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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un 10. 2024

남미 여정의 대단원, 마추픽추

아쉽다. 마침내 페루, 나아가 남미 여행의 종착지 마추픽추(machu picchu) 이야기를 꺼낼 차례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먼저 이곳이 ‘잃어버린 공중 도시’라는 화려한 수사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그렇다고 해서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착륙했어도 밤하늘에 빛나는 달의 신비가 여전하듯이 마추픽추에 대한 경탄은 멈추지 않으리라 믿는다.


마추픽추 전경
농경지와 창고 지역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 3세가 원주민 소년 파블리토라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곳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그는 물론, 페루 정부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마추픽추에 대한 지구인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이곳을 스페인 군을 피해 세워진 잉카의 마지막 요새라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과 무관하다. 또 잉카 최후의 '비밀 도시'라고 한다. 1911년까지 적어도 400년간 인간이 산 흔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거대한 강과 절벽, 산들이 천연 방어막이 되어주었던 마추픽추의 위치가 군사기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격하게 표현하면, 숨겼다기보다 목적을 다해 버려진 곳으로 보는 것이 옳다.


중심 광장(오른쪽)

매스컴에서도 ‘세계 7대 불가사의’라며 과장을 부추긴다. 대한민국 TV에서도 극적 효과를 노려 마추픽추의 온전한 모습을 보는 것이 마치 일생일대의 행운인 양 보도했다. 하지만 이곳의 안개는 수시 일어나고, 계곡에서 바람이 불면 쉽게 걷힌다. 악천후가 아니라면, 마추픽추를 감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사설에 불과하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는 마추픽추가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든 장관이라는 결론에 절대복종하게 되니 말이다. 갑자기 눈이 시원해지는 풍광은 방문객 모두에게 시름을 풀고, 그간 성실했던 삶의 여정에 대한 보답처럼 느껴진다. 자연과 인간이 힘을 합쳐 만들어 놓은 마추픽추는 "그간 잘 견뎠어"라며 어깨를 다독이며 건네주는 선물이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중심 상가(왼편)와 계곡 옆 식당

오얀타이탐보에서 잉카 레일을 탔다. 이곳 철로는 마추픽추 관광을 위해 별도 설치한 것이 아니다. 영국이 지하자원과 곡물을 수송하려고 깐 협궤에 넓은 객차를 얹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덜커덩 소리를 내며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가 좌우로 일정하게 흔들려 관광객이 졸거나 향수에 젖게 한다.


셔틀버스와 승차 대기 인원

그렇게 1시간 20분이 걸려 마추픽추 아래 도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 도착했다. 도시가 깔끔하고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탁류가 흐르는 우루밤바강 옆 꽃으로 장식한 식당들도 참 예쁘다. 우리 일행은 그곳 기찻길 옆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마추픽추로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메인 게이트와 무너져 가는 석벽

관광객을 실은 많은 버스들이 돌길을 오르내린다. 그러자 그 진동으로 인해 유적지 내 일부 석조물은 붕괴할 위험이 커졌다. 하지만 포장도로 건설을 위해 관광 사업을 잠시 접으려는 의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하루 약 6~7억 원이 수입으로 잡히며, 그중 10%가 이곳 상주 인원 3,000여 명의 몫이다. 그래서 버스는 오늘도 중단 없이 힘차게 산비탈을 오른다.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에서 만났던 꽃말 '짝사랑'의 베고니아. 실제 모습은 처음이다.

지난 2022년 12월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페루에서는 한 달 넘게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듬해 1월 중순까지 마추픽추 근처 공항이 여러 차례 습격당했다. 이때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일시 마추픽추를 폐쇄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 일정을 잡으면서 제일 먼저 마추픽추 개방 여부를 확인했다. 유적지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이곳이 장기간 폐쇄되었다면, 아쉬움에 나도 그 결정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지붕을 복원한 가옥(왼쪽)

마추픽추는 나스카 문명처럼 페루 고대의 유적지가 아니다. 1450년쯤 잉카 양식으로 지었다. 잉카 제국 초대 황제이자 제9대 사파 잉카 파차쿠티와 후임자 투팍 잉카 유팡키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랬음에도 정확한 건설 목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천문을 읽고, 작물을 시험 재배 하기 위한 곳이 유력(TV 방영)하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곳 고고학자들은 황제가 군사 원정을 끝낸 후 휴식을 위한 전용 궁전으로 사용했다는 설에 방점을 찍는다. 


발견된 180개의 유골 중 90% 이상이 성인 여자의 것이다. 그리고 타지방에서 발견된 유골보다 노동량이 적었던 흔적을 확인했다. 따라서 일반적인 도시나 일상생활공간이 아닌 것으로 평가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일 수 있다. 다만 약 80여 년간 사용되다가 도시가 빈 것을 보아, 황제들이 대를 이어 계속 관심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한편 스페인 정복자들이 퍼트린 질병으로 인해 거주민 모두 사망하였다는 설도 꽤 설득력이 있다. 결론은 마추픽추가 쿠스코 지근거리에 있었음에도 스페인 군에게 끝까지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훼손되지 않고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직 절벽 위에 세워졌음을 보여주는 사진 두 컷

예상과는 달리 마추픽추는 쿠스코보다 1,000m 정도 낮은 해발 2,430미터 높이에 위치한다. 하지만 우르밤바강에서 수직으로 약 450미터 정도 가파르게 올라간 절벽 위에 세웠기에 내려다보는 계곡의 경치가 살 떨리게 한다. 아침에는 마추픽추가 안개에 잠긴다. 안개는 알려지지 않은 건설 목적과 어우러지면서 신비로운 이야기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단 중앙 테두리 안 태양의 신전, 오른쪽 사진에서 조금 잘려 나왔다

이곳은 쿠스코보다 상대적으로 온난한 기후를 지녔다. 1450년대 이래 주변 지역을 포함, 연간 약 1,800mm의 강수량을 보였다. 다행히 사계절 고루 뿌려져 심각한 범람은 없었다. 주식인 감자와 옥수수 재배가 가능했으며, 특별한 수로 시설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이 넘칠 경우를 대비한 시설도 비교적 잘 구축되었다. 맨 아래는 암석으로, 그 위에는 모래와 자갈을 섞었다. 그리고 맨 위에 흙으로 층을 구성했다. 흙은 모두 계곡 아래에서 퍼 올렸다.


콘도르 신전 머리 형상(뒤로는 양 날개 모양의 바위가 있다)과 좁은 수로(오른편)
세 창문의 방과 퓨마 형상의 돌
햇빛이 비치면 동일한 그림자가 형성되는 돌(왼쪽) / 방향석(제일 위가 정남향으로 남반구 특징이 반영되었다)

유적지는 크게 도시 구역과 농경 구역으로 나뉜다. 도시 구역은 다시 위쪽 신전과 사원, 아래쪽 주민 거주 시설로 구분된다. 해시계 인티와타나, 태양의 신전, 세 창문의 방 등 주요 관광 포인트 대부분이 동쪽에 편성되었다. 모두 태양신 인티를 모시기 위해 마련된 시설물이다.


귀족 거주 시설(왼쪽)과 일반 주거 시설

거주 시설은 가옥과 식량 저장 창고 등으로 구획했다. 가옥이 100 채도 안 되어 거주 인원이 최대 1,000명이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귀족이 살던 곳은 별도로 분리되었다. 당시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이곳에도 계단식 밭이 넓게 펼쳐졌다. 주변에는 각각 3m 높이의 단이 무려 40개나 존재했고, 수백 개가 넘는 계단식 밭이 약 3,000개의 계단으로 이어졌다.


농경지 위로 망지기 집이 보인다

그러나 밭의 총면적은 4.9 헥타르밖에 되지 않는다. 주민 모두 먹여 살리기에는 수확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종종 계곡 아랫마을로 내려가 식량을 조달해 와서 안정적인 공급을 도왔다. 


구름에 싸인 와이나픽추. 이 높은 곳에도 주거시설과 계단식 밭이 조성되었다
와이나픽추 입구와 전경

마추픽추 앞에 더 높고 뾰족한 산이 버티고 섰다. 와이나픽추다. 경사가 매우 가팔라 하루 2회, 총 4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한다. 예약이 필수적이다. 이 험한 곳에도 계단식 밭과 저장고가 있으며, 마추픽추의 태양 신전에 호응하여 9부 능선 뒤쪽에 ‘달의 신전’이 있다. 그러나 이곳을 오르려는 관광객의 주목적은 다른 각도에서 마추픽추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너편 산등성이에 조성한 길

방사성 탄소 측정 결과, 2,000여 년 전부터 이곳에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나아가 폴리네시아에서 발견된 유골, 치아, 잉카 거주지 양식이 동일하다. 중간중간 안티족 정복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발견되는데, 그렇다면 마추픽추가 최초 예상과는 달리 거점 도시였을 수도 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빙엄이 예일대로 가져간 유물 5만여 점 중 약 1/10 정도만 페루 측에 반환되었을 뿐이다. 페루 정부 역시 굳이 탐사에 집착하지 않는다. 신비감이 훼손될 것을 염려했을까? 


그러나 일반 관광객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 무시해도 괜찮다. 아무 생각 없이 발아래 까마득한 계곡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시라. 그간의 고단함이 씻겨 사라진다. 그리고서 마추픽추의 경관에 집중하시라. 그러면, 이곳 전통음악 '엘 콘도 파사(El Condor Pasa)'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리라. 이 곡은 나라 잃은 잉카인의 슬픔을 노래했다고 하지만, 이곳에 오른 우리 외부인이 들으면 흐뭇하고 위안받는 심정이 될 것이다.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이 작곡가 김민기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사회 운동가가 되었듯이 노래는 듣는 이의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조지 베일런트가 쓴 <행복의 조건>이란 책이 있다. 814명의 성인 남녀의 삶을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 보고서다. 그 조건은 일곱 가지로 귀결되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다. ⓵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⓶ 평생에 걸친 교육, ⓷ 안정적인 결혼 생활, ⓸ 45세 이전의 금연, ⓹ 알코올 중독 경험이 없는 적당한 음주, ⓺ 규칙적인 운동, ⓻ 적당한 체중이다. 

그런데 한 가지, '돈'이 서열에서 밀렸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뜨악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공감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돈은 약간의 결핍이 있을 때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어차피 돈이 갖지 못한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만족'이다. 


남미 여행 내내 동행했던 풀프레임  중고 카메라, "너도 애썼다."

이번 남미 여행에서도 이 점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 남미 여행을 오래 벼르다 가니 그 과정에서부터 누적된 설렘이 적어도 세 배 이상 컸다. 그리고 돈만으로 만족한 여행이 완성되지 않는다.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건강과 현지 기후 사정 등이 합쳐져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불안한 치안 등을 염려하며 출발했던 남미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무탈하게 끝나 다행이었다. 그리고 꼭 보았으면 했던 우유니 소금사막-모레노 빙하-비글해협-탱고, 예상을 초월했던 숭고미를 느꼈던 이구아수 폭포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절경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내겐 모두가 완벽했다. 이제부터 지구인은 두 종류로 갈린다. 남미 여행을 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그리고 이후 해외여행의 기회가 생긴다면, 그것은 덤이다. 



그간 지상에서 만나 함께 남미 여행에 참여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립니다. 아쉬운 마음에 시 한 편 선물하면서 끝내겠습니다. 킴벌리 커버거(Kimberly Kirberger)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입니다. 조만간 다른 주제의 글로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건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서는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볼리비아 라파스 '마녀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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