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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대학 시절 3

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by 하민영

1987년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운 시기라고 한다면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어떻게든 민주주의의 열기를 이어가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희생이 지속되었던 시기이다.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때 투신 혹은 분신했던 열사만 해도 수십 명이다.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세계정세도 어지러웠는데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붕괴되었으면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많은 나라들이 독립했다. 혼란스러운 시기 대학생의 삶 역시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다.


<1988년부터 1991년 정세>


1988년부터 1991년은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다. 국가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고 세계정세도 빠른 변화를 겪고 있었다. 88년에는 서울올림픽, 전두환 비리 사과 성명 후 백담사행, 전국언론노조 창립 등이 있었고, 89년에는 전두환 광주 특위 청문회 출석, 국기 강하식과 애국가 방송 중단, 전 국민의료보험제도 실시, 90년에는 집권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 91년 지방자치제 부활 기초의회의원 선거, 북한과 동시 유엔가입 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 여러 공산국가와의 수교(알바니아, 니카라과, 소련, 베냉 등)가 이루어졌다.

세계정세도 혼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88년에는 이란 이라크 전쟁, 미얀마 군사 쿠데타 발생 했고, 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90년에는 이라크 쿠웨이트트 침공, 걸프전이 벌어졌으며, 예멘통일, 독일 통일을 이루어졌다. 91년에는 소련이 완전 해체 되며 냉전이 종식되었다. 이 시기에 라트비아, 북마케도니아, 유고슬라비아, 나미비아, 몰도바 등 많은 나라들이 독립했다. 세계는 빠른 해체와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계 속의 변화에도 국내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권에 의한 탄압은 계속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열사들이 목숨을 바쳤다.

88년 조성만(서울대) 열사, 89년 이철규(조선대) 열사 있었고, 이내창(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열사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89년도 굵직한 사건으로는 전국대학생연합회(전대협) 대표로 임수경은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중. 고등학생 150여 명이 퇴학, 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받았고 1600여 명의 교사들은 파면, 해임되었다. 90년에는 전교조 탄압에 항의한 공주 한일고 최성목, 대구 경화여고 김수경, 충남고 심광보 등 고등학생이 목숨 건 투쟁을 했다. 91년 강경대(명지대) 열사가 시위도중 백골단에 맞아서 숨졌고, 박승희(전남대), 김영균(안동대), 천세용(경원대) 열사가 분신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노동자 윤용하, 이정순 등이 대학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분신했고, 보성고 김철수, 정상순 열사도 뒤를 이었다.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가 구속되어 입원한 병원에서 추락하여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성균관대 김기정은 백골단 진압에 질식사했다. 89년 입시 부정에 항의하며 인근 파출소에 화염병을 던지면서 벌어진 부산 동의대 사건, 91년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의 김기설 유서대필혐의 등은 진위여부를 떠나서 정권에 이용되어 탄압받았다.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갈망>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 속에서 대학생활을 한 그녀는 한국사회를 알기 위한 책을 탐독했다. 그녀의 독서는 매우 편향되어 한국사회를 알 수 있는 사회과학 서적과 철학에 관한 책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운동권은 전국대학생연합회(전대협)의 NL계열 운동권들이 주름잡았던 시절로 그와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초창기에는 사회주주의 기초 사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변증법적 철학책을 읽었고, 점차 북한의 현실과 주체사상 다룬 책을 읽었다. 1980년대 학생들은 이미 몰락했거나 혹은 몰락해가고 있는 사상에 심취했다. 아마도 군사독재정권의 제한된 반공사상에 찌든 제도교육 속에서 몸부림치던 학생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상세계 건설을 꿈꾸며 갖게 된 또 다른 편협함이 가진 사상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무슨 열병을 앓는 사람이나 타는 목마름이 있는 사람처럼 새로운 지식을 흡입했다. 밤새워 책을 읽었고 치열한 토론을 하는 날이 많았다. 서슬 퍼런 전두환정권이 지나고 거센 6월 민주화운동을 겪어서인지 당시 금서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금서를 읽으면 잡혀간다는 말은 있었지만 통제가 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 앞 새날 서점이나 중앙동에 있는 금강 서점에 가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다. 전시되지 않은 책은 안쪽 서가에서 사장님이 조용히 꺼내주시곤 했다.


그녀는 1학년 때는 부대표, 2학년 때 과대표를 했고, 3학년때는 간호학과 학생회장을 했으며 4학년때는 단과대학(의과대학) 학술부장을 했다. 의과대학 학생회에서 총학생회 임원진을 여럿 배출할 정도로 잘 나가던 때였다. 학생회 활동을 한다는 것은 학생운동권이다는 것과 동일시되었다. 몇몇 동아리 중에서 운동권이 많이 속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운동권의 주요 근거지는 학생회였다. 그녀도 주요 활동은 학생회에서 했고, 노래패 동아리는 행사에 참여하거나 발표회에 동참하는 정도였다.

학생회 행사는 많았다. 3월 입학식과 신입생환영회, 4월 4.19 혁명, 5월 광주민주화운동, 전대협 출정식, 6월 민주화운동 등으로 한 학기를 보내며 민주화 투쟁의 열기를 수놓는다. 이 시기 열사들의 죽음은 피 끓는 청춘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방학 때는 농활을 준비하고, 2학기 학생회를 준비하며 학생회 임원들의 수련회 등이 있다. 한 번은 고난의 행군으로 전주에서 광주까지 2박 3일간 걸어간 적도 있었다. 2학기에는 단과대학 축제와 차기 학생회를 준비하고 국내 정세에 따른 여러 집회와 투쟁들이 있다.


과대표나 학생회장으로서 주요 임무는 학우들이 4.19 혁명이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전후로 수업거부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열사들의 투쟁을 추모하고 정권 퇴진투쟁에 학우들이 동참하도록 설득하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엇을 많이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이해한 만큼 필요하다고 여기는 만큼 참여해야 한다고 여겼다. 학생회장으로서 학생회에서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했다. 이런 과정은 해마다 4월과 5월이 되면 더 많아졌다. 학년별로 토론회가 있었고, 당위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주장과 왜 참석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학우들과 부딪히기도 했다. 토론 결과는 학생회 주장과 같은 방향으로 집회 참석을 위한 수업거부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으나 집회나 투쟁에 참여하는 학우들은 많지 않았다. 학우들은 해마다 진행되는 똑같은 형태의 투쟁에 대해 점점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고, 당위적인 찬성은 있을지언정 대놓고 반대하지도 못하면서 결정에 따르지도 않게 되었다. 시들해져 가는 학우들의 저조한 참여와 함께 활동했던 과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면서 그녀는 과에서는 조금은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다행히 선배나 후배들과는 가까웠고,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과는 친했고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학생회는 공식적인 조직이지만 그중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 중심으로 비공식적인 모임도 있었다. 운동권이 정점을 이루고 있던 때인지라 그녀가 속한 의과대학에만도 삼십여 명의 학생들이 비공식적인 조직원이 있었다. 예전에는 지하서클이라고 불렸겠지만 그녀가 대학을 다닐 때는 비공식적인 조직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운동권 핵심조직이 십여 명이라고 하면 그 외연은 이삼십여 명이었고, 학생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오십여 명이었으며, 학생회를 심적으로 지지하는 많은 학우들이 그 밖에 있었다. 학생회 활동을 한다고 모두 비공식적인 조직에 가입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서 달랐다.


87년 이전만큼 엄혹한 시절은 아니었으나 여전히 운동권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있었으므로 내부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비밀을 지키고 활동을 조심해야 했고, 금서를 읽을 때는 들키지 않도록 해야 했다. 비공식조직에서 이뤄지는 운동권의 필독서도 많았다. 책을 읽고 토론하거나 국내외 정세에 대한 치열한 밤샘 토론도 자주 이루어졌다. 학생회에서는 학생회대로 활동 방향과 실천 내용에 대한 토론을 했다. 이중 삼중의 학습과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조금씩 다른 내용을 담았다. 해야 할 일이 많았으므로 집을 나와 거의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친구 자취방에 얹혀서 사는 학생들도 많았다.


학생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거나 일이 많아 부러 집에서 나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도 학생이라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껴 썼고, 돈이 있을 때는 동지들을 위해서 기꺼이 밥을 사고 술을 샀다. 어떤 사람은 가족 내 탄압도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삭발을 당하거나 나가지 못하도록 방에 갇히기도 했다. 그녀는 오빠들과 자취를 했는데 학과공부나 집안일에 소홀했으므로 갈등이 많았다. 오빠에게 여러 번 얻어맞기도 했는데 결국에는 자취 집을 뛰쳐나와버렸다. 대학생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이 나라의 자주적인 독립과 민주주의 그리고 통일을 열망했고, 마음은 집회현장과 거리에 가 있었다.


운동권 내에는 딱히 특별한 규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절제된 생활을 했다. 학과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자기 삶에 치열했고 타인에게 헌신적인 삶을 살았으며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었다. 그녀가 학생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열망도 있었지만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가능했다.



<간호학 학문의 배움>


그녀는 학과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핑계이긴 하지만 사회과학에 심취했기 때문에 간호학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간호학과 공부는 고등학교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반에 사십여 명의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듣는다. 재미가 없었다. 자유로운 토론과 사고를 넓히는 민주적인 방식의 수업진행은 없었다. 오로지 외우는 암기식 방법의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 1학년 때는 교양과목만 배우기 때문에 슬슬 놀면서 수강을 하면 된다. 2학년때는 간호철학과 기본간호학을 배우기 시작하고 3학년때부터는 전공과목 수업과 실습을 번갈아가며 한다. 4학년때는 수업과 실습, 취업준비, 국가고시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4학년 2학기 되어서야 국가고시 준비를 했다.


2학년 간호철학시간에 배운 간호학은 자부심을 갖기 충분했다. 간호란 과학이고 간호를 할 때는 전인간호 즉 정신적, 사회적, 신체적, 영적 간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도 사람을 돌볼 때 전인간호를 실현하고 싶었다. 대학원에서는 간호를 아트(art)라고 배웠는데 나중에 그녀는 간호란 종합예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3학년 병원에 실습을 나가보니 간호사는 전문가로서 과학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전인간호를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의사가 낸 오더를 수행하기만도 바빠 보였다. 간호학생의 눈에 비친 간호사들은 과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학생들은 맨날 바이탈사인(활력징후)만 측정하는 찬밥신세였다. 요즘에는 다르지만 당시에는 학생들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하거나 체계적인 실습지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습은 재미가 없었고 지루했다. 하루 8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2학년 때 간호 기초 이론을 배우면서 가졌던 간호사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다. 다람쥐체바퀴처럼 돌아가는 병원생활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실습한 후 환자케이스를 하나씩 정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집담회가 이루어졌는데 형식적인 과정이라 별로 집중도 되지 않았다. 간호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간호학문으로서 체계를 잡아가던 초창기라고 할 수 있어서 과학적 탐구를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마음은 간호학 공부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점도 신경 쓰지 않았고 수업과 실습 모두 재미가 없었다. 한 사람의 환자를 돌보는 일보다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학과공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죽하면 친구 미정이가 '나랏일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도 해야지 않겠니'라고 말했고, 정신간호학 교수님이 불러서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물었고 무슨 말씀을 더 해주셨으며 책도 건네주셨다.


4학년 서울로 취업하거나 보건교사나 보건진료소로 진출하려면 따로 공부를 해야 했으나 본교 대학병원으로 취업할 예정이라 따로 취업준비는 하지 않았다. 2학기가 되어서 국가고시 시험을 준비해서 다행히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변화무쌍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대학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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