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배드슬리퍼(bad sleeper) - 신는 슬리퍼 말고…
그러고 보니 40세가 다 돼가는 이 시점에 생전 처음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한 내가 매번 듣는 질문이 있다.
“잠은 잘 주무시나요?”
상담을 위해 처음 정신과에 방문하여 다음 방문 때까지 작성해 오라고 한 질문지가 있었다.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 수면패턴을 기록하는 시험지도 있었는데 평균적으로 잠든 시간, 최근 한 달간 평균 수면시간, 수면시간이 대체로 일정한지 편차가 큰 편인지 등등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 달간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잠에 들었다. 기록된 수면패턴을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아니 내 예상보다 더 수면습관이 들쭉날쭉이었다. 어떤 날은 새벽 세, 네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고 어떤 날은 밤 열 시, 열한 시에도 잠들었고 늘 아침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로 기상시간은 아이가 있는 주부로서 어쩔 수 없이 일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입면 시간이 엉망진창이었다. 결국 내가 작성한 기록지에서 수면에 대한 결과는 ‘Bad Sleeper’라고 나왔다. 확실히 나는 “나쁜 수면러”였다.
아침에 기상을 하면 빈 속에 찐하게 탄 커피부터 들이붓고 하루를 시작했으며 중간중간 물도 마셨지만 우유에도 커피를 타마시고 누가 차마 시자 하면 고르는 건 늘 아아, 또는 아이스라테였다. 오후 네, 다섯 시에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진이 빠진 나는 이때에도 부족한 ‘체력’인지 딸리는 ‘기력’인지를 충전하겠답시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아이들과의 저녁시간을 버텼다. 겨우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난 뒤에는 오후 늦게 마신 커피 탓에 새벽 두, 세시까지는 뜬 눈으로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정신이든 체력이든 기분이든 집중력이든 멀쩡할 리가 없었다. 특히 ADHD를 가지고 있거나 우울증, 불안 장애 등의 정신과적 장애를 가진 경우에도 대체적으로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면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상담 끝에 ‘라제팜 정’이라는 수면제를 처방받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가장 적은 용량을 그나마도 반으로 쪼개서 처방을 해주셨는데 잠에 일찍 들지 못할 때 필요할 때만 복용하면 된다고 하셨다. 수면제에 대해 왠지 모를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는 최저 용량으로 필요할 때만 복용 시에는 크게 부작용이 없을 거라는 안내에 마음을 놓고 처방받아 왔다.
내가 가진 나쁜 수면습관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자다 깨는 습관은 최악이었다. 첫 아이 임신 막달 때부터 신체의 불편함으로 자주 깨기 시작하면서 두 아이가 신생아 시기였을 때를 지나 배변훈련 시기까지 엄마로서의 걱정과 불안으로 자주 깨던 것이 이제는 패턴화 되어 지금까지도 길게 자든 짧게 자든 최소 1회 이상 평균 2,3회 이상은 꼭 깨고 다시 자려면 잠이 잘 들지 않아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내가 처방받은 수면제는 그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약이었다. 약물의 지속시간이 길어 수면유지가 잘 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잘 맞는 약이었고 최저용량으로 처방받았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약이었다.
이 약을 복용하면서 확실히 수면패턴이 안정화되었고, 봄부터 살기 위해 시작한 배드민턴까지 더해져 요즘은 밤 열한 시에서 열두 시 사이로 잠들게 되었다. 받아온 약을 매번 먹지는 않고 밤 열두 시가 되어도 졸리기는커녕 정신이 말똥말똥할 때 반 알을 먹고 바로 침대에 누우면 어느샌가 잠들어 아침에 개운하게 깼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쓰는 글들이 신경정신과에 대한 찬양 또는 관련 약에 대한 찬양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방금 막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에 대해서는 담당선생님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면서 부작용처럼 발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 통화로 상담이 가능했던 부분이 있었고, 처음 복용하는 약은 어린이가 복용하는 수준으로 약의 용량을 아주 적게 시작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천천히 약에 대해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담당선생님과 1-3주 주기로 보다 보니 은근하게 내적 친밀감이 생겨 나도 모르게 마음을 터놓고 싶어 진다는 부분이다. 그냥 지인들에게 털어놓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고민이나 생각, 내 특징들도 선생님께 털어놓으면 이상하단 이야기 대신 그럴 수 있다며 원하는 지점까지 좋아질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니 꾸준히 병원에 다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약도 나에게 맞게 용량이나 종류를 바꿔가면서 늘 부작용을 확인하고 지난번에 처방받은 약을 복용한 동안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스스로도 다음 방문 때 알려드릴 목적으로 조금씩 기록하다 보니 점점 맞는 약을 찾아가게 된 듯하다.
코가 막히고 목이 아프면 이비인후과, 몸이 안 좋으면 내과, 눈이 불편하면 안과에 가듯 마음과 정신이 힘들 때 신경정신과에 방문해서 힘든 일을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는 과정이 마음과 정신을 관리하는 어떻게 보면 자기 관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의 마음과 정신이 건강한 것이 아이들 육아에도 긍정적일 것 같아 꾸준히 다니고 있다. ADHD가 있지만 아이들에겐 믿음직한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