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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 혹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남편이 나에게 긴급 처방해 주는 안주는 바로 생연어다. 그만큼 나의 최애 안주이며 언제 어디서든 나의 컨디션을 끌어올리기에 가장 확실한 안주다.
내가 생연어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것은 10년 전 즈음이었다. 한참 생연어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시절이었고 여기저기 생연어 무한리필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28살 한참 술 먹기 좋아하던 나이에 무한리필 생연어를 처음 먹어보고 쌍엄지를 날리며 극찬을 했다. 두툼하게 썰은 연어를 그냥 먹어도 맛있고 고추냉이를 탄 간장에 콕 찍어 먹어도 맛있고 얇게 채 썰은 양파와 무순을 올려서 김에 싸 먹어도 맛있었다. 그렇게 연어의 매력에 빠져 일주일에 한 번꼴로 친한 친구와 생연어집을 찾아갔고 10년이 흐른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내밀어도 좋아라 하는 안주가 되었다. 어여쁜 주황색 빛깔에 한입 씹으면 고소하고 살짝 느끼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지고 깔끔하고 담백해서 술안주로 제격이다.
사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짝짓기와 산란을 끝내면 바로 죽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사는 연어는 그렇고 유럽 등 대서양 연안에 사는 연어는 격정의 시간을 보내고 바다로 돌아가 다시 삶을 이어간다. 우리가 주로 먹는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 수입되는 연어가 바로 대서양 연어다.
장담컨대 연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혹시 여기서 잠깐 당신은 선술후식인가? 선식후술인가? 연어 이야기를 하다가 다짜고짜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술을 잘 먹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는 단골 질문 중 하나다. 바로 술을 먼저 먹고 안주를 먹느냐? 안주를 먼저 먹고 술을 먹느냐?
쓸데없어 보이지만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둘 다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이십 대 초반 술 먹는 분위기는 좋아하고 술을 잘 먹지 못했을 때는 무조건 선술후식이었다. 소주를 한잔 입에 털어 넣고 쓰디쓴 맛에 나도 모르게 구겨지는 미간을 맛있는 안주로 진정시켜 주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술을 즐겨 마시다 어느 날 실수로 안주를 먼저 먹고 소주를 들이켰다. 안주가 술의 맛을 희석해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순서의 차이로 인해 안주는 술의 맛을 극대화시켜 주는 조연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선식후술의 대표주자가 바로 연어가 아닐까. 연어를 부드럽게 씹다가 왈칵 들어오는 소주맛에 생연어의 고소한 맛이 극대화된다.
고작 먹는 순서처럼 보이는 나만의 철학은 알고 보면 정말 재밌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가 되면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먹는 것인지 술을 먹기 위해 안주를 먹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이 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아서 술을 먹었고 그다음은 안주가 좋아서 먹기 시작하다 보니 결국은 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 술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다른 것인들 어떠한가. 지금 내가 술을 먹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하는데 무턱대고 술은 너무 맛있으니까 누구든 마시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술의 악기능도 차고 넘치지만 순기능만 골라서 현명하게 사용하면서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면 술은 언제고 마셔도 좋다고 생각한다. 연어가 정말 신기한 게 그냥 생연어를 먹을 때는 소주와 소맥이 잘 어울리고 연어를 밥 위에 올려서 초밥이나 사케동이 된다면 맥주가 잘 어울린다. 이 말인즉슨 소주나 맥주나 소맥이나 무엇이든 잘 어울리는 완벽한 안주라는 말씀.
그래서 말인데 이번 주말에는 나의 최애 안주를 한번 드셔보시는 게 어떨까. 날씨도 더우니까 시원하고 고소한 연어 한 점과 맛있는 소주 한 잔이 정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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