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평생을 바쳐서 이룩하였으며, 지금도 계속 건축되고 있는 건축물이다. 스페인 정부에서는 2026년 가우디 서거 백 주년을 맞아서 성당 건설을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Basílica de la Sagrada Familia 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로마가톨릭교 성당이다.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가 설계와 건축을 맡아 1882년 착공했으나 의뢰인과 의견 대립으로 하차하고 1883년 가우디에게 공사가 인계되었다.
원래 네오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나 가우디가 새롭게 설계했으며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40여 년간 성당 건축에 힘썼다. 공사는 기부금으로만 진행된다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놀랐다.
성당의 건축 양식은 현재 기독과 이슬람 문화를 혼합한 무데하르 양식에 자연주의를 가미한 초현실주의 양식으로 짓고 있다. 네오고딕양식은 네모 반듯한 모양, 무데하르 양식은 이슬람 문화 건축물을 떠올리면 된다.
건축물 규모는 가로 150m, 세로 60m, 중앙 돔 높이 170m이다. 빌딩높이 50층 정도다. 성당의 구조는 3개의 파사드(Façade;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로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çade)',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çade)', '영광의 파사드(Glory Facade)'이다. 각각의 파사드에는 4개씩 탑으로 총 12개의 첨탑이 있다. 12개의 첨탑은 12명의 사도(제자)를 상징한다. 모두 100m가 넘는다. 가운데는 12 탑과는 다르게 끝이 둥근 팔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의 첨탑이다.
성당을 마주 서는 순간 그냥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난다. 너무 크고 웅대하고 높이 솟아있어서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앞면에서 보면 옥수수콘 모양의 큰 탑이 6개 보이고 중앙에는 다른 모습의 탑이 보인다. 우측으로 4개의 작은 탑들이 보이고 좌측으로 2개의 탑이 보인다. 나머지 탑은 반대편에서 볼 수 있다.
정면에는 뭔가 조각이 가득하다. 정면 파사드는 가우디가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çade)'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조각들이 어찌나 섬세한지 곧 사람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가이드님 설명에 의하면 새겨져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가우디의 주변 인물과 인부들이라고 한다. 성당에 자세하게 성경의 내용을 조각하는 이유는 옛날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림이나 조각만 보고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전경/ 가로 150m, 세로 60m, 중앙 돔 높이 170m/ 12개의 탑 사도 상징/ 성모마리아 첨탑
탄상의 파사드/ 가우디 완성/ 예수 탄생 조각 섬세함과 화려함
'수난의 파사드'는 탄생의 파사드 뒤편에 있다. 1954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완성하였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 등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4개의 종탑이 있는데 아래에 야고보,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필립보 모습이 새겨져 있다. 수난의 파사드 출입문은 마태복음의 문이고 오른쪽은 요한복음의 문이라고 한다.
정면의 탄생의 파사드의 화려함에 비해서 수수하고 단조롭다. 목조 같은 느낌이 든다. 가우디가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가 너무나 섬세하고 화려하며, 부드러운 곡선과 율동미가 살아있는 듯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파사드'는 탄생의 파사드 남쪽에 있는데 가장 크고 상징적인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천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영광을 주제로 한다. 2002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지금도 건설 중이며,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광의 파사드에도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있으며 외관상 모습은 꽤 많은 진척이 있는 것 같다. 가우디가 만든 파사드 모형은 1936년 스페인 내전 중에 파괴되었는데, 파괴된 조각을 기초로 현재 파사드를 설계하였다고 한다.
사그라드 파밀리아 성당을 보다 더 잘 관람하려면 성경을 잘 알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저절로 경외감이 들 정도인데, 가톨릭 신자라면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100여 년 전 돔형태의 성당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우디의 천재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중력에 의하여 건축물을 지었다면 가우디는 가우디를 역으로 이용하여 건축물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성당 내 전시실에 가니 동영상으로 보여주니 이해가 되었다. 성당을 방문한다면 전시실도 꼭 관람하기를.
수난의 파사드/ 탄생의 파사드 뒷부분에 있다
영광의 파사드/ 탄생의 파사드 우측에 있으며 현재 공사 중이다.
성당 외관의 웅장함과 섬세함에 놀라고 성당 내부의 화려함에 한 번 더 놀란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여기가 숲 속인지, 버섯 속인지, 꽃밭 아래인지, 천당 어느 메였는지 알 수가 없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추는 노랗고 주황과 붉은색의 창문과 파랗고 초록과 노랑의 반대편 창문으로 비치는 전경은 빛의 화려함에 두 번 더 놀란다. 내부의 기둥은 나무처럼 생긴 기둥이 떠받치고 있고, 천장은 별인 듯 꽃인 듯 무늬로 가득하다. 내부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색상에 따라 그 느낌이 너무 다르다. 빛이 주는 화려함이 성당을 건축물이 아닌 천상의 숲 속에 와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괴테는 색채는 빛의 고통이라고 말했단다.
가우디는 “건축은 색을 거부해서는 안 되며, 형태와 부피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색깔을 사용해야 한다. 색은 형태를 보완해 주는 동시에 분명하게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 방문할 사그라드 파밀리아 내부를 관람하며 그 의미를 깨달았다.
성당 내부 나무 기둥, 꽃 천장/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주는 화려함의 극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지금도 계속 연구하며 건축 중이다. 지하에는 전시실과 함께 연구실이 있다. 가우디 시신도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성당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계단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다시 방문한다면 천천히 관람해야겠다.
성당 내 작업실/ 연구자들의 책상위에 모형이 놓여 있다
성당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만큼 티켓을 구입하려면 긴 줄을 서야 한다. 가능하면 홈페이지에서 미리 티켓을 예매하라고 안내되어 있다. 우리는 가이드님이 알아서 척척 다 해주셔서 기다리는 시간도 없이 바로 입장하였다. 이것이 패키지 관광의 장점 중 하나다.
성당에 입장하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고 공항 검색대만큼 철저하게 검색이 이루어진다. 단체관람은 스페인에서는 현지 가이드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단다. 우리나라도 유적지 단체 관람 시 현지 가이드 동행이 필수로 이루어진다면 직업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 일행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성당 문이 닫혔다. 크리스마스이브 미사를 위해 마감했단다. 휴~ 조금만 늦었어도 제대로 못 볼 뻔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12월 24~26일, 1월 1일, 6일은 9시~14시 관람 시간이다. 성당 관람 전 관람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
가우디 사진/ 네이버 검색 캡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나면 가우디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들.
가우디는 왜 그렇게 높고 화려한 성당을 지으려고 했을까. 가우디의 꿈과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세계적인 작품을 많이 남길 수 있었을까.
가우디의 일생을 듣고 나니 가우디의 쓸쓸한 난로에 가슴이 찡해온다.
다음은 안내 책과 네이버 검색, 가이드님의 설명을 덧붙여서 가우디의 일생을 적어보았다.
가우디는 천재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이코르네트(Antonio Gaudi y Cornet)는 1852년 고종황제와 같은 년도에 출생했다.
카탈루냐 지방의 레우스에서 주물제조업 집안에서 태어났다. 주물제조라 금속을 만들고자 하는 모양대로 주조하는 것을 말한다. 가우디가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의 영향이다.
17세 때부터 건축공부를 하고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졸업했다. 1878년 졸업 후 그만의 독창적인 건축활동을 했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작품으로 가득하고 가우디 덕분에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만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고 할만하다.
가우디의 건축기법은 자신만의 자유주의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친자연주의 기법을 사용했으며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현대 건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모더니즘이란 교회의 권위와 봉건을 비판하며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예술상을 말한다.) 건축학적으로는 이슬람의 건축양식과 아르누보(첨탑 모양의 양식), 비올레 르 뒤크의 이론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뒤크의 <프랑스 건축 사전>은 가우디에게 많은 영감을 책이다. 건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건축물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가우디 건축물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 느낌적으로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가우디의 건축은 곡선이 대부분을 이루며 벽과 천장이 굴곡을 이루고 있다. 그는 색과 곡선을 중시했다. 그는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 관찰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자연의 형태와 색을 건축에 적용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뿐 아니라 곡선을 많이 사용했다. 사그라드 파밀리아 실내모습과 다음에 소개할 구엘 공원을 보면 가우디의 친자연주의 기법을 볼 수 있다.
대학 졸업할 때 바르셀로나 대학 학장 에리아스 토헨트는 “우리가 지금 건축사 칭호를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미친놈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가우디의 천재성은 이미 학창 시절부터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이 예술가들에게 많은 후원을 했듯이 가우디가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직물업계의 부호였던 구엘의 투자 덕분이다. 구엘 덕분에 바르셀로나에는 구엘 이름이 붙은 별장, 저택, 궁전, 공원이 있다. 다음에 소개할 구엘 공원도 그의 의뢰로 만들어진 곳이다.
사랑이야기를 빠지면 안 되지. 가이드님 썰에 의하면 가우디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거절당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단다. 가우디는 40여 년간 성당 건축에 열정을 쏟았는데 전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는 당시에도 꽤 유명한 건축가였음에도 행색이 너무나 초라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단다. 행여자의 병원에 옮겨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뒤늦게 성당관계자가 알아보았으나 그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고 한다.
천재 건축가의 죽음을 전해 듣고 나니 크고 높고 화려한 성당을 보았는데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남겨지는 의문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