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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Oct 07. 2021

이직 한달 차, 또 이직을 결심하다 Ⅹ

취업 사기

취업 사기


  따박 따박 이랬지 않느냐, 저랬지 않느냐 묻고 따지는 나에게 대표가 점점 할말을 잃어갈때 쯤 갑자기 그는 난데없이 나의 근무태도를 지적했다.


  대표의 주특기 3. 곤란해지면 다른 이야기를 꺼내라


  "내가 이런 말까지 안하려고 했는데 XX씨 출근 시간 좀 제대로 지켜"

  "네?"

  이때 나는 이마에 손을 대고 거의 쓰러지다 싶이 앉아 있었는데 저 말을 듣고 너무 놀라 뒤로 넘어갈뻔 했다.

  "출근시간을 제대로 지키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탄력근무제라면서요?"

  그는 갑자기 당황하더니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래도 출근시간은 지켜야지!"

  "그게 무슨 소리세요? 탄력근무제 뭔지 모르세요?"

  너무 황당해서 넋이 나간 채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만약에 9시 출근한다하면 9시에 와야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제가 이해가 안가는데요. 출근 시간에 상관없이 8시간 근무하고 퇴근하는게 탄력근무제 아닌가요?"

  "정시에 맞추라고!! 9시면 9시! 10시면 10시!"

  그는 거의 악을 쓰다싶이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9시면 9시에 딱 맞춰오고 10시면 10시에 딱 맞춰와라 이 이야기세요? 시간을 정해놓고 출근을 해라?"

  "어"

  하하 그러니까 출근시간을 정해놓고 와라?

  "그게 탄력근무제에요?"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출근시간을 정해놓고 출근하라니? 그게 탄력근무제라니? 어떻게 이렇게 황당한 발언을 할 수가 있지? 그리고 또 더 어이없는건 나는 근무시간을 어긴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8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었다. 거의 매주 주말에도 일했다. 대표는 내가 손이느려서 주말에도 당연히 일을 해야한다며 야근 수당은 커녕 휴일 수당도 챙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자율적 출근을 권한건 대표였다.

   이때 더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걸 알았다. 대표에게 계속 불만을 이야기 할 수록 이 사람은 억지를 부려서 '나의 잘못'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게 설사 진짜 나의 잘못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그냥 비난의 화살을 나에게 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정도면 거의 취업사기네요"

  작업실의 출입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대표가 화가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탄력근무제라더니 그것도 아니고 재택근무라더니 제 작업실을 그냥 사무실처럼 매일 쓰고 계시고 디자인 외에는 전혀 신경쓸 거 없게 해주시겠다더니 그것도 아니고 직원이 나 외에 더 있다더니 그것도 거짓말이고 근로계약서도 작성 안해. 뜬금없이 프리로 일하라더니 계약서도 안줘. 툭하면 거짓말, 기억 안나는 척 이정도면 사기아니에요? 면접때 제가 봤던 분이 대표님 맞아요?"

  대표는 잠시 벙찌더니 갑자기 또 소리를 버럭 질렀다.

  "회사가 대표 마음대로 바뀔 수도 있는거지! 상황 상 변경 될 수 도 있는거지!"

  "그러면 저는 여기 안 다닐래요. 전 면접때 대표님이 말했던 근무조건을 보고 온거지 이럴려고 여기 온게 아닙니다. 그만둘게요. 작업실에서도 나가주세요"

  계약서가 없건 월급을 못받건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전 디자이너가 내게 '거기랑 더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요.' 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아주 철저히 깨달았다.  

   "진짜 그만둘거야?"

   "네 그만둘게요. 대표님 원하시는 인재가 제가 아닙니다. 마음 맞는 분이랑 일하세요"

   "상세페이지 때문에 그래?"

   눈을 돌려 대표를 바라봤다. 어이없게도 대표가 또 나를 붙잡고 있었다.

   "상세페이지 그럼 XX씨가 만든걸로 쓸게"  

   "대표님 제발..진짜 왜 그러세요?"

   "그거때문에 기분이 나쁜거면 내가 그대로 쓸게. 그만두지마"

   이때 진심으로 모니터를 들어서 대표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한달만 더 도와줘 제발"

   대표는 눈물을 삼키고 거의 애원하듯 또 나를 붙잡았다.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세요?”

   “지금 바로 상세페이지 바꾸자”

   그러더니 대표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손바닥으로 본인 이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공포영화의 한장면 같았다. 말이 통하질 않으니 이제는 자해를 한다. 이마를 미친듯이 때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그만두지 말아달랜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과 엮였을까? 진심으로 무서웠다. 


카톡 퇴사


   대표의 자해에 너무 놀라 나는 바들바들 떨며 '아니..왜그러세요? 괜찮으세요?' 물어보고 우선 집으로 가셔서 조금 쉬라고 이야기했다. 대표는 상세페이지를 바꿀테니 그만두지 말라고 분노에 차서 말했다. 정말 이러다 한대 맞는거 아닐까 무서워져 우선은 그만두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우선 이 사람을 내보내야한다. 여기 같이 있으면 안된다. 나는 달래듯 대표를 내보냈다. 

   덜덜떨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너무 무섭다고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물었고 남편은 당장 작업실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이야기했다. 떨리는 손으로 작업실 비밀번호를 바꾸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앉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잠수라도 타야하는 건 아닐지 고민했다. 

   한시간쯤 지났을까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XX씨 아까 내가 근무시간 이야기한 건 화가나서 그랬어. 미안해. 그냥 원래대로 출근해" 

  그러더니 상세페이지를 바꿨다며 확인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정말로 상세페이지가 바뀌어있었고 대표는 사실 디자인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친구들이..와이프가..하며 또 남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아까 분노에 차서 본인의 머리를 때려대던 대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전화를 받자마자 내게 뜬금없이 물었다.

  "XX씨 화났어?"

  "네?"
  "상세페이지 내렸는데 혹시 그걸로 화났어?"  


  대표가 결국 또 내 상세페이지를 내렸다. 화는 나지 않았다. 그냥 당연히 이럴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카톡창을 열어 대표에게 카톡을 보냈다. 

  퇴사의사와 함께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작업실 비밀번호를 바꿨으며 대표님의 컴퓨터는 관리실에 맡겨 둘테니 찾아가시라는 말도 함께 

 

  최악의 퇴사법이라는 카톡퇴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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