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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Mar 04. 2024

‘이구아수 폭포’ 3D 체험

누구는 말한다. 꿈꾸는 것만큼 이루어진다고. 그래서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지만 레드 망고가 지천에 깔린 남미 이구아수에서의 휴식은 어릴 적 내 꿈에 없었다. 이건 뜻밖의 선물이다. 퇴직 후 뒤늦게 추가한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지금 이렇게 익어 가고 있다. “그래, 그간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나름 성실했던 결과”라며 나 자신을 먼저 칭찬해 준다.


리우에서 비행기로 2시간 10분, 브라질 이구아수 공항에 도착했다. 2박 3일 일정이다. "무슨 폭포 하나 구경하는데 시간을 이렇게 많이 배정했지?" 처음에는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결과는 흡족했다. 지금도 이구아수 사진을 보면, 폭포의 그 거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짐을 풀기 위해 숙소로 가는 도로 양옆이 크게 파헤쳐져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20여 년 지체되던 확장 공사가 재개되었다고 한다. 도로 아래는 무른 지반을 보강하기 위해 자갈처럼 생긴 돌로 지층을 쌓았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 가쁜 숨을 쉬는 듯 애처롭다. 하지만 즐기러 와서 갑자기 환경을 생각하는 척하는 게 위선적이기도 하다. 


이구아수 폭포는 파라나강 합류점에서 이구아수강 상류 23km 지점에 위치한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다. 빅토리아 폭포는 가보지 못했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한 기억은 희미해진 차제 억지로 비교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미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이곳 방문 당시 일화 중 폭포를 본 후 남긴 한 문장짜리 짧은 감상평을 전한다.


"불쌍한 나이아가라(Poor Niagara)."


이구아수 폭포의 80%는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주에, 20%는 브라질 파라나주에 속해 있다. 과거 파라과이 영토였던 곳이 삼국동맹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두 나라에 빼앗긴 결과다. 그래서 브라질 포스두이구아수, 아르헨티나 푸에르토이과수, 파라과이 시우다드델에스테란 도시가 이곳 주변에 형성되었다. 앞의 두 나라는 폭포 덕분에 생긴 관광 도시로 부가가치가 높다. 하지만 파라과이의 거점도시는 상업과 금융을 기반으로 한다.


도착한 첫날, 6인승 헬기로 폭포 전체를 조망했다. 그래! 숲을 보고, 나무를 봐야지. 일정이 마음에 들었다. 짙은 밀림 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가 온통 짙은 황토색이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이 선물이라고 한다. 매년 나일강에 홍수가 범람하면서 양질의 상류의 흙을 실어 날라 주변 옥토의 지력(地力)을 튼튼히 해준 결과라는 의미다. 덕분에 이집트 고대 문명이 3,0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 땅도 1년 4모작도 가능할 정도로 매우 기름지다고 한다. ‘이구아수’가 지역 원주민 과라니(Guaraní) 족의 언어로, ‘큰 물’ 혹은 ‘위대한 물’이라고 부르게 된 까닭과 상통한다. 


비행 항로는 매우 기계적이다. 좌우 창 옆에 앉은 사람들이 골고루 볼 수 있도록 방향을 바꿔가며 폭포를 크게 두 바퀴 회전한다. 폭포는 좌우 폭이 2.7㎞, 높이가 60~82m에 이른다. 위에서 멀리 내려다보기에 낮아진 폭포의 높낮이는 실감하기 어려워도, 길이에서 뿜어 나는 웅장함은 충분히 다가왔다. 

아르헨티나 코스의 자랑 ‘악마의 목구멍’이 인상적이다. 길이 700m, 폭 150m의 U자형으로 굽은 목구멍 모양이다. 강물의 절반가량이 이곳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데, 하늘 위에서 보면서도 "이야!" 하는 감탄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이때는 몰랐지만, 좀 더 세심하게 악마의 목구멍을 살폈어야 했다.


마침 두 달 전 폭우로 인해 10년 만에 최고 수위를 기록했다. 초당 1천 톤 정도 평균 수량이 무려 16배 이상 쏟아져 내려 일시 폐쇄 조치를 했었다. 곧 폭포는 다시 입장객을 받았으나 상류 데크 두 개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차단되었다. 아르헨티나 관광 코스의 최대 강점이 사라진 것이다.

온전한 폭포의 모습의 맑은 물을 기대했던 관광객에겐 이래저래 실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수량이 늘어 폭포의 본질인 웅장한 위용과 굉음이 상승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야겠다. 헬기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휴식을 취하고 있기에는 너무 멋진 옥외 풀장이었다. 일행 대부분과 달리 나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했으니 즐길 건 모두 즐겨야겠다는 심산으로 프런트에서 수건을 받아 풀장에 도착했다. 수영해 본지가 20년이 훨씬 넘은 듯하다. 누가 영법이 본능적이라고 했던가? 물살을 가르는 팔다리가 갈 곳 잃고 허우적댄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넓은 등받이 의자에 긴장한 몸을 뒤로 눕히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면, 생전 진시황이 부럽지 않다.

저녁은 극장식 식당이다. 뷔페식으로 식사를 하면서 사회자가 소개하는 여러 가지 민속춤을 관람했다. 덩치가 좋아 양복이 빡빡하게 끼게 입은 사회자 한 명이 진행하는 모습이 몹시 과장스러워 낯설었다.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분위기를 올리려는 성실함에 박수를 크게 쳤다. 남미 국가들의 고유의 춤을 짜깁기 형태로 다양하게 펼쳐졌는데, 사회자 목소리만큼 감동이 크진 않았다. 


브라질 출입국사무소

이튿날 본격적인 폭포 투어다. 먼저 브라질 출입국 사무소에서 출국 수속을 밟았다.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코스로 가려면, 국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속을 모두 마치고 버스로 조금 지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 양편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기 색이 칠해졌다. 

노란색 금의 브라질, 하늘색 은의 아르헨티나. 국경이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아르헨티나 출입국 사무소까지 우리는 불가피하게 밀입국자 신세가 된다. 폭포 역시 왼편 브라질과 오른편 아르헨티나 트레일로 나뉜다. 우리 일행은 아르헨티나 국립공원을 먼저 둘러본 후 브라질로 다시 건너올 작정이다. 


아르헨티나 국립공원 입구와 학생들
아르헨티나 트레일 및 공원 내 기차
근접해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공원 폭포의 물보라

아르헨티나 공원에 들어서자 곧바로 트레일 입구가 나온다. 버스로 한참 이동 후 트레일이 나타나는 브라질 코스와 대조적이다. 아르헨티나 코스는 중간중간 휴식처가 마련되어 있다. 폭포 가까이 트레일 코스가 형성되어 얼굴을 숲밖으로 내밀기도 전에 폭포에서 들여오는 소리가 압도적이다. 

이윽고 폭포를 대면했다. 많은 수의 거대한 몸집의 장수들이 병풍처럼 열병을 서서 관광객을 반긴다. 크고 작은 폭포가 모두 275개라고 한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 하천 수위로 인해 물줄기가 150~300여 개로 바뀌기에 유통성을 갖고 보면 좋다. 코스 오른편 맨 끝에 있는 폭포가 가장 작았는데, 마치 제주도 천지연 폭포처럼 생겼다. 


브라질 코스의 폭포 전경

건너편 브라질 트레일을 마주 보면서 두 코스를 비교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기존에 다녀갔던 관광객 다수가 아르헨티나 쪽에 점수를 더 준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굉음이 지어낸 이름 ‘악마의 목구멍’을 볼 수 없었기에 우리 일행 모두 브라질 코스가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방통행으로 동선이 짜인 브라질 트레일은 높낮이를 신경 써서 조성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폭포와 멀리 또 가까이 길이 형성되었다. 카메라를 든 입장에서 같은 폭포를 보더라도 다른 느낌을 담을 수 있어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여행에서 사진을 찍을 땐 '사진 여행(예술 사진)'을 원하는지, '여행 사진(기록 사진)'을 원하는지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좋다. 힘들게 멀리까지 찾아 온 여행이다. 난 기록 쪽을 택했다. 카메라를 '조리개 우선'으로 맞춰놓고, 다른 사양 모두 '자동'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렌즈를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자유롭게 돌리며 거침없이 셔터를 눌렀다. 현지 가이드 설명을 들으면서 폭포 감상을 하고 게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을 담으려면, 카메라로 거리와 조리개를 맞추는 일만으로도 정신없이 분주했기 때문이다.  


폭포 상류(오른쪽)

브라질 트레일의 마지막 지점은 '악마의 목구멍' 폭포 바로 아래까지 데크가 만들어져 매우 가깝게 접근하여 감상할 수 있다. 세차게 쏟아지는 물보라 세례를 직접 체험하는 현장에서 지난 5월 찾았던 요세미티 폭포가 떠올랐다. 요세미티는 단일 폭포로, 이곳보다 더 긴 낙차를 가졌다. 폭포 바로 아래서 물보라에 몸이 떠밀릴 것 같았던 세기를 몸이 아직 기억한다. 

이구아수 폭포의 소리와 강도는 상대적으로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목구멍으로 한꺼번에 질러대는 소리는 가위 폭발적이다. 비교하자면, 요세미티는 큰 북으로 "쿵 쿵", 이곳은 교향악단이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창출하는 "꽈과과 광"하고 내는 소리다. 결이 다른 웅장함과 조화였다. 많은 관객과 어우러져 넋 놓고 한참을 감상했다.

 

이동 수단 교체

육지 체험을 마지막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보트 투어다. 선착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자연보호를 위한 브라질 공원의 노력이 돋보였다. 좁아지는 길을 확장하는 대신, 소형 운송수단으로 바꿔 타게 하는 역발상을 떠올렸다. 현명하다. 관광이라는 것이 자연을 훼손하는 데 일조한다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줘서 만족했다. 

어느 관광객의 강렬한 문신, 폭포 사이를 나는 봉황 모습이다
선착장/수상보트 뒤로 물높이가 줄어든 것을 가늠케 하는 흙

선착장 건너편으로 물 높이가 현저하게 줄어든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수량은 여전히 풍부했다. 우의를 입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고정했다. 물이 스며들 것을 염려하여 신발과 양말을 벗고, 카메라를 두고 내렸다. 대신 이에 괘념치 않은 동료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다. 

삼성 핸드폰의 방수 능력을 입증됐다. 비닐에 싸지 않았음에도 하선 후 작동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갤럭시가 애플사의 아이폰을 추월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하게 성능 차이는 아닌 듯싶다. 


관광객 안전을 고려한 듯 보트는 지그재그로 운행하며 탑승객의 짜릿한 흥분을 유도한다. 그러나 영악했다. ‘악마의 목구멍’ 깊숙이 접근하지 않고도 비슷한 감동을 주려고 보트의 출렁거림을 깊게 강하게 조작했다. 그리고 인근 작은 폭포의 물줄기를 맞는 것으로 대신했다. 

당연히 흥분의 강도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일행의 비명소리는 여전히 높았고, 다양한 공간에서 이구아수 폭포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이구아수 폭포 관광이 모두 끝났다. 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그 해는 아르헨티나 이과수 공항을 출발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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