그런 성과는 나에게서 나오지 않을까 봐, 그랬을 때 부모님, 그리고 나 자신을 실망시킬까 봐 너무 두렵다. 사실 나도 마음속 깊이는 이 궤도를 탈피하고 싶다.


요새 일기장에 자주 쓰는 문장이: “I’m sick of feeling inadequate.(불충분하다고 느껴지는 게 지겨워)”이다. 웃긴 점이, 채우지 못할 빈칸을 주고 ‘왜 못 채워!’라면서 자신을 자책하면서 살았으면서, 내가 왜 자존감이 낮은 가에 대해서 고민했다는 것이다. 정답은 너무 명백한데.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을 매일처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자존감이 높으면 그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다 못 해도 괜찮아. 1등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말을 들으면 울음이 날 것 같다. 요새 느끼는 건데, ~ 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이 참 중요한 것 같다. 하나의 예로, ‘난 의대에 가지 않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했다가 치대에 온 친구들은 치대 생활을 잘하면서도 의대에 대해 평생 열등감과 아쉬움을 갖고 산다. 참 웃긴 일이다. 최근 수련병원을 알아보면서 더욱 더 느꼈다.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은 참 위험하고, 무섭고, 나를 갉아먹는다. 세상에 다 나쁜 일은 없고 모든 일은 풀리기 마련이다. 내가 고3 때 정시에 다 떨어지지 않아서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치과의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수능 망해서 어떡하지’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수능 망해서 다행’이었다.

사실로는 알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에 참 나를 심란하고 힘들게 하지만… 매일 연습하면 10번 중에 2-3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습해보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단단해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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