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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y 박성희

2001년 0월 0일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



그날은 낮이 길고 밤이 짧은 한여름 중 하루였다.


아무래도 시골의 한여름은 낮에는 너무 더워 일할 수가 없다. 주로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하고 낮에는 쉬거나 그늘에서 일하고 저녁에 다시 일하는 패턴이었다. 그래서 농사가 주업인 아버지는 낮에도 집에 계신 날이 많았고, 어느 곳에 아버지가 있어도 없어도 이상할 리 없었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여름방학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고, 종일 집에 있으며 방학 숙제도 하고 컴퓨터, 티브이를 보며 지냈다. 내가 자란 강원도는 겨울에는 유독 춥고 여름은 시원하며 햇볕이 뜨겁고 공기가 맑은 지역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면 앞 뒤 옆 어디를 봐도 산이었고 집 옆으로는 작은 시냇물이 흘렀다. 그리고 밤에는 별이 촘촘히 눈으로 쏟아질 것 같은 꿈같은 곳이었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가고 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바깥일이 보편시 되는 시골 중에 깡 시골이었다. 시내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7~8대밖에 다니지 않았다. 내 밑으로 초등학교 1, 2학년인 남동생들은 둘도 없는 단짝으로 동네에 10명 남짓한 아이들과 들로 밭으로 뛰어다니며 여름에는 더욱 새까매진 얼굴을 하고 다녔다.



"다녀왔습니다."

"으 땀범벅이야. 얼른 가서 씻어. 안 더워?"

"더워!"



오후 6시가 넘으면 군부대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엄마가 퇴근을 한다. 그래서 그전까지는 늘 내가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6살, 7살) 내가 동생들을 챙기는 데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오기 전까지 내가 항상 보호자였고 엄마가 오면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오늘은 조금 늦는다고 생각했다. 가끔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할머니 댁에 있다가 오시는 날도 있고, 밭에서 저녁까지 있다가 오시는 날도 왕왕 있었기에 그런 날의 하루라고 짐작했다. 평소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기에 당연히 곧 들어오시겠지. 하지만 그날은 9시, 10시가 되어도 문밖에 요란한 아버지의 트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엄마는 거실 전화기 앞에서 계속 번호만 누르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나는 내방 문지방 앞에 앉아 엄마의 뒷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새에 엄마, 아버지가 또 싸움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나의 불안함은 커지고 켜져 우리 집을 삼킬 것만 같았다. 엄마는 전화기를 들고 따지고 화내고 다그치다가 이내 수화기는 내려졌다.



그렇게 아버지는 집을 나갔다.

아무 흔적도 예고도 없이, 파란색 트럭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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