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초반이 될 때까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저는 아버지가 안 계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자가 있는 사람 같았고, 내 잘못이 아니지만, 아버지가 나를 버렸기 때문에 꼭 내게 문제가 있어서 버려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사실 아버지가 계시지만 지금은 제 곁에는 안 계세요. 돌아가신 건 아니고요.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셔서 연락이 안 되다가 나중에야 연락이 돼서 이혼하셨는데 지금은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연락이 안 돼요.라고 거창하게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한국사회는 아직 이혼한 가정의 아이라고 하면 어두운 내면이 있을 것 같고 성격에 이상이 있다든지 선입견을 품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말을 안 한 것도 있지만 내 성격상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래 알았다고 해도 내 깊숙한 마음까지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누가 들으면 그게 뭐라고 쿨하지 못하게 이야기를 못 하냐고 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상처였고 아직까지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시큰한 걸 보니 나한테는 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못 된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라고. 여기에서 가족을 건드린다는 의미는 나의 의미와 좀 상이할 수 있지만, 가족은 인간의 가치관 중에서 최우선에 속하며 인간이 태어나 처음 접하는 관계이자, 가장 가까운 혈육 관계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관 형성과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도움을 받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관계이므로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비혼 주의자다. 아니 비혼 주의자였다. 엄마, 나, 동생들을 챙기기에도 벅찼고 누군가를 만나 헤어지지 않고 평생을 살 자신이 없었다.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대단해 보였고, 한 남자의 아내로 몇십 년을 살 결심을 한다는 자체가 엄청나 보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한 사람과 오래 살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혹여나 상대방이 날 질려한다거나 다른 여자가 생겨서 날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삐뚤어진 것은 아버지 탓이 클 것이다. 그리고 실패한 결혼의 결과가 얼마나 힘든지 엄마를 통해서 충분히 봐왔다. 엄마는 그 책임을 오롯이 혼자 다 짊어졌다. 자신의 인생은 없이 우리를 위해 희생한 엄마가 안쓰럽고 슬펐다.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바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비혼 주의자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며느리이며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다. 계속 비혼 주의자로 살았으면 어쩔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안정을 주고 따뜻한 것인지 충만하게 느끼고 살고 있다.
혹여나 가족의 상처로 인해 나처럼 비혼 주의자를 결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결혼이라는 게 꼭 불행하고 나쁜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으니 넓은 마음으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연이라는 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고 이 팍팍한 인생을 혼자 사는 것보다는 흰머리 될 때까지 같이 갈 동반자 한 명이 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