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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난임은 이제 주변에서 흔한 주제가 되었다. 한방에 아이가 생겼다는 해프닝도 들어 본 지 오래다. 무엇이 난임을 이렇게 많이 만들었을까. 우리가 무심코 낭비하는 물건들 매일 쓰고 넘치는 전자제품들 늦어지는 초혼 시기 등등 이유가 겹치고 겹쳐 이런 세상을 만들어 냈다. 결국 다 우리의 자업자득이 아닐까.
영화에서만 보던 지구의 종말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옥좨어 오는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심오한 이야기까지 여기서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아기 천사가 생각보다 오지 않아서 힘들다고 말하고 싶다.
6개월 전쯤 난임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초등학교 동창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일이 있었다. 그 친구는 결혼한 지 갓 1년이 넘었고 3개월 전부터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바로 임신이 되지 않아 당황하고 있었다. 난임 2년 6개월 차였던 나는 내 상황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이고 나보다 너는 빨리 임신이 될 거라며 친구를 위로했다. 당황한 친구가 나를 다독이며 힘내자고 서로를 응원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남편의 미국 장기출장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의 카카오톡 프로필에 D-197이라는 숫자를 보게 되었다. 임신을 기다리는 친구였고 저 정도의 숫자면 당연히 임신에 성공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나에게 임신했다고 축하해달라며 연락해 오지 않았다. 이걸 배려라고 고마워해야 할지 섭섭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결국 다른 친구에게 그 친구의 근황을 물었고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왜 그리 서러웠을까. 나도 모르게 다른 친구에게 펑펑 울어버렸다.
지금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임신했다는 축하받아야 할 일을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슬펐다. 나는 왜 아직까지 임신을 못 해서 친구가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는지 내가 원망스러웠다.
당황한 다른 친구는 나를 위로해줬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괜찮다고 다독이며 살고 있었는데 나는 괜찮지 않았다. 여전히 실망하고 기대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며칠 뒤 다른 친구에게 소식을 들은 것인지 임신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정말 정말 축하한다는 말을 했고 친구는 너도 곧 좋은 소식 있을 거라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비겁하게 글쎄라는 말로 말끝을 흐리며 몸조심하라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
어쩌면 나는 자격지심에 빠져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임이라는 주제 앞에서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제는 정말 자신이 없다. 친구와 함께 출발선에 서 있었는데 이미 친구는 멀리 달려가고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덩그러니 나 혼자만 달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끝나지 않는 난임 이야기를 이제는 끝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