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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인영 Jun 03. 2024

‘성스러운 계곡’에서 마주친 페루 민초

기차에서 본 안데스 산맥 풍경 한 컷

이언 모리스는 그의 저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원인(猿人)은 동아프리카를 벗어난 최초의 유인원이었다. 그들의 뼈는 아프리카 남단부터 아시아의 태평양 연안까지 전역에서 발견된다. 그렇다고 카우보이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거대한 이주의 물결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분명히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 광대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은 그보다 더 광대한 시간대를 요구했다.
1년에 평균 130미터라는 기막힌 속도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오얀타이탐보 상가 지붕 위에도 소 조형물과 성수를 담은 병이 보인다
툭툭이와 마을 골목

나 역시 인류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영웅들의 담론이나 서사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믿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유지해 온 민초들의 삶이 모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짧은 기간 중 언뜻언뜻 그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만난다는 것은 여행의 기쁨이자 행운이다. 



오얀타이탐보 아이와 마을은 잉카 시대의 가옥 양식이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당시 수로와 하수도도 지금까지 사용된다. 성벽 아래 자리 잡은 토산품 시장 옆 상가에서 시원한 냉커피 한 잔을 마신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케추아 전통 가옥 한 곳을 방문했다.


전통 가옥 마당 안에 진열된 토산품
마당 한편에서 금발 인형을 갖고 노는 계집애들과 집안에서 기르는 기니피그

집 안마당에 상당량의 기념품과 토산품을 진열해 놓았다. 이어 실내에 들어서자, 촛불에서 새어 나오는 빛 사이로 이 집 어느 조상의 해골이 제일 먼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철만큼 강한 해중석을 비롯하여 다양한 전통 물품들이 잔뜩 쌓였다. 모두 그들의 삶에 소중한 의미가 깃든 물건들이다.

그런데 바닥에선 큰 쥐처럼 생긴 기니피그(guinea pig)가 모여 풀을 뜯고 있다. 덩치가 작지만, 척박한 안데스산맥에서 부족한 육류를 섭취하기 위해 기른다. 전통 음식 ‘꾸이(cuy)’의 식재료다. 기름기가 적어 구우면 담백한 맛을 낸다고 한다. 쿠스코 시내에 꾸이를 파는 음식점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먹기엔 외관상 영 꺼림칙하다. 


절벽 호텔

우리 일행은 지나는 길에 잠시 400미터 절벽에 매달린 캡슐 호텔(Sky lodge)을 밑에서 잠시 감상했다. 122미터 절벽 위에 항공우주 알루미늄과 고강도 통유리로 제작된 숙박 시설이다. 체크인하려면, 배낭을 멘 채 암벽 등반을 해야 한다. 도로변 입구에서 쇠줄에 카라비너(karabiner, 암벽 등반에서 자일을 연결하는 금속제 고리)를 건 다음 양손에 힘을 주고 올라야 한다.

TV에서 PD가 한참을 끙끙거리며 쇠 발판을 밟고 간신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별이 내리는 밤하늘을 감상하는 기쁨은 수고에 대한 보너스다. 불편한 식사와 취침을 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내려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집라인 6개를 옮겨 타고 활강하면 그만이다. 비싼 숙박료를 지불해야 함에도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차창으로 빨간 비닐봉지를 작대기에 매단 집들이 눈에 띈다. 페루 선술집이다. 호기심을 갖고 그중 한 곳을 찾았다. 머리칼을 길게 두 가닥으로 따서 뒤로 한데 묶은 나이 든 주모가 옥수수로 빚은 막걸리를 따라준다. 첫 잔은 쌉싸름했다. 이어 다른 두 번째 술이 부드러워 제법 내 입맛에 맞았다.

마당에는 서양식 다트처럼 동전을 던져 점수를 합산하는 놀이 기구가 흥미롭다. 일종의 게임판으로 아마 술값 낼 사람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나 보다. 사람 사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 어디나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색 비닐봉지를 단 곳은 여인네가 있는 술집이라 한다. 들르진 못했다. 정말이다.


친체로 마을 전경
모라이 입구와 전경, 척박한 민초의 삶을 상징하는 '애니깽'을 포함했다

성스러운 계곡 투어는 쿠스코에서 친체로-모라이-살리네라스-오얀타이탐보-피삭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친체로(Chinchero)는 잉카인의 후손들이 사는 전통 마을로, 알파카 털을 천연 염색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정상 해발 3,800미터 드넓은 벌판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초록에 눈이 시원해지는 걸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2025년 완공 목표로 진행 중인 새로운 국제공항이 들어서면, 친체로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지 궁금해하면서. 참! 공사는 대한민국 현대산업개발에서 맡았다.


살리네라스 상류 수원지와 소금밭

해발 3,000미터 고산에 펼쳐진 약 600년 된 전통 방식의 천연 염전 살리네라스(Salineras)를 찾았다. 구름이 산허리에 걸린 곳에 조성된 소금밭이다. 이곳 마라스 지역이 과거에 바다였다는 방증이다. 인간의 먼 조상도 바다에서 살았다. 우리 몸의 수분이 60퍼센트이고, 소금기가 남아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따라서 적당량의 소금은 인체에 필수적이다. 유럽에서 예전엔 소금이 몹시 귀해 병사들의 봉급으로 지급되었다. 그래서 '봉급, 월급'의 영어 salary가 '소금 salt'를 어원으로 한다. 

 

안데스산맥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 산맥이다. 신생대 제3기(약 6,500만 년 전~200만 년 전)에 서쪽으로 움직이는 남아메리카 판과 동쪽으로 움직이는 나스카 판이 서로 부딪치면서 지표면이 솟아올라 생겼다. 이런 지각판 운동은 다른 행성에 없는 것으로, 지구 생명체의 탄생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산맥이  융기 후 남아 있던 소금 성분이 지하수에 녹아 흘러나오면서 계단식 염전을 이뤘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과는 이란성 쌍둥이다. 염전은 다랑논처럼 층층이, 그리고 나뉘어 만들어져 그 수가 무려 2,000개가 넘는다. 전체적인 운영은 지역 조합에서 담당한다고 한다. 


다각형 구조의 염전들

염전 한 칸은 최대 4제곱미터, 깊이는 30센티미터를 넘지 않고, 한 달에 약 700킬로그램의 소금을 수확한다. 마치 지하자원처럼 얻기에 소금 광산이라고도 한다. 품질이 좋은 소금은 인간에게, 질이 떨어지는 것은 동물에게 공급한다. 첫 번째로 거두는 소금이 하얀 플로르(Flor), 두 번째가 장미처럼 붉은 로사다(Rosada), 세 번째가 약품과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메디시날(Medicinal)이다. 식용으로는 로사다가 가장 좋다.

상류에서 흐르는 지하수가 별도의 품을 팔지 않고도 염전 사이사이를 흐르도록 설계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찔하게 가파른 계곡에서 작업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짜낸 잉카인의 지혜다. 그런데 염전 색깔이 하얗지만은 않다. 황토색이 눈에 띈다. 지대가 황토이기도 하지만, 우기에 물의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고단한 그들의 노동 현장에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어쩐지 미안했다. 하지만 염전과 관광산업이 결합하면서 주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조금 나아지리라 기대하며 애써 스스로를 변호했다. 


오얀타이탐보 마을 풍경
K-팝 영향으로 우리 일행 중 한 분과 사진 찍기를 자청했던 페루 청소년과 피삭 시장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관광지 주변에서 페루인의 삶을 퍼즐로 맞춰보았다. 이는 자칫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곡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겸허하게 단편적인 흔적일 뿐이라고 먼저 인정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탐보마차이 입구에서 새끼 야마를 안고 관광객의 사진 촬영 기다리던 아이들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피삭 시장에서 경찰의 호루라기에 야마를 데리고 황급히 줄행랑치던 여인네 뒷모습도 눈에 삼삼하다. 구걸 대신 어떻게 하든 열심히 살아가려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탠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이 오기길 기원하면서 짝! 짝!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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