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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Sep 27. 2023

두부와 계란말이에 한 잔

11.

두툼하게 썰어서 들기름에 구운 고소한 두부 혹은 당근과 양파와 쪽파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에 한 잔



 그런 날이 있다. 그냥 무작정 한 잔이 생각 나는 날. 힘든 일도 기쁜 일도 없었는데 그냥 한 잔이 생각나는 날. 그런 날은 밑도 끝도 없이 꼭 술을 마셔야 하지만 집에는 아무런 재료도 없고 배달음식은 당기지 않는다.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나지만 안주도 없이 술을 챙겨 먹지는 않는다. 그럴 때 내가 자주 해 먹는 안주. 바로 두부구이와 계란말이다. 누구나 집 냉장고에 흔하게 있는 재료지만 이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가장 맛있는 안주.


 어릴 적 호프집에 가서 메뉴판을 스캔할 때에 언제나 메뉴판 끝자락에 쓰여있는 두부김치와 계란말이는 절대 시키지 말아야 하는 나의 안주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이유는 집에 가면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안주이고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서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절대 먹고 싶지 않았던 메뉴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돌이켜보니 세상에 이만한 안주가 없다. 두부와 계란은 몇 시에 먹어도 위에 부담이 없고 다음날 붓지 않게 도와주며 기본적으로 담백하고 질리지 않는 맛있는 안주들이다.


 얼핏 보기에 두부는 굽기만 하고 계란은 풀어서 말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만들기 쉬운 요리가 아니다. 먼저 두부는 두툼하게 썰어 물기를 잘 제거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구울 때 기름이 사방으로 튀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 사실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 두부 자체가 수분이 많은 식재료라서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고 들기름을 프라이팬에 넉넉히 두르고 기름이 튀지 않게 조심히 올린 다음 왕소금을 뿌려서 중불로 양면을 노릇하게 구워주어야 한다. 두부는 뒤집을 때 잘 깨질 수 있어서 반대편이 단단하게 구워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항상 빨리 먹고 싶은 욕심에 그 적절한 타이밍을 항상 앞서간다. 그러면 부드러운 두부가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들기름은 너무 오래 구우면 몸에 좋지 않아서 적당한 시간에 노릇하게 양면을 구워내야 한다.


 계란말이는 또 어떠한가. 나는 사실 계란말이를 정말 못한다. 당근, 양파, 쪽파를 잘게 다져서 계란을 풀어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 준비는 끝이 난다. 나에게 있어 계란말이는 늘 남편이 해주던 요리이기도 하고 예쁜 모양으로 균일하게 돌돌 말 자신이 없어서 늘 도전하지 않은 요리 중에 하나였다. 남편이 말하는 계란말이의 관건은 불조절이라고 한다. 중불보다는 조금 약하고 약불보다는 살짝 강해야 계란이 적당히 익으면서 말수 있는 정도의 점도가 나온다. 먼저 이 불조절이 실패하면 계란말이의 뒷면이 너무 빨리 익어버려 급한 마음에 말아버리면 안에는 안 익고 겉에는 타버리는 불상사가 생긴다. 또 반대로 불이 너무 약한 경우 뒷면이 천천히 익어서 말리지 않고 찢어져 버린다. 이게 정말이지 쉽지 않다. 적어도 몇 번의 실패한 계란말이를 맛봐야지만 완성도 있는 계란말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누가 계란말이와 두부구이를 쉽다고 했는가. 이렇게 어려운 요리이기에 술안주로 먹었을 때 맛있는 걸까.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던 밥반찬이 나이가 들어 술안주로 승격화되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게다가 이 두 안주는 단백질로 만드는 안주라서 기름기 많은 다른 안주들보다 똥배 걱정 없는 안주라고도 할 수 있다. 흔해 보이지만 정말 귀한 안주가 아닐 수 없다.  


 두부구이는 신김치를 참치캔이나 대패삼겹살과 같이 볶아서 곁들여 먹어도 맛있고 막걸리와도 잘 어울리는 안주다. 계란말이는 안에 명란을 넣어서 말아도 맛있고 다양한 채소, 해산물, 고기를 넣어서 말아서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 'simple is best'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간단한 안주가 어떤 재료를 넣어도 다 잘 어울리고 다른 맛을 낼 수 있다.


 언젠가 내가 예쁜 계란말이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진정한 술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술은 안주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함께 있을 때 더 빛이 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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