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는 매주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주말농장 이야기

by 하민영

“와~~~ 정말 예쁘다.”

“많이 봐.”

자동차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4월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외친다. 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봄꽃 놀이 가는 사람처럼 마음이 들뜬다.

“지난주에는 벚꽃이 한창이더니 어느새 벚꽃이 다 졌네. 잎이 올라왔어.”

“지난주 비가 왔잖아. 벚꽃은 금방 지잖아.”

“맞아. 벚꽃은 일이 주면 끝나는 것 같아. 비 오고 나면 금방 떨어져 버리고...”

남편은 열심히 운전을 하면서 나에게 맞장구를 쳐준다.

지는 벚꽃을 아쉬워할 것도 없이 새로운 꽃들이 만발하다. 변화무쌍한 4월 꽃들의 향연을 보는 나는 기분이 좋아 연신 종알거린다.

“어머 벚꽃이 진자리에 라일락이 많이 폈네. 저기 철쭉도 폈어. 지난주보다 많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나는 이문세의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서울을 조금 벗어나니 따뜻한 봄햇살과 청명한 하늘 아래 강이 흐르고 저 멀리 산에는 총천연의 연두색 빛깔이 수놓아져 있다. 각양각색의 연둣빛 사이사이로 분홍과 흰색의 꽃들도 피어난 산과 들은 온통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하다. 지난주와 비슷한 풍경인 듯한데도 나는 새로운 광경을 대하듯 또다시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 정말 예쁘다. 나는 봄 산을 보면 스무살 초반에 후배와 함께 갔던 강천산이 생각난다! 지금보다 좀 더 이른 3월 말쯤이었는데, 너무 예쁘더라고. 그 뒤로 나는 봄 산을 보면 수채화나 수묵화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지더라. 아! 그림 그리고 싶어라!”

“그리고 싶으면 그리면 되지.”

“근데, 난 그림은 잼뱅이잖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되지. 당신 느낌대로 그려봐.”

남편은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해보라고 말한다. 오늘도 남편은 나를 응원한다. '남편의 응원을 받아 정말 그림을 그려볼까? 그림세상으로의 여행이라니...'




농장에 가기 전에 농약사에 들르기로 하고 광주시내로 방향을 잡고 달려갔다. 지난주에 들렀던 농약사다. 농약사는 농약과 농자재, 씨앗과 모종을 판다. 특히 봄 농사철에는 모종과 나무를 가게 앞에 내놓는다. 주말농장 근처 도시에는 씨앗과 모종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우리도 농약사를 알고 있지 못했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하여 찾아갔다. 서울보다 훨씬 저렴하게 여러 모종을 구입할 수 있다. 주인장에게 철마다 어떤 채소를 심으면 좋은지 또 어떻게 심으면 좋은지 물어보면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준다. 모종을 사기 위해 들른 새로운 도시를 잠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지난주에 몇 가지의 모종을 심었는데 남편이 당귀를 심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당귀는 예로부터 항염과 진해 효과가 있고, 식욕증진과 부인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 한약재다. 그래서 그런지 쌈채소로 당귀를 먹으면 은은한 한약 냄새가 난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강한 향 때문에 싫어할 수도 있는데, 먹다 보면 은근 중독성이 있다. 우리가 당귀를 심으려는 것은 당귀가 우리 몸에 주는 이득 때문이라기보다는 방역효과 때문이다. 당귀의 강한 향 때문에 벌레가 채소에 접근하지 못한다. 당귀의 향이 우리 밭으로는 벌레가 끼지 못하도록 하여 함께 자라는 다른 채소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밭에 심으려는 것이다. 당귀는 깻잎이나 허브처럼 자연 방역 효과를 기대하는 식물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에는 주변 자연 풍경에 혼을 빼놓고 있다가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급 채소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상춘객에서 급 농부 모드로 전환했다.

“지난주에 비가 한차례 오고 난 후 날씨가 추웠는데 잘 자랐을까? 아직 싹이 안 올라왔겠지?”

나는 걱정스럽게 말을 하면서 장갑과 장화를 착용하고 밀짚모자를 눌러썼다. 햇살 좋은 이런 날에 모자는 필수다. 모자가 없다면 수건이라도 얼굴을 가리는 게 좋다. 선크림도 필수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농부로 변신하면서 둘러보니 농장에 있는 한 정자에는 벌써 일을 마쳤는지 젊은 남녀가 간식을 먹고 있었고, 또 다른 정자에서는 구십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와 아이 둘, 부부가 쉬고 있었다. 밭에는 몇몇 사람들이 채소를 돌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작물을 얼핏 살피니 채소들이 잘 자라고 있는 듯 보였다. 멀리서 보아도 채소들이 푸릇푸릇하다. 우리 밭의 채소들도 잘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동했다.

“어머 상추가 자리를 잡았네.” 나는 빠르게 우리 구획을 눈으로 스캔했다.

“요거 뭐였지? 아 맞다. 겨자채. 요건 벌써 벌레를 먹었네.” 거의 모든 겨자채 잎사귀에 구멍이 뽕뽕 나 있었다.

“깻잎이랑, 치커리, 파, 당근 얘들은 자리를 잡았네.”라고 말하며 부지런히 지난주에 심은 채소들을 살폈다.

몇 그루의 청상추와 겨자채는 잘 자라지 못한 것이 보였다. 잎사귀가 오그라 붙었고, 크기와 잎사귀가 다른 것보다 볼품 없고 작았다. 그러나 모종으로 심은 채소 중 손실된 채소는 하나도 없었다. 한두 그루는 잘 자라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대체적으로 모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였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초기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채소들이 영 잘 자라지 못한다. 키가 작고 입이 작아서 제대로 수확을 못하거나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모종이 튼실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날이 춥거나 가물어서인 경우도 있다. 채소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주말농장을 하게 되면 날씨에 매우 민감해진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도 늘 주말농장에 있는 채소들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씨앗을 뿌려놓은 밭을 보면서 나는 또다시 감탄의 환호성을 질렀다.

“어머나, 여기 벌써 새싹이 올라왔네. 얘네들 좀 봐봐. 땅을 뚫고 올라왔어.”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땅이 살짝 들어 올려져 있고, 그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민 무순이 눈에 들어왔다. 무순은 새끼손톱 크기의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들어 올리는 힘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다. 지난주 비가 온 뒤 추웠는데도 싹을 틔웠다. 간간이 내리쬐던 햇살정도로도 씨앗에게는 넉넉했나 보다.

‘그 여린 싹이 어떻게 흙을 들어 올렸을까?’를 생각하면 자연의 신비인 것도 같고 생명의 힘인 것도 같다. 맨땅인 듯하지만 살아 숨 쉬고 있는 땅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 자연의 이치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면서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인간계의 세상에서 식물계의 세상으로 여행을 온 것만 같다.

무순 옆으로 몇 걸음 더 이동을 해보니 무순보다 작게 올라온 아이들이 있었다. 0.2mm 좁쌀 크기만 한 초록 점들이 총총히 땅에 박혀있는 듯하다.

“요건 뭐였지? 쑥갓이었나? 아니다, 당근인가 보다! 얘들도 싹이 올라왔네. 무순보다는 작긴 한데 벌써 싹이 텄네.”

무슨 작물을 뿌렸는지 표시를 해두지 않았더니 어린싹만 보고는 무슨 작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주 날씨가 추워서 씨앗들에게는 기대도 안 했다. 뜻밖에 맞이하는 새싹들의 힘에 벌어진 입은 담을 줄 몰랐다.

일주일 만에 잘 자라준 씨앗과 모종들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이번 봄철 채소들은 잘 성장할 것 같다.

나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셔터를 누르고 동영상으로 담기도 했다. 어린 새싹들이 힘차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소리를. 내가 느끼는 식물들의 세상에 다른 사람들도 초대하고 싶었다.


새로 사 온 당귀 여섯 그루를 구멍이 송송난 겨자채와 새로 싹이 올라온 무순 사이에 나눠서 심었다. 겨자 채도 열무처럼 매운맛이 나는데 봄철에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많은가 보다. 다른 채소보다 봄채소 중에서는 유난히 열무를 키우기가 어렵다. 벌레를 많이 먹기도 하고 조금 더 키워보자 맘먹으면 금방 꽃대가 올라온다. 가끔 잎사귀는 무성한데 뿌리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방역 당귀에게 살짝 기대를 걸어본다.


튼실하게 자리 잡은 적상추와 깻잎
들어올리는 힘을 보여 준 무순과 당근
구멍 숭숭 난 겨자채와 겨자채 사이에 심은 방역 당귀
모자는 필수 민들레는 덤
4살때 아들이 봤다면 엄청 좋아했을 트렉터 vs 씨앗과 모종, 농약과 농자재를 파는 농약사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하민영

#간호사의우아한사생활_하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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