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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Feb 12. 2024

브라질 여행의 출발점, 리우데자네이루

‘빵 지 아수까르’(슈가로프산)와 코파카바나 해변

LA 공항과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의 노란 택시

공항버스를 탄 후 하루 반나절 만에 비행기는 브라질 리우 공항 상공을 날고 있었다. 온전하게 비행한 시간은 LA까지 11시간, 상파울루까지 11시간 30분, 다시 리우 국내선 비행장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 남미가 멀긴 멀다. 특히 예상과 달리 인천-LA 구간보다 북미-남미 구간의 비행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이유 중 하나는 바람이 비행기 역방향으로 불기 때문이다.


덴마크에는 산이 하나밖에 없다. 높이가 160m 정도다. 그런데 이를 아주 높다고 ‘하늘 산’이라고 부른다. 어떤 덴마크인이 노르웨이에서 온 친구에게 이 산의 사진을 보여주며 좀 뻐기려 했다. 그러자 노르웨이인이 콧방귀를 뀌며 돌아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노르웨이에서는 이런 걸 보고 구덩이라고 부르지.”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에서 바라본 안데스 산맥

뜬금없이 왠 덴마크?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남미, 특히 칠레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적응할 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약 7,000km 길이, 평균고도 4,000m의 안데스산맥이 나라 오른편을 통째로 막고 있기에 저절로 겸손해진다. 또한 칠레인은 규모 4 혹은 5 정도의 지진이면, 그냥 ‘진동’이라 한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자세다.

비행기가 등장하자 인류는 자연을 이겨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자연의 위대함에 어쩌지 못하는 한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 말을 실감하려면, 넷플릭스 최신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을 감상하길 권한다. 1972년 우루과이 공군기 571편이 안데스산맥에서 추락한 사건을 다루었는데, 산맥의 규모와 인류 보편적 가치와 관련한 시사점이 발견된다.



브라질을 얘기해야 하는데 사설이 길었다. 새벽 3시 30분 기내에서 아침 식사 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리우데자네이루 관광을 시작했다. 인구 2,200만 명이 사는 브라질 아니, 남미의 최대 도시 상파울루를 건너뛰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미 여행 전문가가 추천한 책에서도 보니또와 빠라지는 존재하나 상파울루는 외면받는다. 왜 그럴까?


코파카바나 해변. 기독교인이라면, 한번 찾아보시라. 후경 건물 공간 사이에 만들어진 십자가를

남미 다른 국가들이 ‘스페인 부왕령’이었던 것과 달리 브라질은 포르투갈 본토 왕실이 한때 정착했던 곳이다. 1802년, 나폴레옹에게 쫓겨 머나먼 뱃길을 지나 이곳으로 왕궁을 옮겨왔다. 이후 주앙 6세는 다시 포르투갈로 복귀했지만, 아들 페드로 1세가 남아 브라질 제국을 세웠다. 그렇게 포르투갈은 리우를 거점으로 300여 년간 브라질을 통치했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국부를 창출해야 한다. 금과 은을 찾지 못했던 이곳에 아프리카 노예와 함께 커피를 들여왔다. 그러나 최초 경작지 리우에서의 재배가 실패로 결론 났다. 훗날 브라질 경제의 동력이 되는 커피 산업이다. 내륙 고지대이면서 바다와 멀지 않은 상파울루로 재배지를 바꾸고 나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대규모 이주했고, 덕분에 상파울루가 인구와 산업 규모 면에서 당시 수도 리우를 추월했다. 

1960년에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내륙 브라질리아로 과감하게 천도를 단행했다. 유명한 건축가 루시우 코스타가 도시를 설계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생활과 동떨어졌고, 특히 미래 도시로써 차도가 좁아 지금은 행정도시 역할만 수행한다. 내가 못 가본 곳이라 하여 “포도가 시다”는 식으로 깎아내리려는 말이 아니다. 브라질 역사와 문화는 여전히 리우에서 숨 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라우항 내항 주변 풍경

오늘날 브라질은 남아메리카 면적의 47.7%를 차지한다. 이쯤 되면 포르투갈이 스페인과 비교하여 브라질 하나로 남미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 1500년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인도로 항해하던 중에 폭풍을 만나 상륙했다. 하지만 이곳은 해안 대부분이 절벽이고 내륙은 정글이어서 정복자에겐 쓸모없는 땅이었다. 브라질의 국목(國木) ‘빠우 브라질’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화학 염료가 나오기 전 고급 옷감에 사용하는 비싼 붉은색 염료 ‘브라지레(타오르는 불꽃)’를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빠우 브라질'(리우 식물원에서)

빠우 브라질이 고갈된 후 브라질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산업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사탕수수 그대로 유럽으로 실어 나를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액체로, 다음에는 설탕으로 정제해 수출했다. 항만에 쌓아 놓은 설탕은 원뿔형으로 생겼는데, 오늘 찾아가는 ‘빵 지 아수까르’(슈가로프산, 일명 빵 산)의 생김새가 그 모양대로다. 


'빵 지 아수까르' 케이블카와 정상에 마련한 카페 공간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바위산 정상에 오르려면, 중간 지점인 212m 높이의 우르까 언덕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우르까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 세계 3대 미항 리우의 내항이다. 만(灣)으로 형성된 이곳은 바닷가 가까이 도로를 만들 정도로 파도가 몹시 잔잔하다. 처음엔 사람들이 강으로 착각했을 정도여서 이곳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그러자 코파카바나 해변이 유명해졌다.


코파카바나 해변(왼편)과 리우 외항과 이파네마 해변
탐방길 모습

산 정상(396m)에서 대서양을 접한 외항을 둘러본다. 만을 빠져나와 이파네마 해변을 낀 외항은 마치 삐친 것처럼 태도를 돌변한다. 거친 대서양 앞바다에서 파도치는 모습이 몹시 사납다. 16세기 마젤란 해협을 빠져나간 스페인 선원들이 이곳을 빠져나가면서 너무나 평화로운 바다를 만나자 몹시 반가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바다의 이름을 ‘태평양’이라고 지었다.


코파카바나 해변

슈가로프산을 내려와 코파카바나 해변 식당에서 때늦은 점심을 챙겨 먹었다. 리우에는 과일이 흔하고, 가축 사육이 수월하다. 생계를 위해 굳이 먼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해물 음식이 귀하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음식점은 바닷가에서 제법 이름난 곳이다. 그런데 선뜻 맛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이지만, 식단 개발과 경험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한편 이곳에선 이상하리만치 바다 비린내가 안 난다. 대서양에는 주로 큰 물고기만 살아 그렇다고 한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건너편 상가

식사 후 한가한 마음으로 코파카바나 해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곳도 '세계 3대' 해변으로 꼽힌다. 부채꼴 형태의 해변 길이가 약 5km나 된다. 맨발로 백사장을 걷자, 햇볕에 달구어진 모래사장으로 인해 발바닥이 따가웠다. 이런 환경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신통하다고 여겨진다.


인도 겸 자전거 겸용 도로 문양

그런데 보도 문양이 독특하다. 검은색과 흰색이 물결 모양을 이룬다. 흑백 화합을 상징하며, 동그라미 형태의 다른 길과 다른 이곳만의 유일한 문양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현지 가이드가 주야장천 소지품 단속을 강조한다. 

좀도둑이 극성이라고 한다. 특히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핸드폰을 낚아채는데, 최신 제품을 든 대한민국 관광객을 발견하면 몹시 반긴다며 겁을 준다. 근로자 월평균 임금 30~40만 원 정도인 형편에서 핸드폰을 넘기고 받는 10만 원 안팎의 돈은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카메라를 얼른 집어넣고 가방을 가슴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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