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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Feb 19. 2024

리우 코르코바도 언덕과 예수상

면적 세계 5위, 인구 세계 7위 브라질의 종교는 다른 남미 국가와 마찬가지로 가톨릭이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다른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대항해 시대의 두 주역 중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리우 식물원 입구

1493년, 콜럼버스가 1차 항해를 마치고 스페인 입항을 앞두고 큰 폭풍을 만났다. 부득이 포르투갈 리스본항으로 피했다. 이때 주앙 2세가 콜럼버스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들이 알카소바스 조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1479년에 스페인과 체결한 조약으로, 북위 26도 이남 지역의 선박 항해권은 포르투갈에 있었다. 

포르투갈의 항의에 따라 두 나라는 경계선 획정을 위한 조정에 들어갔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개입했다. 종교 개혁 이전으로,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두 나라에 대한 교황의 영적·물리적 영향력이 지대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교황의 조국 스페인에 유리한 중재안이라며 거부했다. 

그 결과, 1494년에 최종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경계선은 카보레르데 섬 서쪽 46도 지점을 기준으로 삼아 남북 방향 일직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리게 했던 율리오 2세가 1506년에 공식 승인했다.


야자나무 숲과 허물어진 교회 터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이후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을 획정하는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프리카의 환경과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그들은 임의의 직선으로 대륙을 난도질하여 오늘날 갈등의 씨앗을 심었다. 그러나 1522년 마젤란 함대를 계승한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가 세계 일주를 마침으로써 원 모양의 대륙에 남북으로 그은 선 하나만으로는 경계를 담보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튼 이 조약에 따라 포르투갈이 남미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개척이 가능한 지역이 브라질 동부 해안이었다. 하지만 1580년이 되자 이베리아 연합이 건설되어 스페인 펠리페 2세가 스페인-포르투갈 국왕을 겸하자 경계선 자체가 의미를 상실했다. 이때부터 포르투갈은 남미 대륙 내부로 경계를 확장했다.


경계선 획정과는 달리 브라질 관광은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브라질 국민 95%가 국토 5% 해안가에 밀집해 산다. 내륙은 밀림으로 인해 거주 환경으로는 척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사·문화의 수도' 리우 한 곳만 보고도 브라질 문화와 현지인의 삶을 모두 살폈다고 우겨도 된다. 그럼, 리우 관광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골고다’가 연상되는 코르코바도 언덕으로 향하면서 현지 가이드가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슈가로프산에서 리우 내 ·외항을, 코르코바도 언덕 정상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하면, 리우 관광은 끝입니다.”


간략하다 못해 과감하다. 무리가 없는 말일까? 그러나 코르코바도 언덕을 다녀온 후 가이드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맞는 아침은 멀리 극동 지역에서 온 이방인에게 특별했다. 6시에 숙소 내 식당에 들어섰다. 테라스에서 자세를 고쳐 잡고 식탁에 앉았는데 깜짝 놀랐다. 새벽 시간임에도 기온이 무척 따뜻했고, 숙소에 딸린 해변에는 젊은 연인들이 일찍부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아하! 그래, 이곳이 열대 지방이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호드리게스 호수 

코르코바도 언덕으로 가는 도중에 호드리게스 호수를 지났다. 호수 수면 1~2m 높이로 낮게 인도와 차도가 형성되었다. 길가 주변에서 시민들이 조깅하고 체조를 즐기는 모습이 여유롭다. 보기 좋다. 호수를 포함한 이곳 전 지역은 원래 포르투갈 어느 왕족 여인의 소유였다. 

마흔 살 정도였던 그녀가 어느 날 열여덟 살 청년에게 반해 결혼했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짧았던 당시, 여인이 곧 사망했다. 그러자 재산은 모두 남편에게 돌아갔다. 그가 바로 호드리게스다. 사랑하는 연인이 사라지자,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살아야 할 의욕을 잃었다. 

포르투갈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재산을 정리했다. 땅은 쪼개 팔 수 있다. 하지만 호수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호수가 지금 그의 명의로 되어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 호수 이름이 과연 위로가 될까? 자연은 허락하지 않았건만, 인간사에서만 발견되는 소꿉놀이다.


가파른 경사를 가늠할 수 있는 풍경과 관광객용 밴

어쨌거나 예수상을 보려면,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한다. 밴은 왕복 1차선 길을 구불구불 숨차게 오른다. 차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이 얼핏 남산 길을 닮았다. 반면 커피를 처음 재배했던 이곳 고지대의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그리고 숲이 밀림처럼 깊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지금도 개발에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곧 만나게 될 밀림 속 이구아수 비행장과 도로를 보면, 앞뒤가 안 맞는다. 차창 너머 멀리 망망대해 대서양이 보인다. 안 되겠다. 남산 길과 비교하기에는 무리다.

작은 사각 화강암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차도에 궤도가 발견된다. 기차가 다녔던 흔적이다. 이 길은 아니지만, 지금도 트램이 운영된다. 30분 간격이며, 티켓에 탑승 시간이 지정된다. 하지만 관광 성수기에는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다. 정상에서 여유를 갖고 즐기다가 자칫 트램을 놓칠 수 있다. 불안하다. 결론적으로 버스가 효율적이다.


계단 위 연인은 키스를 한다. 이 또한 보기 좋다

719m, 걸어서 오를 만한 높이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숲 곳곳에 빈민촌 파벨라가 둥지를 틀었다. 산꼭대기 예수상도 구원해 주지 못하는 가난이다.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리우의 랜드마크, 예수상은 프랑스 에펠탑처럼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했다. 높이 38m, 양팔 길이 28m, 무게가 1,145톤이다. 조형물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정상까지 옮겼다. 실제 가까이서 그 규모를 실감하는 순간, 석상을 실어 날랐던 사람들의 고생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엔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지 않다.


입장하자마자 조심조심하게 넣어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가난한 소매치기들이 입장료에 부담을 갖고 들어오지 않기에 안심하고 사진 촬영에 몰입해도 좋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적용하면, 이곳에서 만나는 내국인은 브라질에서 선택받은 계층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꽃길만 걷는다. 대학에 다니고, 엘리트 그룹으로 성장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정도가 심하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 될 경우, 근로자 평균 임금의 열 배 이상 약 500~1,000만 원 정도의 봉급을 받는다고 한다. 격차가 커도 너무 크다. 룰라 집권 시 공무원 연금 개혁을 단행했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중경에 '빵 산'이 뾰족하게 솟았다. 햇빛이 따가우니 풍경이 오히려 안개 낀듯하다

언덕에 오르자, 예수상과 함께 어제 본 ‘빵 지 아수까르’를 비롯해 낯익은 리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전, 그것도 날씨가 화창하여 사물이 명료해진 덕분이다. 흔한 비유로, “3대가 쌓은 업을 쌓은 결과다.” 내가 보기엔 그 정도의 감동은 아닌데···.

예수상이 세계적인 명물이라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브라질, 혹은 리우가 세계인을 사로잡을 문화유산이 빈곤하다는 고백이 아닐까? 그러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찾아온 우리 입장에서는 평생 다시 오기 어려운 곳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안개에 가려 못 보고 가면, 개운치 않은 감정이 늘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 따져서 뭐 하냐? 감사하게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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