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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Sep 29. 2021

이직 한달 차, 또 이직을 결심하다 Ⅷ

싸우다

싸우다


   전 날 저녁 또 아무 말 없이 상세페이지를 보내온 대표의 카톡을 곱씹으며 출근 길에 올랐다. 핸들을 붙잡고 운전을 하는 동안 내내 머리속에서 분노가 차올랐다. 어느 정도였냐면 작업실에 도착하니 턱이 아팠다. 오는 내내 이를 꽉 물고 온 탓이었다. 대표에게 턱보톡스 값이라도 받을 걸 그랬다.

   아무튼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당장 대표의 컴퓨터를 문 밖에 내버리고 싶었다. 분명히 디자인 존중을 요청했었고 의견차이를 좁히기 위해 끝없이 레퍼런스를 찾아대고, 회의하고, 기획안을 작성한 것이 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대표의 이런 짓거리에 넌덜머리가 났다. 실컷 작업해놓으면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 다시는 이 짓거리 하지말자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또 제자리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부들부들 거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좋은 아침!"

  대표는 눈치도 밥 말아먹었는지 쾌활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까닥였다.

  "어디 아파?"

  대표가 물었다. 나는 '아니요. 멀쩡해요' 라고 말하고 일러스트를 켰다. 작업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뭘 해도 또 없던 일이 되버릴텐데 뭐하러 일을 해야하지?

  "내가 어제 보낸 상세페이지 어때?"

  어떠냐고?

   "대표님은 그게 이쁘세요?"

   충동적으로 말을 뱉었다. 대표는 당황하며 자리에 앉더니 컴퓨터를 키고 상세페이지 파일을 열었다.

   "응. 내 눈엔 이게 더 이쁜데 XX씨 눈엔 별로야?"

   하하하... 정말 뒷통수를 한대 쎄게 때릴까 싶었다. 이 회사는 미국식 카툰 캐릭터를 썼다고 앞에도 적었었는데 우리가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브랜드도 미국식 카툰을 사용하면서 레트로한 컨셉을 잡은 덕에 매니아가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매니아를 만들자며 상세페이지 및 브랜드 디자인을 전부 갈아엎자고 회의했었다. 그게 불과 어제 퇴근전까지 했던 말들이고 어제 하루종일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대표님 이 디자인이 지금 쓰고 계시는 상세페이지랑 다를게 없어요. 그리고 여지껏 회의하고 찾았던 브랜드랑도 전혀 다른 느낌이구요. 이렇게 하실거면 굳이 바꾸지마세요. 지금이랑 똑같구요. 오히려 파워포인트로 만든거 같이 조잡스러워요."

  대표에게 곱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될대로 되라' 마인드로 다다다다 쏴붙히기 시작했다. 대표는 당황하며 내 얼굴 한번 상세페이지 한번 바라보고

  "그래? 그럼 바꾸지 말까"

  라고 대답했다. 하? 바꾸지말자고? 또 며칠걸려 만들어놓은 작업물이 사라졌다. 한숨이 나왔다.

  "대표님 상세페이지 왜 바꾸자고 하셨어요? 매출 안나와서 올리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저희 계속 이야기한게 대표님이 디자인 해놓으신 것들이 부족하고 엉성하니까 제대로 해보자고 했잖아요. 매니아층 좀 만들어보자구요. 그런데 갑자기 또 바꾸지 말자구요?"

  "그렇긴하지.."

  "어떡할까요? 계속 이런식이시면 제가 뭘 믿고 일해야할까요? 저도 이제 진짜 무너지네요. 못하겠습니다. 해도 어차피 없어질텐데 뭐하러 하나요? 그래놓고 또 매출이 안나와, 디자인이 문제인거 같아, 네가 한게 없어, 손이느려, 하실거잖아요."

   진짜 지긋지긋했다. 너무 너무 화가나서 머리속에서 삐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대표는 당황하며 벌떡 일어나더니 빙글빙글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정신에 문제가 있었던 사람 같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고 빙글빙글

   "XX씨 잠깐만! 진정하고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와서 앉아봐"

   대표는 털썩 쇼파에 앉았다. 나는 너무 너무 화가나서 손톱이 손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꽉 줬다. 쿵쾅쿵쾅 심장이 계속 뛰고 있었고 쇼파에 걸어가는 동안 그동안 쌓였던 모든 것들을 머리속에서 정리했다. 뭐부터 이야기하지? 어떡하지?

   "XX씨 내 회사에서 XX씨가 마음대로 하는게 나는 뭐 편할 것 같아?"

   다다다 쏴붙히려고 맘먹고 쇼파에 앉았더니 대표가 선제공격을 했다.


툴러


   "예?"

   어이가 없어서 눈썹을 지푸리고 물었다. 뭐라고요?

   "내 회사인데 내가 만든 브랜드인데 XX씨가 마음대로 하려는 게 맞는 거냐고!"

   허 참.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맞다 대표의 회사다. 대표 마음대로 해야하는 곳이 맞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대로 해서 남은게 뭐가 있지? 10명의 직원이 도망갔고 (디자이너 4 MD 2 마케터 4) 매출은 나오지 않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기술보증기금에서는 투자금을 회수한다고 난리인데 그럼 뭔가 잘못된 것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보고 도와달라며? 디자인 해달라며? 나는 손으로 머리를 기대서 쇼파위에 쪼그려 앉았다. 진짜 머리가 어떻게   같았다.

   "대표님 제가 회사를 마음대로 하려고 했나요?"

   "응 잘생각해봐 XX씨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럼 저도 여쭤볼게요. 면접때 제 스타일로 전부 변경하고 싶다고 하신건 무슨 의미였어요?"

   "뭐?"

   "면접때도 그렇고 입사할때도 그렇고  포트폴리오랑 사이트 보시고 뭐라고 하셨었어요? 디자인 전부 제게 맡기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하다못해  손글씨도 전부 쓰시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디자인을 전부 모두  포트폴리오처럼 바꾸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그래서 자신있어서 입사한거 였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그랬지. 그런데 우리 브랜드랑 안어울리니까"

   "그럼 그때는 왜 그렇게 이야기하셨어요?"

   "그럴려고 했는데 잘 안어울려서"

   " 어울리는거 같다고 하셔서 제가 이거저거 변형해서 맞춰드리고 수정해드려도 싫다고 하시잖아요. 매일 말이 바뀌시잖아요. 어제는 이거, 내일은 저거, 지난주엔 저거. 하다못해 레퍼런스도 핀터레스트에서 매일  꽂히는거 한개씩 들고와서 이게  스타일! 하셔서 그거에 맞게 디자인 해드리면 다음날 없던  되잖아요.  진짜 너무 힘들고 정말 무너져요 요새"

   "아니 XX씨 잘 생각해봐. XX씨가 오너야. 그런데 직원한테 지시했는데 그대로 안해. 그럼 화가 나 안나?"

   " 지시하셨는데요? 기획안이라도 제대로 주셨나요? 컬러라도 정해주셨나요? 매일 백지인 상태에서 작업하고 없어지고 무시당하고 혹시  노토산스 폰트 쓰라고 하고 자간 맞추라고 하는거 그런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대로 해드렸잖아요."

   "아니! 그런거 말고! 내가 디자인한 상세페이지 쓰고! 그거 수정하고 넣으라는 그림 넣고! 그런거! XX 그런거 안했잖아!"

   "아 그럼 그냥 대표님은 그냥 본인 머리속에 있는 걸 그대로 표현해줄 사람이 필요하신거네요?"

   이때 나는 확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디자이너를 뽑은게 아니었구나! 그냥 툴러를 구했던 거구나. 본인이 포토샵이랑 일러스트를 못하니까 그냥 본인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해줄 그런 툴러! 면접때 내게 했던 모든 말들은 다 거짓말이었구나. 그래서 여지껏 내가 한 모든게 본인 맘에 안들었던거야! 머리 속에 생각하던 게 아니니까

  본인이 한 것 외에는 전부 성에 차지 않으니까



+계속 말하지만 대표는 자칭 마케터다. 포토샵에서 할 줄 아는건 누끼따는 것 밖에는 없던

  근데 왜 자칭 마케터냐고? 그가 할 줄 아는건 네이버 광고 돌리는 거 밖에 없었다.


+대표가 새로 만들어왔다는 상세페이지에는 스탁이미지가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도용방지 워터마크가 그대로 붙어있었거든. 이거 워터마크 뭐에요? 하니까 '돈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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