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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Feb 26. 2024

세라론 계단과 파벨라

개인적으로는 브라질 여행 중에서 ‘세라론 계단(Escadaria Selaron)’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곳은 산타 테레사와 라파 중간에 있다. 1990년, 칠레 예술가 호르헤 세라론(Jorge Selarón)이 허물어진 계단과 벽에 다양한 색깔의 타일을 붙이면서 만들어진 명소다. 

가난한 남편과 가족을 위해 벌이에 나섰던 자기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집 앞 계단을 꾸미기 시작했다. 근처 건설 현장과 폐기물 더미에서 수거한 세라믹 타일을 붙였다. 그랬던 것이 그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입소문을 탔고, 작업 초기 세계 각지에서 2,000여 개의 타일을 보내왔다. 세라론은 이것에 예술가의 혼을 불어넣어 125m 높이, 215개 계단을 장식했다.


세라론 본인 모습을 삽입한 타일

대한민국에서는 태극기 문양의 타일을 보냈다. 입구에서 올라가면서 오른편에 있다고 하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다. 국기가 창출하는 국수주의적 동질감 형성이 이젠 불필요하다고 느낀 탓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겐 핍박받고 가난했던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에 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나이 든 분들은 애국심 쇠퇴와 연결지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 자리를 ‘선진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채운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곳을 찾은 브라질인들은 자국기와 문자가 있는 타일 앞에서 집중적으로 사진 찍는다. 알록달록한 타일의 색감이 브라질의 다양성과 잘 어울린다. 관광객 중에서는 중국인이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인다. '국뽕'이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도 그랬으니까. 차라리 그들도 이런 민족 감정의 표출이 성장 과정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압축 경제 성장의 시대를 지난 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서는 제법 여유가 느껴진다. 이런 변화에서 나는 “정치·경제가 문화를 떠받친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한편 아파트 평수와 지닌 돈으로 중산층을 규정하는 대한민국의 물질만능주의적 천박한 기준이 불만이었는데, 이 역시 곧 바뀌리라 확신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계단 풍경

계단 끝지점에 올랐다. 이곳에서 거꾸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원색의 타일이 눈에서 사라지면서 민낯, 즉 무채색 시멘트가 드러난다. 이 역시 괜찮다. 이때부턴 다양한 관광객과 예쁜 노점이 공간을 채색한다. 세라론은 알고 귀천했을까? 세계인이 모여 뿜어내는 아름다운 보색 효과가 자신에 대한 그들의 감사를 표하는 답례품이라는 사실을.

 

그래비티와 노점상

계단 위 길가로도 타일 문양은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관광객은 계단이 있는 곳에서 멈춰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다. 가난한 예술가가 머물렀던 이곳 역시 파벨라(Favela)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이드도 "계단 타일 작업이 2013년 이곳에서 세라론이 총에 맞아 죽으면서 끝났다"며 더 이상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남미가 위험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듣고 떠난 여행이어서 나는 겁을 잔뜩 먹고 그 위를 향해 시선도 주지 않았다. 


언뜻 생각하면, '세라론 계단' 자체는 대수롭지 않은 관광지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술가 한 명의 수고가 거리를, 그리고 도시를 신분 상승시켰다는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미국 가수 마이클 잭슨도 이곳에서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여 홍보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모두 예술가와 예술의 힘이 보여주는 숭고함이다.


오른편 옛 골목 그림과  비교되는 세라론 계단길

브라질은 남미에서도 빈부 차이가 극심하다. 그래서였을까? 당시 마이클 잭슨은 30만 명이 거주하는 리우 시내 최대의 파벨라에서도 촬영했다고 한다. 마침 그곳은 우리 일행이 묶는 숙소와 인접해 있어서 지나는 길에 얼핏 보았다. 우리나라 TV에도 소개되었던 유명한 달동네다. 

그래서 처음에는 관광객이 이곳 숙박을 기피했다고 한다. 호텔 측에서 별도의 해변을 마련하고, 경비원을 특수부대 출신으로 배치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손님이 들었다고 한다. 참, 브라질도 미국처럼 총기 구매가 자유로웠다. 하지만 사고가 빈번하여 15년 전쯤 신고제로 바뀌었다.

 

숙소에서 본 인근 파벨라 모습과 근경

파벨라는 아름다운 꽃말에서 따왔다. 하지만 브라질 내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파벨라의 현장은 이미지를 달리한다. 곱지 않고 거칠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거의 모든 파벨라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리우는 이미 산기슭 고지대를 중심으로 단단히 뿌리내린 터라 저항이 워낙 강력하여 공권력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절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에도 있었다. 청계천이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화가들이 모여 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 세대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가난의 대물림은 또다른 문제다. 문맹률이 높다고 하는데, 이것이 주요 원인일 수 있다. 

교육은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자원이 척박한 대한민국의 경제가 오늘의 고도성장을 이룬 배경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시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분야 역시 교육 문제였다. 특히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 재미 한국인의 교육관과 성실성을 닮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라론 계단의 노점상
세계 지도 그래비티와 사다리, 상징적이다

브라질은 9학년, 중학교까지 교육은 의무제다. 그러나 고등학교 수업은 초등, 중학교에 이어 야간에 이루어지며, 수업료가 비싸다. 돈을 벌면서 공부해야 하는 처지의 학생에게는 이래저래 벅차다. 게다가 기득권층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며 무관심하다. 

이런 행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이들이 아예 학업에 대한 꿈을 접는다. 대신 사내애는 축구에, 계집애는 삼바에 집중한다. 가난한 케냐인이 마라톤에 경사된 것처럼 브라질에서는 축구와 삼바가 최고의 신분 상승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성당 외관이 마치 피라미드 같다


인근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을 찾았다. 공간에 십자가를 만들어 놓은 고층 건물 바로 건너편에 있다. 외형은 성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창의적으로 지었다. 자유롭게 개방된 내부로 들어가니 비로소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의 카메라는 성당 밖 테레사 수녀상에 포커스를 집중했다. 이 땅이 ‘잠재력 있는 국가'에 그치지 않고 '국민 모두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대성당 앞 노점상과 상인. 두 사람의 관계는 예단하지 말자

다음 날 이구아수로 가려고 리우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마침 차창 넘어 80~100만 명이 사는 남미 최대의 파벨라와 중세 성처럼 생긴 줄기세포 연구소가 보였다. 불현듯 “의료 복지는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브라질의 의술, 특히 정형외과나 성형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추었다고 한다. 

문제는 의료 체계다. 비싼 비용이 드는 민간 의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미국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가난한 이들이 질병이 생기거나 다치면, 속절없이 행운에만 의지해야 한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감옥에 있는 룰라가 왜 2022년 선거에서 승리해 브라질 첫 3선 대통령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


이곳 선거 제도가 독특하다. 투표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불참 시 대입, 취업 등에서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는다. 그리고 과반수를 차지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선거는 계속된다. 국민을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선거 비용 뿐만 아니라 후보자에겐 지지층 확보를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이 필요하다. 북부의 가난한 국민이 정치 기반이었던 룰라가 이런 연유로 뇌물수수을 수수했고, 그 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랬던 그가 2021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최종 무효로 결정나자, 8년만에 다시 출마했다.

룰라는 산업재해로 왼쪽 새끼 손가락을 잃은 금속 노동자 출신이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무학자다. 70% 빈곤층은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역대 엘리트 출신 후보에게선 발견할 수 없는 룰라의 정치적 재산이다. 특히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치르면서 정부의 땜질식 처방에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따라서 브라질 국민에게 룰라는 차선의 대안이었다.

 

세라론 계단 앞 그래비티를 배경으로 설치한  무명 작가의 작품 한 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혁명의 기운이 감지된다. 깊은 잠이 들었던 시민의식이 최근 들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현지 가이드 말을 빌리면, 인터넷이 상당한 작용을 한 듯하다. 동네 주유소 직원이 우리 교민에게 질문하는 내용도 달라졌다고 한다. 

단순 노동자인 그들은 과거에 “한국은 살기 좋으냐?”라는 정도의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 정치인도 우리처럼 썩었냐?”고 질문이 바뀌었다. 깨쳐야 한다. 그러면, 세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더 멀리, 더 깊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아쉬운 마음에 타일 사진 두 장을...

프랑스 대혁명이 좋은 비교 대상이다. 부를 향유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성직자와 귀족들이 가난한 제3계급 시민의 돈으로 국가 부채를 해결하려 했다. 그래서 실로 오랫만에 삼부회를 소집했다. 계몽주의로 눈을 뜬 시민들은 돈을 내는 것은 자기들이라며 1인 1표가 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루이 16세와 지배층들은 국민의 의식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관행적으로 계급별 투표 방식을 고수했다. 3부회니 2:1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다는 속셈이었다. 결국, '테니스코트의 서약'과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이어졌다. 


이상한 일이다. 공기가 다른 곳에서 성장한 엘리트 출신은 많이 배운 사람들인데도 어찌 ‘똥인지, 된장인지’를 꼭 찍어 먹어보고 나서야 알까? 냄새로도 충분할 듯싶은데. 룰라가 과연 기득권층의 강고한 저항을 뚫고 브라질을 구원할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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