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내가 가장 마음 아팠던 일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대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되고 일이었다. 수업 중에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있다 수업 끝나고 전화해야지 한 것이 학교 근처에 문구점 아르바이트를 가느라 통화를 못 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가자 시간이 저녁 10시가 넘었다. 엄마 아직 일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딸. 엄마. 너무 속상해.”
“응? 무슨 일이야? 왜?”
술에 취한듯한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힘들어 보였고 울고 있었다. 이야기의 요지는 이거였다. 강원도 우리 동네에서 예전부터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네 비닐하우스가 우리 집 바로 앞에 있었는데 오늘 낮에 동생들이 비닐하우스를 삥 둘러서 작은 구멍을 내놨다는 것이다. 이걸 본 동네 어른이 혼을 내었고 비닐하우스 주인아저씨는 수리비로 100만 원을 내놓으라고 엄마에게 호통을 치고 갔다는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사고를 칠 동생들이 아니었다.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내아이 들치곤 장난기가 적은 편이었고 둘이서 놀다 다치거나 몰래 뭘 사 먹거나 이런 종류의 사고만 쳤었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들은 절대 하지 않는 동생들이었다.
“아니 갑자기 왜, 왜 그랬데? 이유 물어봤어. 엄마?”
“응. 둘 다 손들게 하고 파리채로 때리면서 왜 그랬냐고, 엄마가 돈 힘들게 벌면서 너희 셋 키우는 거 모르냐고, 혼냈는데, 이 녀석들이 계속 말을 안 하다가.......... 이야기하더라”
수화기 넘어 엄마의 침묵이 깊었다.
“그 아저씨가 다른 사람한테 엄마 욕하는 걸 둘이 들었나 봐. 내가 드세서 느이 아빠가 집을 나간 거라고. 여자가 얼마나 들들 볶았으면 애들 셋을 버리고 집을 나가냐고 하는 소리를 들었데.........”
숨이 턱 막혔다. 작은 시골 동네는 내가 떠나고 지금까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동생들은 여전히 동네 사람들에게 아버지 어디 가셨냐는 소리를 듣고 있었고,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거길 떠나왔기 때문에 나는 잊고 살았다. 이제 고작 초등학교 5, 6학년이었던 녀석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엄마를 지켰다. 비록 그 방식이 어긋나서 엄마가 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왔지만 말이다.
남 일에 관심 없는 소도시에 우리가 살았다면 그런 이야기가 안 돌았을까. 남 이야기를 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꼭 상대방에게 들리게 이야기해야만 했을까. 아니 이런 자유는 없다. 남의 이야기를 해도 되는 자유는 없다.
그런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벌이라고 생각하고 비닐하우스에 구멍을 뚫었을 두 녀석의 마음이, 그것도 모르고 실컷 혼내고서야 본인의 험담을 자식들을 통해 들었을 엄마의 마음이, 너무 쓰라렸다. 나만 속 편하게 아버지를 만났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딸... 엄마는 한 푼이라도 너희 먹이고 입히는 게 좋지. 100만 원 너네한테 들어가는 건 안 아까운데 쓸데없는 데 돈을 쓰게 되니까 그게 속상해서. 다섯 대씩 때렸어.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엄마가 너무 힘들다.”
“.... 그랬구나.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괜찮고 말고, 안 괜찮을게 뭐가 있어?........... 그깟 100만 원 엄마가 다 갚을 거야”
그날 밤늦도록 엄마랑 나는 수화기 너머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멀리 있어 엄마의 등을 쓸어주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위로를 하고 싶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현실이, 사람이 너무 힘든 밤이었지만 가족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