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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Sep 14. 2021

이직 한달 차, 또 이직을 결심하다 Ⅵ

본격적인 가스라이팅의 시작

큰 회사는 학력을 봐!


   "그럼 제가 그만둘게요."

   "뭐?"

   대표는 눈썹을 지푸리며 되물었다.

   "왜? 또?" 

   "대표님 말씀대로 제가 하는 게 없는 것 같고 피해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만둘게요." 

   이때 당시의 나는 '인센티브를 받을 자격이 없어!' 라고 말하는 대표의 말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굳이 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에서 계속 일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첫 퇴사의사를 전달했을 때도 대표는 내게 '하는 게 없다' 라고 표현했고 이번에는 '인센티브가 아깝다' 라고 하니 굳이 남의 돈 축내면서 회사생활을 하고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디자인과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데 대표 본인 맘에 쏙 드는 디자이너 를 구하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거 많고 인센티브도 척척 주고싶은 그런 직원 말이다. 

   그러면서도 또 모순적인건 내 그림과 디자인이 구리고 싫다면서 또 내 그림은 팔고 싶다? 그거라도 팔아서 매출을 올려야겠다? 우선적으로 화장품 회사에서 그림을 그려서 팔겠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직원의 그림이라도 팔아야할 정도로 회사가 어려운건지, 매출을 올리기 위한 게 고작 그림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답답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림을 그려서 파는 순간 이어질 대표의 참견이 나는 가장 무서웠다. 간섭과 막말과..그냥 줄이면 '갑질'이 눈에 보였다. 지금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하고 있는 그림마저 '배경은 이걸로 바꿔.' '포즈를 이렇게 바꿔' '말풍선 위치를 여기로 바꿔' '컬러를 이걸로 바꿔' '캐릭터 옷을 다른 걸로 그려' 하는 디자인 지휘.. 의미없는 갑질.. 그래서 못하겠었다.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래서 나는 또 퇴사를 입에 담았다.

  "하..그래..그만 둔다치자 그만두면 뭐할건데?" 

  대표는 뜬금없이 나의 장래를 물었다. 그만두면 뭐할지를 네가 왜 궁금해하는데? 

  "모르겠어요. 다른데 취직을 하거나 프리랜서를 계속하거나 하겠죠." 

  그러니 너는 그냥 내 작업실에서 당장 꺼져줘! 라고 외치고 싶었다. 

  "취직? ㅋ" 

  대표는 정말 저렇게 웃었다. ㅋ 라고! 더이상 표현할 방식이 없네. 정말 저런 뉘앙스로 비웃었다. 나는 벽면의 내 그림들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 대표를 바라봤다. 왜 쳐웃니? 라는 표정으로 

  "XX씨. 내가 한마디 해도되?" 

  "뭔데요?" 

  "XX씨. 중소기업은 다 거기서 거기야. 어딜가도 이래. 똑같다고" 

  다~ 너같이 병신들만 있진 않단다. 하다못해 이전의 회사도 인성들이 그지 같아서 그렇지 내 디자인은 존중해줬단다. 그리고 그림 그려서 팔아달라는 앵벌이 짓은 안시켜! 속이 또 부글부글 끓었다. 

  "아뇨. 이번에는 조금 큰 회사 가볼거에요. 50인 이상인 곳이요." 

  대표는 내 말에 빵터졌다는 듯이 박수까지 치면서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눈을 보더니

  "XX씨! 큰 회사는 학력을 봐!"

  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날렸다. 와....벙쪄있는 내게 대표는 한방 더 날렸다.

  "그리고 XX씨 애기들 있지? 나는 사람이 좋아서 애기 있는 거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좋아. 그런데 다른 회사도 그럴까? 아니. 애기있고 결혼했다하면 싫어해" 

   이렇게 대놓고 편견과 차별을 갖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더럽고 천박한 차별과 편견을 대놓고 입밖으로 내놓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계속 일해. 어차피 나보다 좋은 대표는 없어" 

   대표는, 아니 이 병신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때의 대표 표정과 말투를 표현하자면 '너는 능력없고 애까지 딸린 유부녀이고 거기다 학력도 좋지 않지. 그렇지만 나는 너를 구제하고 있다.' 였다. 

  그러나 나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만둘게요."

  대표는 나의 말에 잠시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난 그때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새끼 지금 나한테 가스라이팅 하고 있네?'

  또 한번 난 굳은 결심을 하고 내뱉었다.

  "그만 둘게요. 그리고 작업실도 뺄거니까 대표님도 나가주세요." 

  대표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똥마려운 개마냥 서성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니던 대표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더니 말했다.

  "그럼 XX씨! 프리랜서로 일해줘!" 

  아니..그만두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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