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줄을 봤습니다만

11

by 박성희

흐린 두 줄을 보고 4일 뒤 2차 피검을 하기 전까지 최대한 안정을 취하며 착상에 좋다는 호두, 두유, 추어탕, 엽산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그리고 피검하러 가기 전날 밤 일찍 잠들어서인지 새벽 1시에 잠이 깼다. 그런데 그때부터 오한과 발열, 두통이 시작되었다. 임신 초기에 이런 증상이 나올 리 없다는 생각이 들자 혹시 코로나에 걸려버린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새벽 3시에 일어나 코로나 자가테스트를 했지만 한 줄이 나왔다. 마음을 다잡으며 억지로 잠을 청하고 다음 날 남편과 함께 난임 병원으로 갔다.


피검사를 한 후 차 안에서 쉬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수치가 210으로 아주 안정적으로 나왔어요. 좋은데요?”

“아.... 그런데 며칠 전부터 소량의 갈색 혈이 나오는데... 괜찮을까요?”

“빨간 혈이 아니면 갈색 혈은 그래도 다행인데 혹시 모르니 오늘 주사 맞고 가시고요. 빨간 피가 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아 그리고 제가 새벽에 오한이랑 두통이 심하게 왔었는데... ”

“혹시 모르니 코로나 검사 한번 받아보시고 아프시면 바로 타이레놀 챙겨 드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질정 잘 넣으시고 다음 주에 아기집 보러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만가지 걱정을 했던 것과 달리 안정적이라며 웃어주시는 담당 선생님의 대답에 어안이 벙벙했다. 주사를 맞고 결제를 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갔다. 내가 차에 타자 궁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피는 남편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

“수치가 210 이래. 안정적이라고 좋다고 다음 주에 아기집 보러 오래.”


우리는 벙벙한 표정으로 잠시 서로를 마주 봤고 남편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렇게 갑자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진행한 인공수정 4차에서 우리는 안정적이라는 결과를 들었다. 정말 이번에는 성공한 것일까? 과연 어디까지를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에 화학적 유산을 한 경험이 있으니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면 주변에 알리자. 그리고 2주 뒤 출근하기로 했던 직장에 미리 양해를 구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아기집을 못 본상태지만 정상적으로 잘 임신이 유지된다면 8~9개월 후에는 출산해야 했기에 말 안 하고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축하한다며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쩌면 내가 사장이라도 당연한 처사이겠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집 근처 병원에서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했다. 혹시나 임신 초기인데 코로나이면 어쩌나 간절한 마음에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일주일 동안 강아지 산책 외에는 무리하지 않으며 몸에 좋은 것을 열심히 챙겨 먹고 아기집을 보러 병원으로 갔다. 남편은 같이 가고 싶다고 성화를 부렸지만 혹시나 아기집을 못 볼까 봐 불안한 마음에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 초음파 사진 받으면 바로 보내달라는 남편의 당부를 들으며 난임 병원으로 혼자 갔다. 한 시간 반의 대기시간 후 들어간 진료실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내 표정에 혹시 조금 늦게 자리 잡는 것일 수도 있으니 3일 뒤에 다시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고 피검사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혹시라도 아기집이 안 보여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괜찮다.라고 수없이 되뇌고 병원에 왔는데. 괜찮지가 않았다. 동그랗고 조그만 아기집 하나 보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나는 언제쯤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인지. 끝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진료 끝났냐고 재촉하는 남편의 카톡에 아기집을 못 봤다는 글을 쓰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카톡을 보내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상황을 설명하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기집이 안 보여요’를 포털사이트에 무한 검색해 보며 그런데도 출산을 잘했다는 후기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일주일 만에 임테기를 해봤다. 아기집이 보이려면 임테기에 대조선보다 진한 역전된 두 줄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임테기는 대조선과 같은 진하기의 두 줄이 나왔다. 그리고 피검사는 830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쯤이면 1500은 넘어야 하는데 너무 낮다고 했다. 임테기에 흐린 두 줄을 확인하고 2주 동안 몇 번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3일 뒤 마음을 다잡고 간 난임 병원에서 또 아기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2일 뒤 아랫배를 쥐어짜는 통증과 함께 생리가 시작되었다. 결국 이럴 거였으면서 왜 희망을 줬는지.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하필 내가 마음에 드는 직장에 취업했을 때. 임신에 대한 기대도 없었는데. 나를 약 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제 안 해. 임신 안 할 거야.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거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