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사파는 프란츠 마르크와 아우구스트 마케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잇달아 사망함으로써 해체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신학도인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는 뮌헨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던 중 갑자기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05년에 만난 동물화가 장 블로에 니스틀레의 권유에 따라 “동물의 영혼으로 들어가 보려”는 작업에 몰두했다. (롤프 스네이더르 외, <그림 속의 여인 100>) 이후 학자 못지않게 동물에 관한 해부학, 행동학에 관한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가 무엇보다 사랑한 동물은 인간보다 더 순수하여 진실을 향한 열망을 구체화하는 존재였다. 1911년 청기사파의 상징인 <푸른 말>과 <큰 푸른 말들(제목 그림)>을 그렸다. 말에게서 인간이 부족한 덕목, 순수함을 발견했다. 그러나 말엔 푸른색이 없다. 이상적인 색으로 ‘남성적이며, 순수’를 상징한다.
그에게 있어서 회화는 ‘주제’도, ‘색’도 없고 오로지 ‘표현’만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색은 그의 표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도 자연에서 해방된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다. 파랑, 빨강, 노랑이 대표적이다. 파랑은 예리하며 영적으로 남성의 색이다. 빨강은 무겁고 난폭한 물질문명(대지)의 색이며, 노랑은 부드러움과 환희, 관능을 나타내는 여성의 색이다. 이 세 가지 색을 혼합하여 균형과 조화를 창조하려 했다. <빨간 말>에서는 배경으로 나무 덤불을 파란색으로 칠했다. 장식적 효과가 아니라, 말의 실체를 박진감 넘치게 만들기 위한 대비(對比)다. <작은 노란 말들>에서는 감미로움과 함께 곡선에서 에로티시즘을, 검은 하늘의 풍경과 대비하여 불안감을 표현했다. 이미 칸딘스키로부터 편지를 받고 전쟁을 예감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티롤>을 그렸다. 마치 자기 죽음을 예상한 듯 1913년 작품 중앙에 빛나는 성모 마리아를 추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2년이 지난 1916년 3월 4일, 독일군으로 참전한 마르크는 프랑스 베르됭 전선에서 서른여섯 살로 생을 마감했다. 친구 마케가 죽고 2년 만에 벌어진 비극이다. 살아 있었으면, 마르크는 틀림없이 칸딘스키와 함께 추상 미술을 이끌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전용사임에도 사후 그의 작품은 모호한 이유로 ‘퇴폐 미술’로 분류되었다. 열여덟 살 때 빈 미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히틀러의 그림 보는 재능을 탓해야겠다. 히틀러는 자기가 규정한 '퇴폐 미술'과 보다 일찍 만났어야 했다. 그럼, 역사는 또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히틀러의 작품을 본 아카데미의 관계자들은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리듬과 색채가 부족하며, 영적 상상력이 전혀 없다.”
라인 지방의 천재 화가 스물셋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 1887~1914), 그는 1910년 뮌헨의 미술품 딜러 브라클의 갤러리에서 마르크의 드로잉과 석판화 몇 점을 보고 즉시 마르크를 찾았다. 이후 두 사람은 흔들림 없는 우정을 나누었고, 색이 지니고 있는 순수한 표현 요소에 관한 탐구가 깊어졌다. 일곱 살 어린 마케는 마르크로부터 유용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마르크의 신미술가 협회 설립과 <청기사> 연감 제작에는 열정을 보이지 않은 채 침묵했다. 오히려 마르크의 관심을 공허한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떨어져 독자적인 색채 표현으로 돌리려고 애썼다.
마케는 1907년과 1908년 파리 방문 시 마네와 드가, 그리고 세잔, 쇠라, 고갱의 작품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마케는 원색을 실험했고, 지식과 기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의 스케치북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데생으로 채워졌고, 신랄한 자기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높은 수준의 문학과 함께 철학, 과학, 그리고 음악적 감수성이 풍부했다. 마티스 전시회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였고, 피카소의 입체주의에서 길을 발견했다. 1912년 마르크와 함께 간 파리 여행이 특히 중요했다. 금세 친해져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진 들로네가 시인 기욤 마폴리네르와 함께 1913년 2월 본에 있던 마케를 방문했다. 이때 마케는 들로네의 미래주의와 색의 조화에 귀 기울였다. 그는 청기사파와 더욱 멀어졌다. 1913년 가을, 스위스 툰 호수에서 여덟 달을 지냈다. 양식에 구애를 받지 않던 그는 그곳에서 부드럽고 유려한 화풍과 동시에 엄격하고 기하학적인 화풍의 작품을 남겼다.
그때의 작품이 <초록 재킷을 입은 여인>과 <목욕하는 여인들>이다. 3차원 공간 속에서 ‘어른거리는 색의 조화’를 그렸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초록 나뭇잎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며 부드러운 서정성이 스며든다. 그러나 평면에 나란히 전개된 나무와 하늘의 색은 같은 효과를 내지 않는다. 3차원의 다른 공간에 각각 위치했기에 다른 에너지, 즉 다른 입체적 효과를 나타낸다. 그 색채 변화는 세련되며, 풍성했다.
1914년, 파울 클레와 루이 무아예와 함께 전설적인 튀니스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작품들이다. 여행 전 마케의 색채 감각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여행을 다녀온 그해 8월 8일 참전한 마케는 몇 주 지나지 않은 9월 26일 프랑스 상파뉴의 페르테스 레 뮈를뤼에서 스물일곱 살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전사했다. 프란츠 마르크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애도사를 썼다.
“우리 중 그는 색채에, 완전한 인격만큼 맑게 빛나는, 가장 빛나고 순수한 울림을 주었다.” (노르베르트 볼프, <표현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