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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Nov 08. 2023

감자탕에 한 잔

14.

잘 익은 감자를 숟가락으로 으깨고 발라낸 살코기와 함께 국물에 적셔서 한 잔



 많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감자탕은 술 먹은 다음날 속을 풀기 위해 먹는 해장음식이 아니라 명백한 술안주다. 칼칼한 국물과 씹을수록 고소한 시래기, 부드러운 고기, 잘 익은 감자, 쫄깃한 라면사리나 수제비까지 정말 완벽한 술안주다.


 내가 감자탕을 즐겨 먹기 시작한 건 이십 대 초반 밤을 꼬박 새워가며 무식하게 술을 먹던 시절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일 년에 한두 번 벼르고 별러서 약속을 잡아 1차, 2차, n차로 달려가며 술을 먹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셨더랬다. 그러다 밤이 어둑하다 못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어김없이 24시간 감자탕 집으로 향했다. 그쯤 되면 취기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 가도 있어지기 마련인데 감자탕 집에 가면 마법처럼 누구나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만남이 아쉬워 헤어지지 못하는 마음을 눈치챘다는 듯이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 슬퍼하지 말라며 뜨거운 감자탕이 위로해 줬다.


 그렇게 모든 걸 새롭게 만들어 줬던 감자탕의 매력에 빠진 지 5-6년 지났을 때 남의 식당을 전전하며 일을 하시던 엄마가 식당을 하나 차리셨다. 바로 감. 자. 탕집! 이때부터 나와 감자탕의 관계는 더욱더 진득해지기 시작했다. 도돌이표처럼 마지막은 항상 감자탕으로 술을 마셨는데 우리 집이 감자탕집이라니? 나는 엄마를 도와준다는 명목하에 주말마다 식당에 갔다. 서빙을 하다 설거지를 하다 곁눈질로 감자탕 만드는 과정을 참 많이도 훔쳐보고 얻어먹었다.


 사실 감자탕의 전체적인 과정을 보면 일반 가정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다. 양으로 보나 과정으로 보나 대량으로 하는 것이 훨씬 맛있다. 전체적인 요리과정을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흔히 해 먹는 닭볶음탕과 매우 유사하다. 일단 등뼈에 뼛가루가 많이 묻어 있기에 물로 씻어내고 한 시간 정도 물에 담가 핏물을 제거한다. 그 후 잡내를 없애기 위해 한번 끓여내고 차가운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큰 냄비에 물과 고기 대파와 된장, 통후추를 넣고 두 시간 정도 끓여낸다. 여기서 양념하지 않고 먹으면 맑은 감자탕이 된다. 칼칼한 감자탕을 먹고 싶다면 된장, 고춧가루, 들깻가루, 간 마늘, 국간장, 액젓을 넣어 기호에 맞게 끓여 먹으면 된다.


 이렇게 우리가 대중적으로 먹게 된 감자탕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청나라 병사가 '갈자탕'이라는 음식을 해 먹었는데 이것이 현지화되면서 감자탕이라고 발음이 바뀌었다는 설이 가장 합리적인 가설이다. 원래 갈자탕에는 양뼈가 들어가며 양뼈대신 돼지고기를 사용해서 먹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감자탕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감자탕을 직접 해 먹지는 않지만 포장해서 먹거나 판매하는 간편식을 자주 애용한다. 보관도 용이하고 어떤 제품을 사 먹어도 맛이 평균적이라 집에 쟁여놓고 있다가 갑자기 감자탕이 생각나면 뜯어서 간편하게 끓여 먹는다. 다만 집에서 먹는 것이라 내가 원하는 재료를 추가해서 더 특별하게 먹는 비법이 몇 개 있다. 일단 사 먹을 때 항상 아쉬웠던 감자를 내가 원하는 만큼 풍족히 넣는다. 그리고 묵은지를 넣어서 같이 끓이든지 꽃게나 새우를 넣어서 끓이든지 특별히 더 맛있게 해 줄 재료를 맘껏 넣는다. 마지막으로 라면사리, 수제비사리, 떡사리 등등 탄수화물 사리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마구 때려 넣어 먹는다. 이렇게 보니 비법이랄 게 없이 내가 좋아하는 거 다 때려 넣는 게 아닌가 싶어 머쓱하다.


 감자탕의 풍미를 더해줄 빠질 수 없는 대파와 깻잎 그리고 청양고추와 들깨가루를 팍팍 뿌리면 감자탕 특유의 진득하고 칼칼한 국물에 저절로 소주가 생각난다. 마지막 탄수화물을 먹을 때까지 얼큰하게 먹고 나면 취기가 적당히 오르고 속도 편안한 것이 정말 든든한 기분이다. 감자탕 한 그릇으로 크게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촌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격식 있지도 않은 감자탕이 참 좋다.


 누구에게는 명백한 술안주로써 누구에게는 듬직한 해장음식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감자탕을 좋아하고 기억하지 않을까. 목적이 무엇이든 따뜻하고 든든한 감자탕을 오래오래 먹고 싶다. 물론 나는 무조건 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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