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솔직히 처음에는 원망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나를 고생시키는 것인지. 신이 정말 있다면 이건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굳이 힘들게 취업한 직장까지 출근 못 하게 할 필요까지 있었나 하고 말이다.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잘못하고 산 건 없는 거 같은데.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지. 치사하게 이렇게 나를 약 올리나.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런 원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내가 그 직장에서 일할 운명이 아니었고 어쩌면 최악의 직장일 수도 있는 것을 구해준 것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속상했다. 언제까지고 속상해 할 수만은 없었다.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직장을 구해야 했다.
요가도 다시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고 열심히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조건이 없었고 마음만 초조해져 갔다. 그래도 면접 본 곳 중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하는 곳이 있었지만, 조건이 썩 내키지 않았다.
“여보. 나 그냥 여기라도 출근할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보자. 우리 이번 주말에 장모님한테나 갔다 오자”
조급한 내 마음이 티가 났는지 조금 천천히 둘러보라며 남편이 나를 달래주었다. 두 번째 화학적 유산 후 급하게 다른 곳에 마음을 두려는 내 마음이 티가 났나 보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강원도 친정집에서 엄마와 낙지, 뭉티기를 먹으며 술을 한잔했다. 소박하게 셋이서 한잔하니 참 좋았다. 그리고 소소하게 근황을 얘기하던 중 남편이 실수로 최근 유산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기에 당황해 정적이 흐르자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덤덤하게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은 다 괜찮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펑펑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남편의 눈물에 나도 눈물이 맺혔다.
“누가 보면 우리 셋다 취한 줄 알겠네. 괜찮아 엄마. 울지 마”
“우리 딸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벌을 받나 싶어. 왜 이런 고통을 주는 거야. 정말 속상해”
내가 일주일 전에 했던 말을 엄마가 그대로 했다. 엄마가 이렇게 속상해할걸 알기에 말하지 않았는데 결국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웃으며 우는 엄마의 등을 쓸었다.
“더 건강한 아기가 오려고 그러나 봐. 나 괜찮아 엄마. 그만 울어”
애써 웃으며 엄마를 달래자. 엄마도 눈물을 훔쳤다.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결국 가장 속상해할 사람에게 들켰다. 이번 일로 우리 부부는 더 단단해졌고 나는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은 절대 아니고 그 어떤 공식이나 요령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그 누구의 탓도 잘못도 아니다.
그리고 몇 주 뒤 두 번째 남편의 미국 장기출장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또다시 미국으로 가야 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우리가 미국으로 다시 가려고 그랬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2주 뒤 미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