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1875)>
프랑스 화단에 특이하게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입학 경력을 지닌 화가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1834~1903)이다. 활동 시기를 고려하면, 휘슬러는 인상주의 때 이미 소개했어야 마땅하다. 그는 1863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 <백색 심포니 No. 1: 백색 소녀 조안나 히퍼넌의 초상화(1862)>를 전시회에 출품했다. 영어 심포니(symphony)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관현악 합주를 위한 교향곡을 의미하며 '다양한 음들이 함께 울린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휘슬러는 그림이란 색채와 형태의 조화라는 믿음에서 이 말을 사용했다.
작품의 양식은 마무리가 안 된 듯한 빛의 변화가 인상주의에 가깝다. 적갈색 머리의 소녀는 아일랜드 태생의 조안나 히퍼넌으로, 여성 초상화 연작의 첫 번째 여인이다. 그녀는 7년 동안 휘슬러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다. 그 후 휘슬러의 친구 쿠르베를 만나 그녀는 유명한 <잠(1866)>에 벌거벗은 두 명의 동성애자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쿠르베는 세상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가십은 중요하지 않았다. 휘슬러의 독창성, 즉 작품의 추상성은 인상주의가 당시 화단에 던졌던 충격보다 더 컸다.
이번엔 뉴욕 첼시에서 예순여섯 살 늙은 어머니 안나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곱게 치장한 채 의자에 앉은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평생 상복을 입었던 전형적인 청교도 여성의 모습이다. 그래서 제목이 <휘슬러의 어머니>로 잘못 알려진 작품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이미지에 대중이 크게 공감했고, 이후 미국에서 어버이날 기념우표의 이미지로 발행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휘슬러가 붙인 제목은 <회색과 검은색의 배합 제1번>이다.
역시 색채적이면서 음악 작품처럼 독특한 제목을 붙였다. 무슨 의미일까? 휘슬러가 주제가 아닌 색채의 배합이라는 미학적 원칙에 따라 제목을 부여했다는 뜻이다. 인물은 물론 액자, 의자 등 대상이 갖는 물질의 고유성을 배제하고 ‘대상이 만들어내는 효과’, 즉 색채의 구성에 집중하도록 유도한 작명이다. 그래서 인물에게서 어떤 주제나 상징성을 발견하려는 생각은 그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이 혁신적이고 색채에 관한 강박적인 개념은 빅토리아 시대의 최고 스캔들로 발전한다. 1877년 그로스브너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야상곡(夜想曲)> 연작을 발표했다. 템스강 주변의 안개가 낀 듯한 일본풍 밤의 풍경화를 그렸는데, 작품 당 200기니(guinea, 오늘날 파운드)를 매겼다.
그중 가장 모호한 작품이 바로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1875)>이다. ‘표현주의의 아버지’ 고갱 이전의 작품이었으니 비평가에게도 매우 낯선 그림이었다. 혹평이 쏟아졌고, 혁신적 평론가를 자처했던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과는 재판까지 갔다. 당시 옥스퍼드 대학 교수이자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녔던 러스킨은 "교양 없고 자만심이 가득 찬 작가가 ‘미완성 작품’에 200기니나 제시했다"며, 대놓고 “대중의 얼굴에 물감통을 내던졌다”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러스킨은 부유한 포도주 판매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말년에 자신의 부(富)를 이용하여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부유한 사회주의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사상은 후에 영국 기독교노동당의 창립 이념에도 영향을 주었다. 예술 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반추상에 가까운 그림으로 비난을 받던 터너를 옹호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글들이 부피를 더하여 총 5권에 이르는 <근대 화가론(1843~1860)>이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점차 폭이 넓어지면서 라파엘 전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 중 유예진의 ‘역자 해설’) 따라서 ‘시대의 현자’의 평가로는 의외였다. 하지만 라파엘전파의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 1827~1910)의 <깨어나는 양심(1853)>을 보면, 그가 지향한 미학을 이해할 수 있다. 러스킨이 자신의 도덕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평가한 작품이다.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며 즐겁게 지내는 남녀 한 쌍이다. 그런데 남자의 무릎에 앉아 있던 여인이 갑자기 몸을 일으킨다. 남성은 그 까닭을 몰라 당황하여 “어!”하며 입을 벌린다. 젊은 여인은 중년 남성의 정부(情婦)였고, 그녀의 양심이 작동한 원인은 후경 거울에 담겼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보이는 나무와 이를 비추는 밝은 햇빛, 자연이 타락한 그녀의 내면을 건드린 신의 현현(顯現)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암시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여인의 반지는 유일하게 결혼반지를 끼는 약지에만 없다. 반면 피아노 앞에 걸린 그림에는 간음한 여인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이가 누구냐고 일갈했던 예수의 모습이 담겼다. 피아노 앞 보면대(譜面臺)의 악보는 돈 벌러 상경했다가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한 후 과거를 회상하는 시골 처녀의 노래다. 테이블 아래에선 고양이가 파닥거리는 새를 희롱하고, 흩어진 악보는 ‘눈물, 헛된 눈물’이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였다. 영국의 힘을 과시하는 제1회 만국박람회가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렸다. 600만 명이나 입장한 가운데, 무려 30만 장의 유리를 사용한 거대한 대전시장 수정궁이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1863년에는 런던에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등장했다. 반면 산업화의 그늘이 짙게 드린 사회이기도 했다. 노동자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1837~1858)이 벌어졌으나 정작 선거권은 1867년과 1884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젊고 가난한 여인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을 했음에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다. 유혹에 빠져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섰던 여성들이 강에 몸을 던졌다는 뉴스가 잦았다. 여류화가 에밀리 오스본(Emily Mary Osborn, 1828~1925)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는> 앞에서 많은 관람객이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오래 머물렀던 까닭이다.
이때 등장한 라파엘 전파의 그림은 자연을 충실히 묘사하면서 윤리주의를 상징하는 암시로 가득하다. 러스킨의 청교도적 도덕론에 기반을 둔 미술이기에 그렇다. 러스킨은 고전주의와 바로크의 거장들, 그리고 전성기 르네상스의 종교화가를 특히 혐오했다. 이들은 자연에 정직하지 않았고, 형식적이며, 양식화한 그림을 양산했다고 비판했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와 작품에 대해 애정을 보였던 그는 <근대 화가론(1843)> 제1권에서 예술가가 추구할 방향을 이렇게 결론지었다.
“젊은 화가들은 대가들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임무는 선택하는 것도, 구성하는 것도, 상상하고 실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겸허하고 진지하게 자연의 질서를 따르고, 신의 손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다. (····) 언제나 진실 속에 기뻐하라.”
그의 예술론에 따르면, 휘슬러의 그림은 자연의 질서에 따르지 않았고, 교훈도 없다. 하지만 휘슬러는 "런던의 유명한 놀이 장소 크레모네의 불꽃놀이와 달빛을 표현하고자 색채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러스킨 측 변호사는 작품을 완성하는 데 소요된 시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관점은 관찰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성하는 작품에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휘슬러는 “이틀 만에 완성했다”고 당당히 밝히면서 200기니는 ‘자신의 일생에 거쳐 축적한 지식에 대한 가치’임을 강조했다. “왜 사실주의적 기법이어야만 하느냐?”는 문제 제기이자, 화가의 주관적 해석을 존중하라는 의미이다. 사회적·도덕적·정치적 목적이 없는 '예술을 위한 예술', 즉 탐미주의(혹은 唯美主義) 운동과 맞닿은 주장이었다.
이로써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예술을 위한 예술’ 간 논쟁으로 발전했다. 휘슬러는 다른 작품까지 법정에 제시하면서 간신히 승소했다. 하지만 손해배상금으로 겨우 1파딩(1/4페니, 당시 1페니는 1파운드의 1/240)을 받았다. 굴욕적인 승리였다. 그리고 소송비용과 이후 미술품 구매자들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1879년 파산했다. 45세의 휘슬러는 자기 화실을 팔고 한동안 영국을 떠나 베네치아에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발상은 추상 미술이 등장하는 전조였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추상의 정도는 작가의 자의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재판 과정에서 러스킨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이 그림에서 외부 세계와 관련한 어떤 요소도 배제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 형태, 색채의 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