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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Mar 18. 2024

비글 해협, 다윈과 같은 공간에 서다

대륙 남단 마을 '우수아이아' 

"이제부터는 남이 가진 것을 탐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의미를 부여하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불행은 남과 비교할 때 작동한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평범한 일상에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참! 행복이란 우리나라에 없던 개념이다. 서구 문명이 상륙하면서 우리의 삶에 의미를 지니고 다가왔다. 

포유동물인 인간의 사고체계가 참 오묘하다. 다른 동물들은 오직 생존과 번식에 충실한다. 반면 인간만이 매사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어제가 별 날이 아니고, 오늘이 별 날이 아니다. 하지만 "어제 세상을 떠난 이에게 오늘은 매우 각별하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살아남은 이들이 별 날도 아닌 '오늘'에 부여하는 엄청난 상징성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는 인간이 스스로 진화의 법칙을 거스르며 죽음을 각오한다. 


1912년 1월 18일 로버트 스콧이 이끄는 영국 탐험대가 천신만고 끝에 남극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엔 노르웨이 국기가 펄럭이며 일행을 맞았다.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 탐험대가 1911년 12월 14일 이미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얼음, 시간과 싸우는 이 가치 없는 경쟁에서 아문센이 며칠 더 빨랐다. 영국 탐험대원들은 사기가 꺾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얼음판 위 귀로에서 탐험대장 스콧뿐만 아니라 로런스 오츠도 죽고 말았다. 특히 동상에 걸린 오츠는 동료 네 사람이 이동하는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택했다. 오늘까지도 그가 영국에서 순교자로 추앙받는 이유다. 3월 17일, 그는 텐트를 떠나면서 전설적인 한 마디를 남겼다.


"나갔다 올게. 좀 오래 걸릴 거야. I am just going outside and may be some time."


비록 최초로 남극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유머를 잃지는 않았다는 면에서 영국인들은 그의 마지막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구 맞은편 남미 여행을 계획하면서, 또한 이곳 우수아이아를 찾으면서 나 역시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약 3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세상 끝 지점'에 관한 여행이다. 따지고 들자면, 남반구에서 세상 끝은 남극이다. 그러나 남극에 발을 디디기가 쉽지 않은 처지에서 이곳을 '대륙의 끝'이라며 감상에 젖는 정도는 애교로 받아 줄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서 지구의 중심부를 관통하여 만나는 지역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다. 그러니 북반구의 조그만 나라에서 비행기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온 정성이 대견할진대, '세상 끝'에 왔다는 나의 자부심을 정색하며 손사래 칠 일은 아닐 것이다.


음식점 목조 부조(오른편)가 재밌다

이곳 '티에라 델 푸에고'란 지명이 혼란스럽다. 크게는 티에라 델 푸에고 제도를 말한다. 모든 섬들을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나눠 가졌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섬 티에라 델 푸에고 역시 동서로 분리되었는데, 서쪽 영토의 칠레 주도는 푼타 아레나스, 동쪽 영역의 아르헨티나 주도는 우수아이아다. 그리고 우수아이아에는 다시 티에라 델 푸에고 산이 존재한다. 따라서 반복되는 고유명사 '티에라 델 푸에고'는 제도, 섬, 산 중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개념과 국가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보다 약간 섬의 북쪽에 치우쳤으나 인구 규모 면에서는 두 배 정도 더 크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하기 전 남동 태평양과 대서양 간 연락항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남극으로 가는 항공길을 확보한 마지막 도시다. 게다가 우수아이아 아래 남쪽 섬들을 칠레가 차지하고 있어 푼타 아레나스는 이래저래 남극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지가 된다. 

크로아티아의 가난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2021년 세계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된 가브리엘 보리치가 바로 이곳 출신이다. 그는 1986년 생으로, 우리 집 큰애와 동갑이다.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젊은 정치인의 등장은 환영받을 일이다.


반면 우수아이아는 티에라 델 푸에고섬 최남단에 위치한 인구 5만 명의 작은 아르헨티나 마을이다. '핀 델 문도(Fin del Mundo, 세상 끝 도시)'라고 한다. 남극에서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우면서 길이 닿는 가장 남쪽에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남서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고 연중 기온이 낮은 오지로, 겨울나기가 무척 어렵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굳이 이곳까지 와서 삶의 터전을 마련할 이유가 없다. 무모하다. 그럼, 누가 제일 먼저 이곳에 정착했을까? 그 답은 공항의 목조 건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 죄수들이 맨 처음 이곳에서 나무를 벌채하여 집을 짓고 척박한 삶을 시작했다. 호주의 테즈메이니아가 그 모델로, 죄수들의 유배지였다.

 

최남단 등대

지도를 보면, 칠레와 사이에 그어진 국경선이 위에서 아래로 직선이다. 협상을 통해 인위적으로 경계 지어진 흔적이다. 그 옛날 우수아이아는 개발 가치라곤 눈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었던 땅이었다. 그랬던 것이 마젤란 해협으로 진입하는 해양 전지 기지로서 역할이 부각되면서 아르헨티나 정부가 초창기에 모범수를 보냈다. 이어 본토에 님비 현상이 심해지자, 살인과 강도 등 중형자의 유배지로서 성격이 두드러졌다.


우수아이아에서 여행 프로그램은 두 가지다. 하나는 비글 해협 유람선 관광과 ‘세상의 끝 기차’를 탄 후 티에라 델 푸에고 국립공원을 탐방하는 일이다. 비글 해협을 돌아보는 일은 얼핏 단순하다. 그러나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과 200년을 뛰어넘어 공간을 함께 한다는 설렘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유람선

1831년, 스물두 살 찰스 다윈은 영국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로 출발했다. 비글 해협이 이 배의 이름을 따왔는데, 다윈은 2차 항해 때 승선했다. 로버트 피츠로이 선장의 말동무 역할이었다. 장기간 항해로 선장들이 정신과 육신이 피폐해져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기에 비슷한 지적 수준의 동반자가 필요했다.

유명한 내과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다윈은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창조론자였다. 당시 직업이 없었던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신학 학위를 받았기에 목회 활동을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자연에 관한 호기심이 깊었던 그는 무려 5년간 이곳과 갈라파고스제도를 비롯한 남태평양 섬들을 탐험했다.


배 안에서 찍은 관광객. 이곳 여름 날씨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에콰도르 해역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부리의 크기가 다른 핀치(finch, 참새목 되새과) 13종을 관찰했다. 함께 승선했던 세 명이 그를 도왔는데, 그중 한 명이 다윈보다 한 살 많은 피츠로이 선장이다. 훗날 다윈의 변절(?)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유명한 윌버포스-헉슬리 토론장에서 “성서, 성서”라고 외쳤던 장본인이다. 

학문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조류학자 존 굴드였다. 그는 휘파람새를 ‘휘파람 핀치’로, 다른 종 찌르레기의 사촌으로 알고 있던 것을 ‘선인장 핀치’로 바로잡아 주었다. 서로 다른 모습과 재능을 지녔지만, 같은 종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만든 중요한 지적이었다. 이렇게 분류, 정리된 지식을 전체적으로 보고 나서야 다윈은 비로소 진화론자가 되었다. 그리고 망설이던 끝에 하선 후 23년이 지나서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갈매기(왼편)와 바다사자. 오른편 사진을 잘 보면, 바다사자 무리와 바위를 구분할 수 있다

실제 비글 해협을 지나면서 보면,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을 만난다. 사람에겐 버려진 땅이나 새와 바다 동물에게는 천국이다. 여름인데도 찬 바람이 세게 불어 체감 온도가 낮다. 운항 중 진눈깨비가 한차례 지나가자 가을옷을 겹쳐 입었음에도 몹시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실 안과 밖을 짬짬이 오가면서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비글 해협에서 만난 '꼬르모란(Cormorant)', 펭귄과 크게 다른 점은 하늘을 난다는 사실이다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표본 채집했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이곳에서도 핀치새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다. 실망스럽게도 그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새는 펭귄을 닮은 꼬르모란과 갈매기 등이 지배적이다. 바다사자도 보인다. 널빤지에 무리 지어 널브러져 있던 샌프란시스코 ‘피어 39’에서 만났던 바다사자와는 다른 삶이다. 하지만 인간을 괘념치 않는 태도는 여전했다.

테에라 델 푸에고 섬에는 흥미롭게도 칠레령 '다윈 산'이 있다. 높이 2,488m 섬 최고봉으로 비글 해협 북쪽 안데스 산맥의 일부다. 비글호 선장 피츠로이가 1834년 2월 12일 찰스 다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명명했다. 또한 한 해 전에는 산 남서쪽 해협을 '다윈 해협'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빙하에 부서진 조각이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함선이 위험에 처하였을 때 다윈의 기지로 벗어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윈이 채집만 하며 배에서 거저 놀고만 먹은 것이 아니라 일정 역할을 했으며, 이때만 해도 두 사람 사이가 좋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간에 잠시 내렸던 섬 풍경

‘최남단 등대’를 반환점으로 배는 원래 출발지로 돌아간다. 중간에 조금 큰 섬에 내려 탑승객들에게 주변을 살펴볼 시간을 준다. 짧은 시간,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3시간을 소요한 후 최초 승선항으로 되돌아왔다. 관광안내소에서 ‘세상의 끝 증명서’를 받았다. 


관광 안내소 옆 사진 촬영(오른편)

그리고 그날 저녁 식사의 메뉴가 이곳 명물 킹크랩이었다. 등과 발에 가시가 돋아 손으로 쥐기가 어렵고, 가위질도 영 서툴어 살을 발라먹기 위해 악전고투했다. 새삼 집에서 게살을 발라주던 아내가 생각났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한 감정이 살며시 고개 들었다. 하지만 이후 볼리비아에서 고산증을 체험하면서 아내의 판단이 나름 적절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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