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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정 4차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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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한국으로 돌아와 자가격리를 하고 나니 휴직한 지 막 7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양심상 이제는 다시 취업을 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놀만큼 놀았고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 말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자가격리가 끝나는 날 생리가 터졌고 다시 취업하기 전 여유가 있을 때 면접을 보며 인공수정 4차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난임 병원으로 향했다.


인공수정을 4차 정도 했으면 이제 마음을 비우는 거쯤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상급에 가까운 남편의 정자 처리 결과와 스치기만 해도 아픈 가슴 통증, 아랫배에 콕콕 쑤시는 증상까지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시술 후 오만가지 증상 놀이를 하며 피 말리는 2주가 지났다. 그리고 12일째 되는 날 브런치에 올릴 한 줄짜리 임테기 사진이 필요해서 임테기에 손을 댔다. 그리고 임테기에는 내 눈에는 흐릿한 한 줄이 보였지만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정도의 두 줄이 나왔다.


12일 차면 주사의 효과는 아닐 텐데 이렇게 흐린 거면 늦게 착상이 되었거나 아니면 성공 아닌 실패가 아닐까. 두 줄을 봤다는 기쁨보다 오만가지 걱정이 먼저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배란 12일 차 임테기 사진을 무한 검색해 보며 내 것과 계속 비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히 흐렸다. 그 순간 3년 전 화학적 유산을 했던 불길한 기억이 나를 스쳤다. (화학적 유산이란 임테기로 양성을 확인한 지 열흘 만에 질 출혈과 초기 유산으로 끝난 것을 말한다) 혹시 또 그렇게 마음 아픈 일이 생기는 건 아닐지 불안했다. 그리고 시약선이나 임테기의 오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3시간 후 다시 임테기를 했지만 여전히 카메라로 확인되지 않는 아주 흐린 두 줄이 나왔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얼리 임테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리 임테기란 생리 예정일 4~5일 전부터 해 볼 수 있는 빠른 임신테스트기라고 할 수 있다) 강아지와 산책하며 약국에 들러 얼리 임테기를 구입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어탕 한 그릇을 포장해 왔다.


혹시 실패하고 있더라도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싶었다. 어떻게 마주한 두줄인데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씩씩하게 추어탕 한 그릇 먹고 얼리 임테기를 했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일반 임테기보다 확연히 진한 두 줄이 나왔다. 핸드폰 카메라에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두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배란 12일 차에 얼리 임테기로 이 정도는 흐리다고 할 수 있었다. 너무 불안했다.


최대한 배에 힘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고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착상에 좋다는 두유, 견과류 등을 간식으로 먹으며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인공수정 4차에 이런 이벤트라니. 내가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희망고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왜 이렇게 임신이 어려울까.


그리고 다음날 난임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한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시간을 기다렸다. 초조한 마음으로 들어간 진료실에서 임신 수치가 23이라는 결과를 들었다. 이쯤에는 임신 수치가 50은 넘어야 안정적인데 아직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애매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니 4일 뒤 2차 피검을 해보자고 하셨다.


흐릿한 두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영겁의 4일을 보낼 생각 하니 아득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소변을 보는데 갈색 피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럴 거였나 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서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3년 동안 제발 두줄만 보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두줄을 봤지만 나는 또 두줄이 사라지려고 한다. 난임부부에게는 두줄을 보는 것만이 행복한 임신의 결말이 아니다. 어쩌면 아이를 품고 있는 10개월 내내 엄마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초기, 중기, 말기의 안 좋은 소식들 때문에 언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유독 나에게만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인공수정 4차를 했지만, 당연히 임신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시 일할 생각에 여러 군데 면접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으로 2주 뒤 첫 출근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흐린두줄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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