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희 Oct 11. 2023

굴 보쌈에 한 잔

12.

알배추 위에 잘 삶아진 수육 하나 올리고 보쌈김치 올려서 생굴과 함께 먹으며 한 잔




 뜨거웠던 무더위가 지나고 날이 시원해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안주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그 메뉴. 바로 김장김치와 함께 먹는 보쌈이다. 그렇다. 이제 보쌈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 말인즉슨 김장이라는 고강도의 노동도 따라온다는 말이다. 우리 집은 종갓집도 아니고 식구가 많은 집도 아니지만 10년 전부터 식당을 하시는 엄마 덕분에 항상 200 포기 정도 김장을 해왔다. 우리의 김장은 엄마가 직접 키우신 배추를 밭에서 실어 나르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친정집은 강원도 산골이라 서리가 내리기 전 혹은 적어도 서리가 한번 내릴 때까지는 김장을 시작해야 한다. 대략 10월 말에서 11월 초쯤이 김장시기라고 할 수 있다. 밭에서 가져온 배추의 지저분한 겉잎을 뜯어내고 반으로 가른 다음 소금에 절여준다. 중간중간 뒤집어 주며 16시간에서 24시간을 절여주면 배추가 부드러워지고 간이 잘 배게 된다. 그 후 찬물에 2~3번 정도 깨끗이 씻어주고 체에 밭쳐서 12시간 정도 물기를 충분히 빼준다. 이러면 이제 김장의 반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 배추를 씻어내는 과정이 허리통증과 무릎통증을 유발하며 팔다리가 저리고 삭신이 이렇게 쑤시다 못해 정말 빠질 것 같을 때 배추 씻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양념을 만들어 배추에 골고루 묻히기만 하면 된다.


 우리 엄마는 경상도사람으로 김장할 때 젓갈과 새우젓을 충분히 쓴다. 그리고 강원도로 시집을 오면서 코다리를 김장김치에 넣는다. 어렸을 때는 생선을 김치에?라는 거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김치를 아주 잘 먹고 잘 자랐다는 사실. 코다리를 김장김치에 넣으면 비릿함은 전혀 없고 특유의 시원함이 추가된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김장김치를 할 때 항상 코다리 찜도 같이 해주셨다.


 이제는 엄마가 식당을 접으신 지 몇 년 되어서 예전처럼 100 포기 200 포기를 하지는 않지만 가볍게 50 포기 정도는 꾸준히 하고 있다. 요즘은 수고스럽게 김장을 하기보다는 맛있는 김치를 사 먹는 추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 주변사람들의 대다수가 적은 양이라도 김장을 하는 편에 속한다. 그 덕분에 10월 말 11월 초가 오면 자연스레 나는 보쌈을 먹고 싶어 한다. 물론 직접 김장을 하고 보쌈고기를 삶아서 먹지 않아도 보쌈은 언제든 맛이 있다. 된장 한 스푼에 커피와 파뿌리, 양파, 마늘, 그리고 월계수잎까지 냄새를 잡을 수 있는 재료는 다 때려 넣고 1시간 정도 푹 삶아내면 야들야들한 돼지고기 수육이 완성된다. 그러면 나는 푹 삶아서 야들야들해진 고기를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앞뒤로 구워낸 다음 얇게 썰어낸다. 알배추 위에 방금 담가서 아삭아삭한 김치와 함께 고기를 같이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여기서 더 맛있어지는 마법은 바로 굴이다. 여름 내내 식중독 걱정 때문에 먹고 싶어도 꾹 참았던 굴을 맛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해야 할까. 일부는 굴이 비려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물컹물컹하지만 바다냄새가 가득하고 고소한 굴을 정말 좋아한다. 아삭한 김치와 부드러운 보쌈고기 그리고 싱싱한 굴의 조화란 누가 발명했는지 정말 찾아내서 박수를 쳐 주고 싶은 정도다.


 예전에는 김장을 하는 노동이 너무 고강도라 보쌈이 맛있는 건지 아니면 방금 무쳐낸 김치가 맛있어서 맛있는 건지 헷갈렸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가족들과 함께 힘들게 일하고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음식을 나눠 먹으면 맛없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 그때는 어린 마음에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짜증도 내고 투정도 부리면서 억지로 김장을 하고 보쌈김치를 먹으면서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진하다.


 보쌈김치와 굴에는 그 어떤 술 보다 쓰고 시원한 소주가 잘 어울린다. 이런 안주라면 소주를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어김없이 다음날 숙취까지 없는 마법에 걸린다. 이제 몇 주만 더 기다리면 올해의 보쌈김치를 맛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너무 설렌다.


 아 엄마의 김치 담그는 법을 언젠가는 배워놔야지 하면서도 매번 귀찮아서 미루게 되는데 올해는 정말로 공책에 펜을 들고 적어가면서 그 비법을 전수받아야겠다. 구독자분들에게 이렇게 언질 해놓았으니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해야만 한다. 다들 굴을 먹을 수 있는 신호탄을 들을 준비가 되었을까. 올해 보쌈김치는 또 얼마나 맛있어서 나를 얼큰하게 취하게 할는지.




https://m.oheadline.com/articles/chSrwvEJ8-KhmHL2BEzc6Q==?uid=fafdf5a0a74c4bcd905e6b4169c91f90


이전 12화 두부와 계란말이에 한 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