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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Sep 10. 2021

이직 한달 차, 또 이직을 결심하다 IV

전 디자이너와 통화하다

전 디자이너와 통화하다.


   (전편에 이어서)

   난 눈물을 삼키고 테이블 위의 커피를 빤히 바라보며 웅얼웅얼 말을 시작했다.

   “대표님 제가 그만둘게요. 제가 참 모자른 사람 같네요. 대표님이 원하시는 인재가 제가 아닌 것 같아요.”

   대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에? 아니! 왜그래? 갑자기? 왜?”

    갑자기? 갑자기라니? 고작 2주 근무였지만 난 정말 영혼까지 탈탈 털린 기분이었다. 어느정도냐 하면 디자인을 접을 생각까지 했었다. 7년을 했던 아니지..전공까지 하면 10년 정도 배우고 해왔던 디자인을 그냥 놓을 생각도 했었다. ‘내가 정말 소질이 없나보다. 그동안 혼자 일해서 감도 없고 실력도 없는데 디자인을 붙잡고 살았구나’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다 때려치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겠다고 결심도 했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내 디자인과 그림을 응원해주고 위로해주어도 그것마져 ‘아 다들 내가 못하는데 힘들까봐 응원해주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매일 밤 자책을 했었다. 포토샵 3개월차 자칭 마케터에게 까일 정도니까

   아무튼 대표는 나의 그만둔다는 소리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 혹시 그림때문에 그래?”

   라고 묻는 것이다. 그림? 그림..그래 그림.. 그 놈의 캐릭터. 그것도 문제였지만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나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그 캐릭터도 못 그리지 않았다. 그냥 툭까놓고 이야기하면 잘그렸다. 내가 볼때는 그랬다. 충분했다. 그런데 대표는 계속 ‘이게 아니야’ ‘이 느낌이 아니야’라며 엎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 아니고 그 그림을 그리라고 시키고 엎어대는 ‘대표’ 때문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기는 제조 회사였다. 화장품 회사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화장품 회사에서 캐릭터가 그렇게 중요할까? 인스타그램에 캐릭터 그림만 주구장창 올리라는 대표가 맞는걸까? 불만도 많고 의문도 많았지만 그래도 참았다. 정말로 대표의 말처럼 내가 ‘못’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내가 생각을 하느라 대답을 못하고 있자 대표는 명쾌한 해답을 찾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 그림! 전 디자이너한테 외주주자!”

   “네? 외주요?”

   “응 걔한테 외주주자. 전화 좀 해봐바.”

   “네? 제가요?”

   “나 걔랑 싸워서 통화못해..대신 좀 해줘봐요”

   엥?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32살 쳐먹은 성인이, 그것도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이! 전직원이랑 싸웠다고 나보고 전화를 걸으라니? 얼굴 한번 본적도 없는 그만둔 직원을?

   "XX씨가 전화 좀 걸어줘봐요. 걔가 그린 캐릭터가 제일 나은거 같은데 그만둬서..."

   "죄송해요. 단순히 그림때문이 아니고 이건 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그만두고 캐릭터도 잘그리시는 분이랑 일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 왜그래 XX씨. 우리 잘해보자. 한달만 더 일해보고 결정해줘"

    대표는 방금까지 내게 한 게 없다며 타박을 주더니 이번에는 그만둔다는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그림만 해결되면 XX씨도 훨씬 편하게 일할 수 있을거야"

    나는 정말 그럴까? 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언제까지고 이렇게 옮겨다니는 것도 아닌 거 같고 한달만 더 일해볼까? 하며 흔들흔들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그만뒀어야했다.)

   "그럼..번호 좀 알려주세요."

   바보같은! 나는 결국 전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에 이 일을 내 친구들은 '너 정말 병신같이 착하구나..아니 그냥 병신이구나' 라고 표현했다. 신호음이 계속 갔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나는 문자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XXX님 되시죠? 저는 OO에 새로 입사한 디자이너입니다. 여쭤볼게 있어서 전화드렸었어요. 혹시 통화가능하실까요?'

   라고.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럼 그림만 해결하고 다시 같이 잘 일해봐요!"

   대표는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나는 이 상황이 뭔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머리속이 복잡한 상태로 다시 업무에 들어갔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왔고 대표와 함께 식당에 갔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이밀고

   "혹시 이 번호 그 분 번호였나요?"

   대표는 얼굴을 굳히며 '어어 맞어' 라고 대답했다. 나는 전화통화를 하고 오겠다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대표는 뒤에서 '잘 이야기해봐요!' 라고 소리쳤다.

   "여보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어찌되었건 이 사람에게 앞으로 일을 줘야하니까..

   "아 안녕하세요."

   "XXX님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저 그 회사 그만둔지 오래되서 말씀드릴게 없어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대표는 분명히 이 사람이 나 입사하기 3일 전 그만 뒀다고 했다. 면접때도 현재 근무 중이고 나의 입사와 함께 퇴사할 거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뭐지? 2주가 오래된건가?

   "아..아...저기 혹시 저희 회사 캐릭터 그림 외주해보실 생각 없으실까요? 대표님이 XX님이 그리신 그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셔서요."

    아무튼 나는 그냥 본론을 말했다. 전화기 너머 그 사람은 비웃음을 날리더니 툭 말했다.

    "죄송한데 단가를 엄청 낮게 부르실 것 같은데?"

    "아..그런가요?"

    "그리고 저 거기서 일한 돈 제대로 못받았어요. 퇴사하고 나서도 그림 그려 드렸었는데 그 그림값도 입금 받지 못했습니다."

    "네?"

    "저 더이상 거기랑 엮이고 싶지 않아요. 이만 끊을게요."

    나는 다급하게 '잠시만요! 잠깐만요!'를 외치고 고개를 돌려 유리창 안으로 밥을 먹고 있는 대표를 바라봤다. 뭐지? 이 상황? 나는 몇초간 망설이다가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라고 조용히 물었다. 전디자이너는 '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퉁명스럽게 답했다.

   "뭔데요?"

   "바쁘신데 정말 죄송해요. 제가 여기 입사한지 2주됐고 오늘 그만둔다고 했는데 그림때문이냐면서 이렇게 XX님에게 전화까지 걸게 된 건데요. 지금 제가 대표랑 단둘이 일하고 있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래서 여쩌볼게요. 여기서 일해도 될까요? 지금 너무 힘든데 여기 어땠는지 귀뜸만 해주시면 안될까요? 죄송해요."

  나는 속사포랩을 하듯 다다다다다 재빠르게 물었다. 얼굴 한번 본 적없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할정도면 정말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전디자이너는 또 작게 웃더니

  "아..거기서 일하지마세요. 디자이너로 일하시면 힘들거에요."

  "아..네..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혹시 언제 퇴사하셨나요?"

  "저 작년말에 퇴사했어요."

  .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퇴사시기가 그렇게 중요해?' 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표가 시도때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무렵 눈치채기 시작했다. ' 저런 거짓말을 하지?' 라고  의문을 가지면서도 '에이. 내가   아는 거겠지' 했을 시기였다. 그러니까  직원의 근무기간마저 내게 거짓말을  것이다. 굳이 도대체 ?

   "저 지금 회사여서 바빠서요. 이만 끊을게요."

   내가 대답이 없자 전디자이너는 저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웅웅.. 내 뒤에서 화물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음이 들렸고 나는 멍하니 대표의 얼굴 한번 그리고 발끝 한번을 바라보다가 결심했다.

   '여기도 아니다. 도망치자'



+놀랍게도 이때도 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었다. 대표는 첫 근무날 근로계약서의 양식을 두고왔다고 핑계를 댔고 두번째는 국가지원금을 받아야하는데 세무사가 어쩌고 저쩌고 해대며 치일피일 미뤘다. 그래서 더 두려웠던 것 같다. 정말로 돈을 못 받는 상황이 올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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