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멋모르고 인천에서 수원까지 왕복 4시간을 지하철과 버스로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3개월을 하다 보니 수업에 집중도 못 하고 늘 피곤했다. 그래서 수원의 지리를 조금 알게 되자마자 엄마에게 부탁해 수원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혼자 산다는 것이 무서웠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수원에서 살게 되면 시간이 남을 테니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세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엄마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사귀게 된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초, 중, 고를 항상 같은 친구들과 다녔고 12년을 함께한 친구들과 떨어져 새로운 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처음에는 매우 어렵고 낯설었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촌스럽고 어리숙한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친구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 자취방에도 놀러 가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으면서 친해졌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 집안 사정도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매점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딸 잘 지냈어?”
익숙한 목소리. 낮게 깔리는 공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5-6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다정한 목소리. 장난스러운 말투. 아버지였다.
“왜 아무 말도 없어? 잘못 걸었나? 우리 딸 핸드폰 아니에요?”
거기까지 듣고 그냥 끊어버렸다. 그리고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해 버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엄마가 떠올랐다. 매점을 뛰쳐나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놀란 친구들이 따라 나와 사색이 된 나를 붙잡았다.
“oo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아빠가, 아빠가 전화했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그날 나는 무슨 정신으로 수업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와서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한 것인지, 왜 아버지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켜자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딸~ 이거 아빠 번호야. 보고 싶다. 이 번호로 연락해줘」
혼자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우리가 힘들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나. 왜 아버지는 그때 그대로 인 거지. 우리만 이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며칠을 혼자 고민하다 만나봐야겠다고 결정했다. 문자로 아버지와 연락 후 천안에 계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 만나기로 했다. 차마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섭섭해하실 거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며칠 뒤 약속 날이 왔다.
천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이게 맞는 걸까.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거 같은데. 괜히 만나자고 했나. 온갖 생각이 가득 차 머리가 무거워졌을 때쯤 천안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기차에서 내렸다. 천안역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천천히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실까. 웃어야 할까. 손을 흔들어야 할까. 잘 지냈다고 해야 하는 걸까. 잘 못 지냈다고 해야 하는 걸까. 정답은 없었다. 멀리서 파란색 매표소가 보이기 시작하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다. 5~6년 전 헤어졌을 때보다 조금 더 까매지셨고 조금 더 나이 들었지만, 우리 아버지다.
정말 있었네. 잘살고 있었구나. 아버지가 살아계셨구나. 나를 알아본 아버지는 크게 손을 흔들며 해맑게 웃으셨다. 온몸에 힘이 빠져 삐걱거리며 느리게 앞으로 걸어갔다. 어색하게 다가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딸~ 잘 지냈어? 아빠한테 안녕하세요가 뭐야. 섭섭하게~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 아빠가 맛있는 거 해줄게”
“... 괜찮아요”
“그래도 뭐 먹어야지 점심시간인데.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얼른 가자”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한 나를 데리고 천안역을 빠져나왔다. 역을 나와 신호등을 몇 번 건너고 골목골목 점점 더 천안의 시골 동네로 걸어 들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아버지는 동생들과 나의 근황을 아무렇지 않게 물었고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한 십오 분 정도 걸었을까 다세대 주택에 다다랐다. 닫혀있지 않은 쇠문을 밀고 들어가 좁은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또 계단을 올랐다. 삼 층에 올랐을 때 문을 지나쳐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아빠가 지내는 집이야. 어서 들어와.”
좁은 복도가 짧게 있고 문 앞에 바로 방이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 방이 하나 더 있는 듯 보였다. 복도 옆에 작은 부엌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멀리 안방에서 편한 차림에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어서 와. 네가 oo구나. 예쁘게 생겼네. 반가워”
당황한 내 앞에 나타난 아주머니는 나를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듯이 반가워하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어색한 나는 머리를 살짝 숙였고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내 손을 잡고 부엌까지 데리고 들어온 아주머니는 바로 상을 폈다.
“배고프지? 아줌마가 밥을 좀 해놨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밥 많이 줘. 살이 너무 많이 빠졌네. 예전에는 통통했었는데 우리 딸~”
나만 다른 세계사람처럼 말을 이해 못 하는 거 같았다. 아무 대답도 표정도 못하고 그냥 손에 이끌려 식탁 앞에 앉았다. 밥이랑 국이 놓이고 반찬이 놓였다. 입맛이 없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뿐이었다.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는 말. 아버지랑 이 아주머니는 무슨 사이인 걸까. 이 아주머니 때문에 우릴 버린 걸까.
사실 오늘 아버지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유를 묻고 싶었다. 왜 우리를 버렸냐고. 왜 떠났냐고. 인제 와서 이런 이유는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이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내 상처가 조금은 치유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오늘 여기까지 용기를 내서 왔다. 엄마에게 죄책감이 들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를 만나는 순간. 어쩌면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던 말들이 다 사실이었을지 모른다고. 나는 그건 정말 아닐 거라고, 마지막까지 믿고 싶었던 아버지를 이제는 정말로 믿을 수 없게 돼버렸다.
그때 국이랑 반찬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나만 빼고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와 아주머니는 일상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고 그곳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이걸 다 먹어치워야만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아빠랑 아줌마는 그냥 친한 친구야. oo야”
내 표정에서 들렸던 걸까.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듣고 싶었던 대답.
“아줌마 하는 일이 아빠처럼 막일 일하는 사람들 밥해주는 하숙집 아줌마거든. 오해하지는 마! 알았지?”
“무슨 오해? 우리 딸은 그런 오해 안 해~”
“아빠랑 다른 아저씨 두 명 더 있거든, 오늘은 아빠 쉬는 날이고 다른 아저씨들은 일을 갔어~ 아빠가 저번부터 너 수원에서 대학 다닌다고 데려와서 밥 먹이고 싶다 그래서 아줌마가 데려오라 그랬거든! 어때 맛있어?”
“..... 아 네. 네”
“수원에서 기차 타고 오면 여기 별로 안 멀지? 자주 놀러 와~ 아줌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 너희 아빠가 맨날 너랑 아들들 보고 싶다고 얼마나 노래를 부르는지 아니?”
아 그랬구나. 우리가 보고 싶긴 했구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은 아버지의 진심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돌아왔겠지. 우리를 버리고 떠나지 않았겠지.
“대학교 생활은 재밌어?”
“아니 이 아줌마가 나도 못 물어본 걸 물어보고 있어? 내가 물어볼 거야~!”
“.... 네 다닐 만.. 해요”
“근데 딸은 글 쓰고 싶다고 했잖아. 왜 치위생과를 갔어? 이제 글 안 써?”
정말 이유를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버지가 나를 바라봤다. 너무 놀랐다. 왜냐고요? 아버지 때문이에요. 저는 정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저는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삽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에는 동생들이 너무 어리고 저는 엄마를 도와야 합니다. 정말 모르셨나요? 이렇게 물었다면 아버지는 이해하셨을까. 그래도 이해 못 하셨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완벽하게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냥.. 이요....”
“그냥이 어딨어~ 이제 안 쓰고 싶어진 거야?”
“.... 그건 아니에요”
“그럼 써~ 글 써! 우리 oo가 예전에 강원도 대회 나가서 상 받아오고 그랬어.”
“으그. 그 얘기 한 번만 더하면 500번인 거 알지? 너희 아빠가 맨날 입만 열면 너랑 아들들 자랑을 얼마나 하는 줄 아니?”
엄마가 왜 그때 아버지에게 화를 냈는지 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대책 없이 꿈을 좇는 사람이었다. 5~6년 전 그 모습에서 조금 나이가 들었을 뿐 변하지 않았구나. 먹던 밥이 얹친 것처럼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주먹으로 몇 번 속 시원하게 소리 내어 퉁퉁 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밥을 꾸역꾸역 다 먹고 아버지가 궁금해하는 이야기에 답을 해준 뒤 이제 슬슬 돌아가고 싶어서 시계를 자꾸 보았다.
“... 저 이제 돌아가서 과제해야 해요.”
“아 그래그래. 아빠가 너무 붙잡아 뒀네. 그럼 기차 타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가자”
“벌써 가게? 아쉽다. 다음에 또 놀러 와 아줌마가 다음에는 월남쌈 해줄게!”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나왔다. 더는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가는 내 뒤를 쫓아 나왔다. 이미 궁금한 근황은 다 물어봤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랑 나의 사이는 그런 사이였다. 근황 외에 할 말이 없는 가족도 아닌 혈육 관계.
기차역에 도착하니 마침 20분 뒤 수원행 기차가 있었다. 기차표를 결제하러 매표소에 다가갔는데 아버지가 결제해 주겠다며 표를 구매해 주셨다.
“자 여기 표. 다음엔 더 많이 있다가 가~”
“.... 네”
“그리고 이거. 받아”
아버지가 내민 건 직사각형 하얀 봉투였다. 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걸로 당신의 부재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사양했다.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지 않아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야. 이거 나중에 봐!”
거절하는 내 손 사이로 봉투가 들어왔다. 어색한 공기가 우리를 휘감았다. 우리 주변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만이 시간을 흘러가게 해 주었다. 드디어 수원행 기차가 들어왔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얼른 천안을 떠나고 싶었다. 아버지와 물리적 거리마저 멀어지고 싶었다.
“그럼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응 잘 가~ 도착하면 문자 보내고!”
“... 네”
바로 돌아서서 기차 플랫폼으로 향했다. 가차 없이 돌아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립지 않았다는 듯이. 그렇게 우리는 잘살았다고 말이다. 뒤통수를 누가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어색하고 무거웠다. 오직 나에게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서른 걸음쯤 걸어서 이제 왼쪽으로 꺾어야 할 때 가장 끝에서 아버지를 보고 싶었다. 나를 아직 보고 있을 아버지의 표정이 궁금했다. 내 뒷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무슨 표정일까. 아쉬움일까. 그리움일까. 별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쿵거렸다.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 표정을 볼 수 있겠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았다. 기차를 타러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머리통 틈으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았다.
나와는 달리 까맣고 쌍꺼풀이 두꺼운 우리 아버지. 나를 보고 있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 갔구나. 내가 들어가는 모습 따위는 보지 않고 가셨구나. 언제부터 없었던 건지. 혼자 뭘 의식하고, 기대했던 건지 모르겠다. 허탈하고 섭섭했다. 이게 뭐라고. 5~6년 만에 보는 딸 가는 뒷모습을 얼마나 보고 있을 줄 알았던 건지. 터덜터덜 기차에 올랐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하러 여기까지 왔나. 엄마가 보고 싶었다. 자리에 앉고 얼마 후 기차가 출발하겠다는 소리를 내고 천천히 출발했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안다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동생들에게는 말을 해줘야겠지.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혼자 갔다 왔다고 화를 내면 어쩌지. 내가 너무 경솔했던 걸까. 결국, 내가 궁금했던 질문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난 오늘 무엇을 위해 여기를 온 걸까.
생각에 생각을 꼬리를 물다가 아버지가 찔러 넣어준 봉투가 생각났다.
당연히 돈이라고 생각하고 봉투를 꺼냈는데 촉감이 이상했다. 편지였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아버지가 나에게 쓴 편지. 약간은 삐뚤지만 어른스러운 글씨체.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 글씨체였다.
사랑하는 딸에게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고백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펑펑 울어버렸다. 여태껏 아버지를 미워했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르지만 그리웠던 아버지의 사랑이 글씨가 되어 내 눈앞에 실체를 드러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와 아버지의 깊은 골로 두 분은 헤어졌고, 혹시라도 두 분의 재결합을 바라고 있었던 일말의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 서류상으로 가족이 네 명이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 나는 세 번째 아버지를 보내는데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언제쯤이면 아버지와의 이별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